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희생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흐르고

평택 화재 진화 중 숨진 소방관 영결식을 보며

by 류재민
늘 그랬듯이 우리는 그곳에 갔습니다. 그러나 그날 우리의 동료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2022년 1월 8일 채준영 송탄소방서 소방교 조사(弔詞) 중


경기도 평택의 한 냉동창고 신축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숨진 소방관 3명의 영결식이 열렸습니다. 이들은 지난 6일 화재 진화에 나섰다가 안타까운 희생을 당했습니다.


안타까운 희생에는 항상 가슴 아픈 사연이 흐릅니다. 순직한 박수동 소방장(32)은 다음 달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조우찬 소방교(26)도 같은 소방서 동료인 여자 친구와 2주 뒤 상견례를 할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단란한 가정을 꿈꾸던 두 예비 신랑이 화마 속에 스러졌습니다. 조 소방교는 지난해 5월 임용돼 소방 업무에 투입된 지 8개월도 안 된 새내기 소방관이었습니다.


이형석 소방경(51)은 90대 노모를 모셨습니다. 아내와 두 자녀를 둔 가장이었습니다.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위험한 현장에 출동한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을 정도로, 속이 깊었다고 합니다. 누군가의 애인과 남편과 아들과 아버지가 속절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람을 구하겠다고 들어간 화재 현장에서, 정작 본인들의 목숨은 구하지 못했습니다. 뜨거운 불구덩이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죽음을 직감했을 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문재인 대통령이 8일 경기도 평택시 이충문화체육센터에서 엄수된 경기도 순직 소방공무원 영결식에서 헌화 뒤 분향하고 있는 모습. 청와대 제공.


소방청은 순직자들에게 훈장과 1계급 특진을 추서하고 국가유공자로 지정할 방침입니다. 죽어서 받는 훈장과 특진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더 큰 문제는 이런 참변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겁니다.


이번 사고 역시 부주의가 겹쳐 빚은 인재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선 다량의 보온재와 산소통 등 가연성 물질이 가득한 공사장에 불길이 완전히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화재 진압 인력을 투입한 것 자체가 위험한 결정이었습니다.
이 공사장은 1년여 전에도 천장 골격이 무너져 3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던 곳입니다. 그런데도 기초 골조 공사가 완료됐다는 이유로 안전점검 대상에서 빠진 것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안전을 위해 겨울에는 특히 야간작업을 하지 않는 관행을 무시한 것도 문제입니다. 2년 전 경기 이천 물류센터 화재로 노동자 38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이후에도 대형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사고가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KBS 2022년 1월 8일 <안타까운 순직 언제까지… 더 이상의 희생 막아야> 보도 중

지난 10년 동안 부주의와 안전의식 미흡 등으로 목숨을 잃은 소방관이 49명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유사한 사고가 생길 때마다 주야장천 ‘재발 방지’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바뀌는 건 없습니다. 돌아오는 건, 노동자와 소방관들의 부고입니다.

공사 현장의 안전수칙이 철저히 지켜질 수 있도록 법령을 강화하고, 처벌 수위를 높일 순 없는 걸까요? 그렇게 한다고 해서 사고가 근절될 순 없을 겁니다. 다만, 안전의식이 높아질수록 적어도 막을 수 있는 사고는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화재 현장에서 순간적인 상황 판단 훈련을 강화하고, 선진국처럼 드론이나 인명 수색 로봇 등 첨단 장비 활용을 서두를 필요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동료와 가족, 이웃의 생명이 달린 문제인데, 왜 국가는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걸까요. 왜 적극적으로 보호하지 못하고, 예우도 하지 않을까요.


“문 대통령은 이흥교 소방청장에 재발 방지 대책과 소방대응체계 정비를 지시했으며, 장의위원장인 오병권 경기도지사 권한대행에 공사 현장의 위험 물질 관리 대책 마련을 당부했습니다.” -순직 소방관 합동 영결식 관련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 서면 브리핑 (2022. 1.8)


오늘 우리는 또다시 안타까운 죽음 앞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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