유난히도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나면 더 예쁜 꽃이 필거야 흐려지는 상처를 되돌아보며 웃으며 얘길 나누길 터널의 끝에서
가수 김세정이 부른 <터널> 가사 중 일부입니다. 지난해 겨울 시작한 코로나19가 봄과 여름을 거쳐 가을까지 왔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는데요. 거리두기가 길어질수록 사회적 동물은 일상 속에 지쳐갑니다. 마치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말이지요.
자연만큼 계절 변화에 민감한 것도 없습니다. 제가 본 감나무가 그렇습니다. 고향 집 앞 감나무도, 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와 공원 산책로에 심은 감나무 열매도 물이 들고 있습니다. 연두에서 초록, 초록에서 노랑으로 물드는 열매를 보면서 가을을 맞습니다.
생애의 어느 한때 한 순간, 누구에게나 그 한순간이 있다. 가장 좋고 눈부신 한때 그것은 자두나무의 유월처럼 짧을 수도 있고감나무의 가을처럼 조금 길 수도 있다.
짧든 길든, 그것은 그래도 누구에게나 한 때 한 순간이 된다. 좋은 시절은 아무리 길어도 짧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선옥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중에서
출처=픽사 베이
감나무는 지켜봤을 겁니다. 지난겨울부터 우리가 겪고 있는 일상의 힘듦을요. 눈부신 한 때, 한 순간이 있었나 싶을 만큼 위축된 우리들 삶이지만 감나무는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두나무의 유월보다는 길수 있지만, 감나무의 가을은 결코 길지 않습니다. 곧 겨울이 올 테니까요. 서리가 내리면, 넙적한 이파리 모두 낙엽으로 지고 말 테니까요. 우듬지에 매달린 열매 몇 알도 까치가 먹고 나면 혼자서 외롭고 쓸쓸한 겨울을 보내야 하니까요.
바이러스가 세상을 점령했습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스크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죠. 사람과 사람이 만나기 어렵고, 말과 말을 주고받기 어렵고, 나라와 나라가 왕래하기 어렵습니다. 공포와 우울은 바이러스를 타고 빠르게 퍼집니다.
이것이 지난 열 달 동안 우리가 경험했고, 아직도 겪고 있는 현실이고, 이겨내야 할 내일입니다. 내년 가을에는 ‘코로나’라는 긴 터널을 빠져나와 웃으면서 얘기 나누는 계절을 희망합니다.
희망을 갖고 견뎌내기 바랍니다. 추운 눈보라 온몸으로 막아내며 버티는 감나무처럼. 다시 싹 틔우고, 가지 사이로 이파리 내미는 감나무처럼.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인고하며 열매 맺는 감나무처럼. 단감으로, 곶감으로, 홍시로 달콤함을 선물하는 감나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