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란 무엇인가

‘기자의 날’이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by 류재민

오월은 무슨 무슨 ‘날’이 참 많습니다. 첫날 근로자의 날을 시작으로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등등. 혹시 ‘기자의 날’이 있는 건 아시나요? ‘뭐? 그런 날도 있었어?’하는 분들이 꽤 많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기자인 저조차 그런 날이 있는 줄 오늘에야 알았으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기자의 날이 올해로 17회째라네요. 찾아보니까요. 기자의 날은, 1980년 5월 20일 전두환 신군부의 언론 검열에 맞서 전국의 기자들이 일제히 제작 거부에 들어간 날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2006년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특히 올해는 1980년 강제 해직된 언론인이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포함된 이후 처음으로 맞은 기자의 날로 의미를 더했습니다. 일부에서는 기자의 날을 '국가 기념일'로 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요. 과연 국민들은 뭐라고 할까요?


‘네, 당연히 그러셔야죠. 이 땅의 기자들이 불철주야 정론직필에 얼마나 노고가 많은데요’ 이럴까요? 기자인 저로서는 절대, 네버 ‘아니오’라고 할 걸로 봅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십중팔구 제 생각과 일치할 걸로 예상합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언론과 기자들이 국민에게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겠죠.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기자의 날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하기보다는요. 오늘 하루만큼은 기자들이 사회적 공기(公器)로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으로 보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근데요. 기자의 날만 있는 게 아닙니다. 신문의 날(4월 7일)도 있고, 방송의 날(9월 3일)도 있습니다.


이런 ‘날[日]’은 기자들만 하루 쉬게 해주는 건 어떠냐고요? 아... 그게, 될까요? 좀 곤란할 것 같습니다. 사건사고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니까요. 기자는 항상 취재 현장에 있어야 비로소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존재입니다. 기자는, 기사 안 쓸 때가 ‘쉬는 시간, 쉬는 날’입니다.


제17회 기자의 날 기념식 행사 모습. 출처: 한국기자협회 홈페이지.

기자 생활을 막 시작했을 무렵입니다. “당신은 왜 기자가 됐나요? 또, 기자란 무엇인가요?” 이런 질문이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저조차 왜 기자가 됐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걸 ‘솔직하게’ 털어놓기에는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문장을 주저리주저리 갖다 붙여 '답변을 위한 답변'을 한 기억이 납니다. 예를 들면 “약자의 편에 서서 공정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기자가 됐고, 기자는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 견제와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라고요.

다분히 ‘모범적’인 답변이죠? 요즘에는 ‘왜 기자가 됐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없습니다. ‘기자’라는 족속이 얼마나 비겁하고, 괴팍하고, 무식하며, 피곤하고, 짜증 나며, 믿지 못할 대상이면 그런가 싶습니다. 지금 누가 저더러 ‘기자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기자란, 크게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전통적이며 교과서적인 이미지의 기자, 그리고 다른 하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가장 현대적이고 현실적인 이미지의 기자이다. 쉽게 말하면, 후자는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고, 사회적 또는 공공의 이익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전자는 그 반대이다. 더 쉽게 말하면 앞엣것은 ‘기자’ 요, 뒤엣것은 ‘기레기’다.”


어떤가요? 귀에 쏙쏙 박히나요? 여러분께 쉽게 설명한다고 써놓고 보니, 갑자기 제 입맛이 써집니다. 기분도 가라앉으면서 ‘아, 내가 이러려고 기자가 됐나 자괴감이 드네’라는 우울함도 밀려듭니다.

청와대 출입을 함께 했던 선배가 페북에 ‘웃픈’ 포스팅을 올렸기에 소개합니다.


기자질 20여 년 만에 오늘(5월 20일)이 ‘기자의 날’이라는 것을 알았다. ‘기자’를 거꾸로 하면 ‘자기’. 어제 방송이 끝난 ‘어쩌다 사장2’에 알바로 나온 배우 김혜수 씨가 그 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이 쓰던 말이 “자기야”더라. ‘기자’를 ‘자기’로 부를 정도로 국민들에게 친근한 직업이 됐으면 좋으려면.. 숙제는 점점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 되고 있다. <메트로 신문> 김승호 기자 페이스북.


선배, 덕분에 저는 기자 생활 20년이 되기 전에 ‘기자의 날’이 있는 걸 알았습니다. 선배 같은 분들이 계시기에 후배 기자들이 ‘기자질’ 하며 먹고사는 거겠죠? 부디 자본의 유혹과 위협에 웃지도 말고, 울지도 말고, 흔들리지 말기를. 뚜벅뚜벅 걸어가며 ‘타의 모범’이 되어 주길 간곡히 바랍니다. 저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따라갈 테니까요.

“오늘 기자의 날을 맞아 기자협회는 새삼 다짐한다. 권력에 대한 언론 본연의 비판과 감시 기능을 소홀히 하지 않고, 언론 자유를 침해하려는 그 어떤 외부 세력의 간섭도 성역 없이 비판하겠다. 이것만이 우리 선배 언론인들이 지켜내고자 했던 기자 정신이며, 언론 신뢰 회복의 척도라고 생각한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 ‘제17회 기자의 날’ 기념사 중.

기념식에 참석한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은 축사를 통해 프레스센터 건물 벽에 걸린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 현수막을 이렇게 비판했습니다.


이부영 이사장은 “프레스센터 건물을 들어서다 오세훈 후보의 선거 펼침막이 건물 벽을 덮은 광경을 목격했다”며 “알다시피 이 프레스센터는 본래 신문회관 자리에 국민의 세금으로 올린 한국 언론의 메카다. 이 건물에다 오세훈 후보의 선거 선전물을 붙여놓은 것은 한국 언론의 얼굴에 먹칠하는 짓”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냥 개인 빌딩에 선거 사무실을 임대해도 좋을 텐데 왜 굳이 프레스센터를 욕보이려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우리는 그의 당락, 유불리에 관심이 없다. 유력 정치인, 선거에 나선 후보로서 언론을 존중하는 양식을 가져 달라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2022년 5월 20일 기자협회보 <“지금 우리 시대 언론은 어디에 있는가, 겸허하게 성찰할 때”> 중

사이비 기자, 가짜 뉴스가 판치는 시대입니다. 어디 가서 취재원을 협박 공갈해 돈을 뜯어내거나, 허위사실 보도로 사회 질서를 흐트러뜨리고 갈등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노력하겠노라 새삼 다짐하는 하루입니다. 남의 기사를 베끼거나, 사흘을 '4흘'로 쓰지 않겠다는 각오도 새삼 합니다.'치르다'를 치질 친구인 '치루다'라고 쓰지도 말 것을 재삼 다짐합니다.

마거릿 히긴스, 위르겐 힌츠페터, 그리고 이용마가 유난히 떠오르는 ‘날’입니다.


*상단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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