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아들이 독립했다

10년 만에 아내와 ‘한방’을 쓰게 됐다

by 류재민

그는 초3입니다. 한국 나이로 열 살입니다. 출생 직후부터 10년 동안 ‘엄마 껌딱지’로 살았습니다. 반대로 저는 의도성 여부와 달리 10년을 ‘독수공방’하며 지냈습니다.


2년 전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그에게 방을 만들어줬습니다. 오래된 장롱을 낑낑거리며 들어내고, 그 자리에 새로운 침대를 설치했습니다. 엄마와 분리를 시도했는데요. 하지만 그는 그 방을 쓰지 않았습니다. 다시 엄마 방으로 기어 들어갔습니다. 그 방은 도로 ‘제 방’이었습니다. 제 방에 침대만 하나 들어온 셈이 된 겁니다.


그는 바로 제 아들입니다. 엄마한테 꼭 붙어 떨어지지 않던 아들이 어제부터 독립했습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으나, 스스로 ‘독립선언’을 했습니다. 2년 전처럼 ‘먹튀’를 하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용케도 혼자 잘 자더군요. 신기했습니다. 아들이, 혼자, 자더라고요.


물론 새벽녘 안방 문을 열고 들어와 엄마 옆에 누워 2시간을 더 자긴 했지만. 그래도 더 많은 시간을, 혼자서 잤다는 건 경이적인 일입니다. ‘역사적 사건’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2년 전 만들어줬다가 제 방으로 썼던 방이 원 주인을 찾았습니다.

아들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본의 아니게’ 아내와 합방 ‘한방’을 쓰게 됐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아내는 그대로입니다. 여전히 건드리는 것에 질색팔색이고, 코를 골면 거실로 내쫓겠다는 경고부터 합니다. 첫날밤이라 긴장한 게 아니라, 쫓겨나지 않을까 긴장해서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언제 잠들었는진 모르겠습니다. 일어나 보니 다행히 아침이었습니다.


딸도 없고, 아들도 없던 시절, 원래 제 방과 자리로 돌아온 건데, 그날따라 잠자리가 생경했습니다. 혼자였던 옆자리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도 순간 낯설..어색..난감..익숙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낯선 아내’와 이틀째 밤을 맞고 있습니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아들의 귀환과 코를 골면 죽는다 쫓겨난다는 긴장감까지. 새로운 환경에 적응 중입니다.



제가 쓰던 책상도 아들용으로 변신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의 상황이나 환경이 나쁘다는 소리는 ‘결코’ 아닙니다. 아내가 제 브런치 구독자라서 ‘결코’라는 강한 부정을 나타내는 부사를 사용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그렇다는 얘깁니다. 저는 아주머니 아내를 아주 많이 사랑합니다.


제가 쓰던 방은 아들의 방이 되었습니다. 아들은 책장의 책을 비워줄 것과 1인용 책상 위에 있는 잡동사니의 철거를 요구했습니다. 사물함도 자리 변경을 주문했고, 이불 교체, 공기청정기와 선풍기도 재배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 저게 며칠이나 갈까’ 반신반의 합니다. 여차하면 ‘아빠, 다시 바꿉시다’라고 할 것 같은 불길함과 한편으로는 은근한 바람 같은 것이 뒤섞인 채.

어쩌든 아들이 자기 방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보니, 여러 감정이 교차합니다. 많이 컸구나, 대견스럽네, 따위의 것들이요. 중국의 작가 '노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식은 자기의 것인 동시에 자기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서로 독립되어 있으므로 또한 인류 중 한 인간이기도 하다. 자식은 자기의 것이므로 더 한층 교육의 의무를 다하여 그들에게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주어야 하며, 또 자기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동시에 해방시켜 모든 것을 그들 자신의 것이 되게하고,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열 살 아들이 어제부터 독립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아들아, 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소중한 사람이니 자신 있게 사람들을 대해라. 네가 웃을 때 우주도 웃고 신도 웃는다. 한창욱 『인생을 어떻게 살면 좋겠냐고 묻는 아들에게』 21쪽

아들아, 인생이란 고독과 외로움과 싸우며 이겨내는 법도 알아야 한다. 너만의 공간에서 많은 꿈을 꾸고, 사색과 사유와 사랑을 하거라. 그렇게 사춘기를 받아들이고, 청년이 되고, 결혼해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독립시키는 순간, 지금 이 아빠의 심정을 몸소 체감하리니. 부디, 독립다운 독립을 하거라.


아들은 독립했고, 독립생활하던 아빠는... 10년 만에 독방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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