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겠다고

당신은 왜 일을 하나요?

by 류재민

100년을 살다 가신 제 할머니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즐겨 보셨습니다. 브라운관 안에서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한 배우들이 치고받고, 뒹굴고 넘어지는 모습에 실소를 금치 못하셨습니다.


코미디는 귀가 안 들리는 백 살 어르신도 웃게 만듭니다. 익살맞은 얼굴과 행동만 봐도 웃음 점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말 못 하는 어린 아이가 만화영화에 시선을 집중하는 것처럼.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던 할머니께선 이런 말씀을 자주 했습니다. “일부러 저러는 거지? 진짜 때리는 거 아니지? 쯧쯧, 먹고살겠다고 고생하는구나.”


UFC와 K1 같은 해외 격투기 좋아하는 지인이 있는데요. 한 번은 TV로 경기중계를 보던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먹고살겠다고..” 깨지고 터지는 선수들을 흥미롭게 바라보면서 한편으로는 인간적인 연민이 느껴졌나 봅니다.


당신은 일을 왜 하세요? 누군가 제게 그런 질문을 하면 저는 “먹고살려고 하죠”라고 대답할 겁니다. 당장 떠오른 답이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나요? 제 할머니가 걱정했던 코미디언이나 지인이 응원했던 격투기 선수들이나 다 ‘먹고살겠다고’ 하는 일 아닌가요?


그런데 말입니다. ‘먹고살겠다고’는 두 가지 의미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먹다’와 ‘살다’로 나누어보자는 거죠. 우선 ‘먹다’는 원초적인 본능입니다. 인간의 3대 기본 욕구 중 하나죠.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으니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있어야 먹을 걸 살 수 있습니다. ‘일과 노동’은 필수적입니다.

다음은 ‘살다’입니다. 이 말은 다시 ‘라이브(Live)’와 ‘라이프(Life)’로 의미가 나뉩니다. 욕구 해소나 생명 유지의 수단으로 ‘먹고 삶’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먹고사니즘이 보장된 인간에게는 ‘인간다운 삶’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코미디언이 되기 위해, 격투기 선수가 되기 위해 그들은 수없이 도전했을 겁니다. 또 거기서 멈추지 않고 부단히 노력했겠죠. 관객들에게 인정받는 희극 배우가 되려고, 세계 챔피언이 되려고요. 피와 땀을 흘리며 끊임없이 자기 계발에 매달렸을 겁니다. 그들이 ‘일을 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 아닐까요?


일본의 첨단 전자부품 제조업체 <교세라> 창업자이자 명예회장인 '이나모리 가즈오'. 그는 지난해 펴낸 『왜 일하는가』라는 책에서 독자들에게 계속 질문합니다. 당신은 어떤 일을 하는가? 그 일을 통해 무엇이 되길 꿈꾸는가? 당신이 꿈꾸는 일과 삶의 미래는 어떠한 모습인가?


열심히 일하면 하루하루 남모를 기쁨과 즐거움이 인생에 다가온다. 마치 긴 밤이 지나고 새벽이 밝아오는 것처럼, 기쁨과 행복이 고생 저편에서 얼굴을 들며 인생을 비춘다. 이것이 일을 통해 얻는 인생의 참모습이다. 이나모리 가즈오 『왜 일하는가』 67쪽

그렇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먹고살려고 일하는 건 아닙니다. 자아를 실현하고, 기쁨을 얻고, 행복해지기 위해 일을 합니다. 다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일자리가 넉넉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까지 들여놓았지만, 청년들에게 별 따기만큼 어려운 게 취업이라고 합니다.

그사이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플랫폼 시장이 늘어나고, 단기 알바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시장의 변화와 시대의 흐름이 주된 요인일 겁니다. 그러나 그 요인을 부추긴 건,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와 그에 따른 부작용이 한몫하지 않았을까요?


요즘 청년들이 일을 대하는 자세는 기성세대와는 사뭇 달라졌습니다. 취업에 성공한 청년들에게 “그 회사에 뼈를 묻을 거냐”라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제가 왜요?”라고 하니까요. “돈은 먹고살 정도만 벌면 돼. 난 내 시간이 더 필요하고 소중해”라는 게 MZ세대의 대체적인 직업 관념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먹고사니즘’에 대한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가치관이 다릅니다. 따라서 오늘날 ‘먹고살겠다고’는 세대와 시대를 경계 짓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삼길포항에는 사람도 많고, 사람들이 던져주는 과자를 먹으려는 갈매기도 많았습니다. 다들 먹고살겠다고.

휴일을 맞아 삼길포항에 다녀왔습니다. 모처럼 날이 따뜻했습니다. 그래선지 포구에는 관광객들로 붐볐습니다. 가족 단위부터 동호회, 부부 모임, 연인까지. 저마다 인적이 드문 곳에 돗자리를 펴거나 텐트를 치고 휴식을 취했습니다. 포구에서 떠 온 회를 먹거나 집에서 준비해온 음식을 먹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코로나인지 오미크론인지 극성을 부려도, 사람들은 이렇게 다니고, 쉬면서 또 먹습니다.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 일의 능률이 오를 겁니다. 그게 바로 ‘소확행’ 아니겠습니까. 해안가에 갈매기떼가 어지럽게 날아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새우 X’을 서로 먹겠다고 소리 지르고 밀쳐내기 바쁩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먹고살려는 경쟁은 치열하구나, 싶었습니다.

*상단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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