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살과 복근의 태생적 상관관계

살은 살이요, 근육은 근육이로다

by 류재민

뱃살과 복근은 공존할 수 있을까요? 살은 살이고, 근육은 근육인데 어떻게 공존할 수 있겠냐고요? 아닙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바로 제가 확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틈나면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는데 뱃살이 있을 리 있나, 물음표를 던지는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정말 모르고 하는 말씀입니다. 운동은 건강 관리 차원에서 합니다만, 그렇다고 ‘빡세게’ 하는 건 아닙니다. 헬스장에 자주 가려고 ‘노오력’할 따름이죠. 그런 습관을 들이면 적어도 뱃살은 들어가겠지 싶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아닌 건 아닙니다. 아무리 애써도 뱃살은 저에게서 떨어질 줄 모르고 있습니다. 다행인 건 뱃살 옆으로 복근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흔히 말하는 11자 복근까진 아니어도. 배꼽을 중심으로 양쪽 기둥에 가느다란 세로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선명하진 않습니다. 희미합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란 시처럼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합니다.


그 가녀리고 탄력 있는 복근 곁에 한 구석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뱃살이 때때로 미워집니다. 그래서 저는 그 살 이름을 ‘밉살’이라고 붙였습니다. 흠뻑 땀 흘려 운동한 뒤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어떤 기분인 줄 다들 아시죠?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잖아요.

남자들은 그렇게 나와서 알몸으로 거울을 봅니다. 아주 자랑스럽게. 가슴에 힘 ‘빡’ 주고. 갑자기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이 떠오르는군요. 다음은 제 자작시 <밉살>입니다. 급조해지어 봤습니다.


한 사나이가 샤워를 마치고 나와 가만히 거울을 들여다봅니다. 거울 속에는 큰 키에 잘생긴 얼굴이 있고, 굵은 목이 있고, 떡 벌어진 어깨가 있습니다. 그리고 복근 옆에 밉살이 있습니다. 어쩐지 그 밉살이 미워져 옷을 입습니다. 옷을 입다 생각하니 그 밉살이 가엾어집니다. 도로 벗고 쳐다보니 밉살은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밉살이 미워져 옷을 입습니다.


제 몸통에는 뱃살과 복근이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공존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밉살 덕분에 복근이 생겼을지 모릅니다. 뱃살을 빼려고 부지런히 운동했으니까요. 윗몸일으키기 같은 복근 운동만 열심히 한다고 복근이 생기는 것도 아니더군요. 전체적으로 강도 높은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병행해야 비로소 신기루처럼 보일랄 말락 합니다.

어떤 분들은 뱃살을 ‘나잇살’이라고 부릅니다. 본인은 술도 안 마시는데 배가 안 들어간다는 분이 계십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어제는 떡볶이, 오늘은 튀김에 순대까지 살이 찌는 음식을 분명히 드셨을 테니. 먹지 않는데 나오는 배는 없습니다.


저도 운동을 하는 만큼 많이 먹고 마십니다. 그래서 복근과 뱃살이 제 안에서 공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뱃살은 밉습니다. 필요한 분들한테 떼어다가 로켓 배송으로 보내드리고 싶기도 합니다. (작작 좀 먹어라!)

여름철이라 옷이 얇아졌습니다. 반 팔을 입으면 전완근부터 이두와 삼두가 ‘어, 쟤 운동 좀 하나 보네’라고 할 정도로 울끈불끈 나왔는데요. 티셔츠 아래로 볼록 나온 뱃살은 주먹으로 팍팍 패주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현실은 그저 배에 힘 잔뜩 주고 참을 뿐. 어쩌겠습니까. 그 애들도 다 제가 낳고 키운 걸.


사실, 사람들은 때로 완벽하게 계산하고 행동하는 합리적 인간보다는 서투른 열정의 인간에게 불가항력적으로 끌리곤 하지 않던가. 누가 그랬던가, 완벽한 복근을 가진 사람보다는 쥘 수 있는 한 줌의 뱃살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 더 끌리게 된다고. 김영민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106쪽.


저는 언제쯤 뱃살을 걷어내고 저런 복근을 바라보며 므흣한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요?

오늘 운동은 쉽니다. 내일 맛있는 거 실컷 먹고, 오늘 못한 것까지 왕창 쏟아부을 예정입니다. 밉살은 영영 떠날 줄 모르고, 까마득한 ‘11’ 자와 어렴풋한 ‘석 삼(三)’자가 불편하게 동거 중인, 제 배의 근황이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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