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고, 떨어지도록 등 떠미는 나라

아이를 안고 떨어지는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by 류재민

제정신이었을까. 아니면, 취했을까? 아이와 함께 죽기로 결심했다면, 온전한 정신은 아니었을 겁니다.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40대 엄마가 발달장애 아이와 투신해 숨졌습니다. 아이는 여섯 살이었습니다.


사고 기사를 접한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아, 그녀는 정말 얼마나 힘들었을까. 한동안 마음 한쪽이 따끔거렸습니다. 누가 감히 저 엄마를 비난할 수 있을까요?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 우리는 그녀가 어떤 어려움과 힘듦이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이웃’ 일뿐이니까요.


문제는 이런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버티고 견디다 못한 부모들이 자녀와 함께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흔치 않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3월엔 말기 암 환자인 50대 엄마가 20대 딸을 살해한 뒤 자수했고, 2월에는 돌봄에 지친 싱글맘이 딸을 남겨둔 채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엔 아버지가 발달장애 아들과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한 뒤 세상을 등진 사건도 있었다. 코로나19 이후 2년간 알려진 죽음만 20명이 넘는다. 국가와 사회가 떠넘긴 돌봄의 무게에 25만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무너지고 있다. 2022년 5월 24일 경향신문 사설 <발달장애인·가족의 잇단 비극, 사회가 돌봄 무게 나눠져야> 중

부모가 발달장애인 자녀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계속되면서 장애 가정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요. 현실적인 지원은 요원합니다. 그사이 부모들의 등허리는 휘어질대로 휘고, 삶의 의지마저 거두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지난달 20일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근에서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 체계 구축을 촉구하는 1박 2일 결의대회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장애 당사자와 부모 등 500여 명이 단체 삭발식을 하기도 했는데요.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장애인들의 지하철 시위만큼 발달장애인을 둘러싼 문제도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무엇보다 ‘돌봄’입니다. 발달장애는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이어집니다. 따라서 이들을 돌볼 인력 지원 등 복지 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하는데요.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10년, 20년 힘들게 살 바에야 같이 죽자”라는 살인을 ‘당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0년 발달장애인 부모 117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가 눈길을 끄는데요. 응답자의 20.5%(241명)는 '자녀 돌봄 문제로 부모 중 한 명이 직장을 그만뒀다'고 했습니다.


더구나 최근 몇 년간 코로나19로 인한 방역 조치로 돌봄 체계가 무너지면서 비극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생계 곤란에 우울증까지 더해지면서 벼랑 끝에 내몰리는 가정도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사회적 타살을 막기 위해 범정부 차원의 제도 마련이 시급한 이유입니다.


미국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강남순 교수는 『질문 빈곤 사회』라는 책에서 "발달장애인들에 대한 돌봄을 매우 사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사회나 국가가 아닌 개별인에게만 맡겨놓을 때, 무수한 사람들이 곳곳에서 '숨 쉴 수 없다'고 절규하는 사회가 된다."고 썼습니다.


더불어민주당(위)과 국민의힘 홈페이지.

‘힘들어도 살아보자’라는 삶의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들이 우리와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선진 복지국가’를 구현할 수 있을 테니까요.


지방선거가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새 정부는 중앙 정부가 아닌, 지역이 주도하는 지방자치에 중점을 두겠다는 방침인데요. 시장과 도지사, 지방의원이 되려는 후보들은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하기 바랍니다. 발달장애인과 부모들은 서울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강원도나 제주도에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잘났고, 너는 못 났네, 으르렁거리고 싸울 때가 아닙니다.


지금 순간에도 양육에 지치고 생활고에 한계를 느낀 전국의 부모들은 아파트 베란다를 서성이고 있을 테니까요. ‘든든한 지방정부, 유능한 민생 일꾼’(민주당)이 되겠다고요? ‘지역을 새롭게, 시민을 힘나게’(국민의힘) 만들겠다고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삶부터 힘이 나야 지방정부도 든든해지고, 지역도 새로워지지 않을까요?


공중에서 떨어지고 선거에서 떨어지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고통스럽고, 아프다’ 일 겁니다. ‘죽기 살기로 노력했다’라는 것도 같은 심정일 겁니다. 그러니, 떨어지지 않고 꼭 붙어 문제 해결에 앞장서 주기 바랍니다. 그들이 삶의 베란다 문을 꽉 붙잡고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상단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Piax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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