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코로나, 이웃에 대한 배려가 먼저입니다

마스크 벗고 다니거나 여럿이 오래 붙어있으면 ‘말짱 도루묵’

by 류재민

11월부터 ‘위드(with)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가 시작됩니다. 2년 가까이 갇혔던 ‘코로나 감옥’에서 가석방되는 날입니다. 식당이나 술집 영업시간이 24시간 가능해지고, 다중이용시설 운영시간 제한도 전면 해제됩니다. 학교는 전면 등교가 이루어집니다.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취해지는 조치인데요. 여전히 불안 요소는 잠재해 있습니다. 방역이 느슨해지면 확진자가 엄청난 규모로 늘어나지 않겠냐는 걱정 때문입니다. 곳곳에서 돌파 감염자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도 심상치 않습니다.


실제로 4일 연속 신규 확진자가 2000명을 넘었고, 직장과 학교, 병원 등에서 집단감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위드 코로나를 먼저 시행한 영국과 싱가포르 같은 나라들은 코로나 재확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제 날씨도 점점 추워지면서 실내 밀집도도 높아지겠죠.


코로나 장기화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었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숨통이 트이겠다며 반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료 전문가들은 5차 대유행을 가능성을 내놓고, 위드 코로나 부작용을 우려하는 국민들의 공포와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걸로 보입니다.


‘위드(with)’라는 단어는 ‘~와(과) 함께’라는 뜻입니다. 코로나와 공존을 선언하면서 우리는 또다시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합니다. 그 길이 중간에 멈추지 않고 무사히 가려면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가 아니라, 이웃을 먼저 배려하는 이타주의 말입니다. 함부로 마스크를 벗고 다니거나, 밀폐된 실내에서 여러 사람이 장시간 머무르는 행위는 삼가야 합니다. 그랬다가 확진자가 폭증하면 위드 코로나는 '말짱 도루묵'이고, 코로나 감옥에 재수감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웃에 대한 배려, 특히 어린아이들을 위해 어른들이 모범을 보일 때 '위드 코로나'는 성공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백신 접종을 할 수 없는 어린이들이 피해를 입지 않게 하려면 어른들이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아이들이 무슨 죄입니까. 자율 속에 절제와 책임, 경각심이 필요한 때입니다.


휴일 헬스장 건물 지하 주차장에 들어서는데 맞은편에서 차량이 올라왔습니다. 그 주차장은 출입구가 하나인데요. 제 뒤로 따라 들어온 차량이 두 대나 있어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난처했습니다.

그때 상대방이 비상 깜빡이를 켜더니 후진하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큰 마찰 없이 주차장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요. 상대방에게 고개 숙여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고, 운전자도 손을 들어 화답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웃에 대한 배려와 양보 아닐까요?


만약 서로 잘났다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앞뒤로 차량이 길게 늘어설 테죠. 여기저기서 빵빵대는 소리에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짜증이 나겠죠. 곧이어 창문을 열고 거친 말들이 오갈 것이고, 무슨 사달이라도 났을지 모릅니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헤아릴 때 양보도, 배려도, 관용도 생기는 것 아닐까요? 홍창진 신부님이 쓴 책에 인용에 적절한 부분이 있어 소개합니다.


자영업자가 자기 사업이 망하는 순간에 느끼는 고통의 크기가 마치 뼈가 부러지는 상황에서 수술도 못한 채 그 아픔이 지속되는 것과 똑같다고 합니다. 타인을 내 마음 안에 들여놓는다는 것은 먼저 그 아픔을 헤아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큰 보탬을 준다기보다, 마음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거죠.
-홍창진《괜찮은 척 말고, 애쓰지도 말고》 101쪽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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