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란 무엇인가

내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신성한 정치 행위

by 류재민

6월 1일은 제8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일입니다. 243명의 자치단체장과 3860명의 지방의원을 뽑습니다. 7곳에서는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치러집니다. 우리 아이들의 교육 정책을 책임질 교육감도 17명 선출합니다. 투표용지만 최대 8장을 받아야 하는 곳도 있습니다. 후보자가 누군진 아시나요? 후보자도 모르는데 공약은 또 알까요?


여러 장의 투표용지를 한꺼번에 받으면 혼란스러울 발달장애인에 대한 배려도 없습니다. 장애인단체는 이들을 위한 투표 보조나 그림 투표용지 제작을 촉구하고 있는데요. 선관위가 얼마나 귀담아듣고 행동에 나설지는 모르겠습니다. 또 투표로 선출된 이 나라의 국회의원 300명은 이런 사실을 알랑가 모르겠습니다.


인지 능력이 부족하고 표현을 잘 못하는 발달장애인은 낯선 곳에선 긴장해 행동이 얼어붙곤 합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선 더 긴장합니다. 글자를 읽거나 투표용지 칸 안에 정확히 기표하는 게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자신의 의사를 정확히 표현할 수 있도록 도움이 필요한 겁니다. 하지만 공직선거법은 시각 또는 신체 장애인만 다른 사람 도움을 받아 투표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발달장애인들은 투표 보조 신청을 거부당하기 일쑤입니다. -2022년 5월 26일 jtbc <“신체·시각장애만 투표 보조” 발달장애인 ‘힘겨운 한 표’> 중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석 달도 안 지나서 이렇게 많은 선출직 공무원을 뽑아야 하는 유권자들은 어떨까요? 피로감이 누적된 상황에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어오고, 문자메시지도 빗발칩니다. 문자 하나를 지우는 사이 다음 문자가 '띵동'하고 울립니다.


어떻게든 한 표라도 더 얻어보겠다는 후보자들의 절박함은 모르는 바 아닙니다. 다만, 홍보 수단이 유권자를 불쾌하게 만들고, 급기야 ‘공해 수준’까지 치달아야 쓰겠습니까. 도로변에 나부끼는 현수막은 또 어떻습니까. 정책 공약을 알리기는커녕 상대 후보의 치부를 들춰내 공격하는 용도로 쓰고 있지 않습니까.


선거는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게임이 아닙니다. 상대를 무찔러야 내가 살아남는 전쟁도 아닙니다. 국민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드는 신성한 정치 행위입니다. 그래서 선거는 ‘축제의 장’이어야 합니다.

애석하게도 우리가 아는 ‘선거’는 그렇지 않습니다. 대선이든 총선이든, 지방선거든 비방과 폭로 등 네거티브는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이는 곧 고소·고발로 이어지죠. 이게~ 뭡니까. 이런 사람들이 당선된들 내 나라, 내 지역, 내 삶이 행복해질 수 있겠습니까. 암만 봐도 살림살이가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대로 일할 일꾼을 골라야겠죠. 선거도 싫고, 정치도 싫고, 후보도 다 싫다고 외면하면 그만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최선이 없다면 차선이라도, 차선도 없다면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가 정치와 선거를 외면하는 순간, 별 거지 쓰레기같은 최악의 후보가 나라와 지역과 내 삶을 쌈싸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택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지만, 포기하는 순간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거 아세요? 우리 같은 유권자는 ‘표(票)’라는 절대 반지를 끼고 있습니다. 정당이나 후보들이 유권자들을 무서워하는 이유입니다. 민심은 무겁고, 무섭습니다. 잘못된 정치인을 가려내고, 게으른 정당을 심판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 바로 ‘투표’입니다. 그 힘을 쓰지 않는다면 권력은 국민 위에 군림하고, 독재하려 들 겁니다.


우리사회에 만연한 차별, 그릇된 관행, 나이와 계층과 젠더 갈등, 권력계층의 부조리를 알려고 하지도, 바꾸려고 하지도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에게 행복은 현실 세계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동화 속 ‘파랑새’나 다름없을 겁니다. 사전 투표를 하지 않은 분들은 내일이 여러분의 행복을 찾을 ‘절호의 기회’입니다. 자, 이제 우리 곁에 있는 파랑새를 찾아 떠나 볼까요?


*상단 이미지 출처: 셔터 스톡(shutterstock)

keyword
이전 07화민주주의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