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이란 무엇인가

누구도 챙겨주지 않는, 훔쳐먹는 것

by 류재민

‘배움’이란 무엇일까요? 대개 학교 수업이나 강습, 수련 따위가 떠오를 겁니다. 학문적 탐구와 교육적 학습 모두 ‘배움’의 범위 안에 들어가는데요.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 글러브를 끼고 복싱하고, 일흔에 가까운 어머니께서 방송통신중학교를 다니고, 평일에는 피아노 학원을 다니는 것도 ‘배움’일 것입니다.

그런데요. ‘배움’이란 범주는 그보다 더 포괄적이고 광의적입니다. 쉽게 말하면 ‘깨달음’, 어렵게 말하면 ‘철학’까지 나아갑니다.


지난 5월 ‘제58회 백상 예술대상’에서 김태리 배우가 ‘스물다섯 스물하나’라는 작품으로 최우수상을 받았는데요. 수상소감이 압권입니다.


“20대 초반에 쓴 글을 봤는데 ‘배움은 그 누구도 챙겨주지 않고 내가 훔쳐먹는 것이다’라는 글이었다. 까먹고 있었는데 잘 썼더라. 희도에게서 많은 것을 훔쳐 먹었고 많은 것을 배웠다.” ‘희도’는 배우의 극 중 인물 이름입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에는 ‘배울 것’이 참 많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 것’에서 ‘배움’은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배움이란 깨닫기만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인 출처: ‘캘리애’ 블로그

30대 초반의 배우가 수상소감에서도 언급했듯 ‘누구도 챙겨주지 않는 것’이 바로 ‘배움’이라는 사실입니다. 계속 질문하고, 도전하면서 ‘열심히 훔쳐먹어야 하는 것’이 진정한 ‘배움’ 아닐까요?


백상 예술대상 시상식에서 특별한 무대를 장식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jtbc <뜨거운 씽어즈> 출연진들인데요. 이들은 축하 공연에서 ‘디스 이즈 미(This is me)’를 합창했습니다. 100일 동안 이 무대를 위해 연습한 출연진의 하모니가 하나 된 ‘울림’이 된 순간이었는데요.


나문희·김영옥 선생님 같은 시니어 배우들의 열정이 빛을 발한 무대였습니다. 공연 전, 나문희 선생님의 ‘독백 같은 서사’에 참석한 배우들 표정과 얼굴에는 ‘감동’이 주르륵주르륵 흘러 내렸습니다.


“데뷔 57년 만에 이 무대에서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그때 '나문희 전성기'라는 말을 들었다. 내 나이 일흔여덟이었다. 계속 버티고 좌절하고 또 일어서서 버텼던 것 같다. 이 자리의 여러분들 또한 저처럼 버티고 도전했기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저는 오늘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나왔다. 여든둘에도 마음먹으면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원하는 것에 끊임없이 도전하라. 확신만 있다면 여러분이 가는 그 길이 맞다.”


디자인 출처: ‘캘리애’ 블로그

시상식의 하이라이트는 하나 더 있었죠. 넷플릭스 드라마 ‘D.P.’로 남우조연상을 받은 조현철 배우의 수상소감입니다. 그는 수상소감에서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 행복한 ‘생의 마감’을 선물했습니다. 이어 세월호 아이들,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고(故) 김용균 씨, 고(故) 변희수 하사 이름을 거론하며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조현철의 아버지 조중래 명지대 명예교수는 아들의 수상소감을 들은 보름 뒤 별세했고, 아들은 조의금을 군 인권센터에 기부했습니다. 기부 액수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2~3시간에 불과한 시상식에서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배울 건 이렇게 많습니다. 이처럼 ‘배움’이란 철학 강의나, 논문 해석이나, 큰스님의 설법처럼 어렵지만도, 진지한 것만도 아닙니다. 삶에서 ‘자아’를 발견하고, 이 삶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깨닫고 끊임없이 질문하는 노력이 ‘배움의 기본’ 아닐까요?

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의 ‘과제’이다. 아무런 물음 없이 무심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물론 있고, 근원적인 의미 물음을 애써 외면하며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이 삶이란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인가’라는 의미 물음을 하며, 그 물음에 충분한 답이 주어지지 않을 때 극도의 절망감을 갖게 된다. 철학이나 종교는 그 자체의 권력 유지가 아니라 이러한 인간의 의미 물음에 대한 갈망에 진지하게 개입하여야 한다. 강남순『배움에 관하여』 111쪽

초딩 아들이 잠들기 전 한 말에도 저는 원효대사가 마셨다는 해골 물보다 더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엄마, 큰일 났어. 오늘은 귀신보다 무섭다는 일요일 밤이야.”


[58회 백상] 특별무대 - 뜨거운씽어즈 'THIS IS ME'♬ | JTBC 220506 방송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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