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유감

신뢰받지 못한 판결에 불신을 선고합니다

by 류재민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내일 막을 내립니다. 우리나라는 금메달 2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개로 14위를 기록했습니다. 4년 동안 올림픽을 준비했던 참가 선수 모두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쇼트트랙은 편파 판정 시비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우리 선수들은 실격을, 개최국 중국은 메달을 땄기 때문입니다. 국내 여론은 들끓었습니다. 공정하지 못한 심판 판정에 공분했습니다. 피와 땀을 흘리며 대회를 준비했을 선수들의 사기를 꺾었고, 꿈과 희망은 좌절로 만들었으니까요.


공정하지 않은 판결은 스포츠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현실의 ‘법원’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죠. 어제 법원 판결 중 입이 떡 벌어진 일이 있었습니다. 6살 조카를 무차별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외삼촌 부부가 2심에서 감형을 받은 겁니다.


법원은 살인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외삼촌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20년을 선고했습니다. 살인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또 그의 아내는 원심 25년에서 5년으로 대폭 형량이 줄었습니다. 재판을 방청한 시민들은 살인 혐의가 무죄로 판단을 받자 오열했다고 합니다.


A씨 부부는 2020년 7∼8월 인천 중구 한 아파트에서 C양을 학대했고, 폭행 끝에 살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C양의 몸에는 다수의 멍 등 구타의 흔적이 남은 것으로 조사됐다. 뉴시스 2022년 2월 18일 <‘조카 살해 혐의’ 외삼촌 2심 감형…살인→아동학대치사> 중

공교롭게 이날 재판을 맡은 판사는 2년 전 ‘정인이 사건’ 항소심 재판장이라고 합니다. 그런 이유로 온라인에서는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생후 16개월 된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모는 지난해 11월 항소심에서 감형(무기징역→징역 35년)됐습니다. 학대를 방조한 혐의 등을 받는 양부는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에서 무죄를 받았습니다.

같은 날 이런 판결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10살 딸이 이모 부부에게 학대당하는 사실을 알고도 모른 척해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친모가 항소심에서 감형을 받은 건데요. 관련 기사를 보시죠.


재판부는 “피고인의 방임 행위가 지속하는 중에 아동이 사망에 이른 것은 부모로서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불리한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그 범위를 넘어 아동학대 치사죄나 살인방조죄로 형량을 정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노컷뉴스 2022년 2월 18일 <숨진 딸 학대 모른 척한 친모…항소심서 3년→2년 감형> 중

우리는 살면서 상상조차 하기 싫은 사건 사고 소식을 접합니다. 앞서 언급한 아동학대를 비롯해 성폭력, 강도, 상해, 살인 등 강력범죄와 사기 절도까지. 그런데 말입니다. 사법적 단죄를 받아야 할 피고인이 어처구니없는 판결을 받았다는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듣습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 말이 안 나올 만큼.


물론, 판결을 내린 판사들은 법의 잣대와 소신에 따라 양형을 고려했을 겁니다. 다만, 국민들의 법 감정과 동떨어진 판결은 납득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국제 심판이라는 사람들이 비디오 판독까지 하고도 어이없는 판결을 내릴 때처럼요.


법조 기자 출신 권석천은 『사람에 대한 예의』에서 "법 논리와 법 감정은 서로 연결돼 있고, 함께 진화해야 한다. 법 감정은 앞서가는데 법 논리가 제자리걸음을 한다면 그 사회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법 논리는 어떻게든 법 감정을 설득해 편차를 줄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문유석 판사도 『판사 유감』에서 “소신이라는 말은 면죄부가 아닙니다. 히틀러도, 무솔리니도, 스탈린도 평생 소신을 지킨 사람들”이라면서도 “국민들 눈높이에 맞게 재판을 하려면 역설적이지만 야근할 시간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AI 판사를 도입하라’는 기사 댓글이 웃픕니다.


박주영 판사는 『어떤 양형 이유』에 “매번 법복을 입고 살얼음 낀 강을 건넌다”라고 썼습니다. 판결을 내릴 때마다 드는 고뇌와 번뇌의 고백처럼 들리는데요. 이어진 문장은 그것들의 깊이와 정도가 클라이맥스에 이릅니다.


나는 돈도 없고, 힘도 없다. 이제는 ‘가오’도 없다. 내가 가진 무기라고는 성스러운 법전과 이성과 상식뿐이다. 이 강을 건너야 한다. 검은 강 아래로 온갖 유혹과 협잡이 일렁인다. 한눈파는 순간 내 등에 올라탄 정의와 진실과 함께 지옥으로 떨어진다. 나는 곧 부활하지만 그들은 끝내 돌아오지 못한다.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217~218쪽


『사람에 대한 예의』에 이탄희 국회의원이 판사 시절 있었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탄희가 “윗분들께 예쁨받고 싶은 욕심은 없다”고 하자 선배 판사가 정색을 하고 말한다. “넌 아직 모르는구나? 살기 위해서 그러는 거야. 살기 위해서.”


이런 걸 보면, 판사나 법관들은 행복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판결도 사람이 하는 법입니다.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내린 판결에 피해자나 피의자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까요? 법치주의 국가에 사는 시민들이 사법제도를 불신하는 이유 역시 이 때문 아닐까요?


판사도 행복해져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선 사법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판사 유감’에 더해 ‘판결 유감’까지 들게 하지 않으려면.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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