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세렝게티에는 왜 ‘맹수 기자’가 없을까?

권력과 친해지고 싶은가, 무서워 숨은 건가, 공격 타이밍 살피는가

by 류재민

취임 초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민생·경제는 차지하고 장관·대통령실 인사와 집권당인 국민의힘 내부 갈등, 김건희 여사 리스크까지. 지지율이 오르기는 고사하고, 더 떨어지지만 않으면 다행일 정도입니다.


윤 대통령이 국민적 호평을 받는 게 무엇이냐고 굳이 물으신다면, 언론과 소통을 꼽겠습니다. 그중에도 이른바 ‘도어스테핑’이라고 부르는 약식 회견일 겁니다. 윤 대통령은 ‘구중궁궐’이라고 불리는 청와대를 나와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겼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닥공’ 추진력으로 밀어붙였습니다.


대통령은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긴 뒤부터 출근길마다 기자들과 문답식 회견을 하고 있습니다. 각종 국정 현안을 비롯해 정치적 논란까지 다양한 이슈가 다뤄집니다. 하지만 정치 내공이 부족한 대통령은 실언을 자주 했습니다. 가장 자신 있는 분야인 동시에 지지율 하락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는 ‘양날의 칼’인 셈이죠.


상황이 이쯤 되니 출근길 약식 회견을 대하는 대통령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여름휴가와 취임 100일을 기점으로 발언을 절제하려는 모습입니다. 대신 질문을 제한하고, 대답도 원론적입니다. 하고 싶은 말만 하고, 해도 ‘하나 마나’한 얘기를 한다는 겁니다.


요즘 대통령 출근길 문답을 보면 “내가 알아서 잘할게!” 뉘앙스입니다. 대통령실도 대면 브리핑을 현저히 줄였습니다. 서면으로 브리핑을 대신하는 빈도가 늘었습니다. 과연 이걸 ‘소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현 정권에서 가장 잘하고 있다는 ‘소통’이라는 건가요?


윤석열 대통령 출근길 약식 회견 모습. 대통령실 제공.

문제는 기자들의 태도입니다. 질문을 제한하고, 원론적인 발언 수준이라면 문제 삼아야죠. 대면 브리핑 축소 역시 대통령실에 항의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하라고 기자단도 만들고, 간사도 뽑는 것 아니겠습니까?

중앙 기자단과 지역 일간지 중심으로 구성된 일명 ‘풀(pool) 기자단’은 ‘식물 기자단’ 같습니다. 내부적인 카르텔이나 형성할 줄 알았지, 대통령실에 대놓고 따질 생각은 1도 없어 보입니다. 비단 현 정권뿐만 그런 건 아닙니다. 박근혜나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도 그랬습니다.


왜 그럴까요? 못하는 걸까요, 아니면 안 하는 걸까요? 대상이 절대 권력이라? 회사에서 싫어하니까? 찍히면 대통령실에 출입 못할까 봐? 풀 기자단에서 내쫓길까 봐? 정부 광고를 받지 못할까 봐?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고초를 당할까 봐? 그래서 어느 기자는 대통령을 향해 “파이팅!”을 외친 걸까요?


권력에 빌붙어 곡학아세(曲學阿世)해야 하나요? 서슬 퍼런 정권이 무서워 침묵하는 게 능사인가요? 그것이 언론이고 기자라면, 이 땅의 국민들은 그들을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법이 있다면 탄핵당하고도 남았을 게 이 나라 언론의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권력을 비판할 줄 모르는 언론, 권력에 저항할 줄 모르는 언론, 권력에 빌붙어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언론은 탄핵받아 마땅합니다.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는 얼마 전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얻고자 하는 것들을 물러나야 하잖아요. 그게 아니라 ‘하나 던져줘서 감사합니다’라는 태도로 언론이 임하고 있단 말이죠. 기본적으로 언론 태도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진행자: 대본에는 없는 질문입니다만 (언론의) 태도가 다른 근본적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정준희: 쉽게 얘기하면 권력과 일체가 되어 있다라든가 권력의 ‘딸랑이’라든가 이런 것도 있는데, 사실 그런 정도 수준으론 납득이 안 되는 것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진행자: 맞습니다. 예전에 조국 전 장관 수사 그렇게 비인간적으로 진행했을 때 그때 언론의 태도는 마치 우리가 권력과 맞서는 투사가 된 것 같은 그런 비장한 모습들이 많이 보였거든요.
(중략)
정준희: 언론의 기본적인 비판 기능조차 이제 안 살고 있을 가능성.
진행자: 네.
정준희 : 두 번째는 아직은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 예를 들면 여기에 대해 비판적인 언론들, 소수 언론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이야기를 만약에 해버리면 선이 무너지잖아요.
(중략)
진행자: 두 번째였으면 좋겠네요. 그래도 때를 기다리고 있고, 정확한 때가 되면 마치 세렝게티의 호랑이처럼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정준희: 세렝게티엔 호랑이가 없습니다.
진행자: 늑대? 사자?
정준희: 사자.
진행장: 사자. 알겠습니다. -2022년 9월 8일, TBS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 중

‘용산의 세렝게티’에 호랑이든, 늑대든, 사자든, 맹수 기질을 가진 기자들이 날카로운 펜을 들기를 바랍니다. 출처: 대통령실 페이스북

윤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출근길 문답을 계속할 것이냐는 질문에 “계속하겠다”라고 답했습니다. 이런 식의 언론 대응이 ‘소통’이라면, 제가 대통령이라도 편할 것 같습니다.


‘용산 세렝게티’에 호랑이든, 늑대든, 사자든, 맹수 기질을 가진 기자들의 출현을 소망합니다. 날카로운 맹수 이빨같은 펜을 들고. 그래야 ‘국가’라는 초원에서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