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있으면 ‘그분’이 오는 날입니다. 덥수룩한 하얀 수염에 빨간 옷, 어깨에는 선물 꾸러미를 잔뜩 메고. 코 빨간 루돌프가 끄는 썰매를 타고. 굴뚝을 통해, 아 요즘에는 굴뚝이 없군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사는 그들은 아파트 현관 비밀번호를 알고 있으니 문제될 건 없습니다.
바로, 산타클로스가 찾아오는 ‘크리스마스’입니다. 이번 크리스마스가 메리나 해피나 화이트 일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산타 선물을 받지 못할 테니까요. 더구나 저는 불교 신자입니다. 그래서 메리, 해피, 화이트는 우리 집 아이들이나 기대하는 날입니다. 뭐,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서설이 길었던 건요. 크리스마스의 상징 중 하나인 ‘트리’ 얘기 좀 해보려는 이유에서 입니다. 트리 아시죠? 초록색 장식용 나무. 요즘은 집 근처 마트에 가면 반짝이는 전구와 장식용품과 함께 팔리고 있죠. 제가 어릴 적만 해도 시골집 근처에 심어진 소나무를 베어다 트리를 만들어야 하나, 고민했던 적도 있습니다. 절도범으로 몰릴까 겁나서 실행에 옮기진 못했지만.
이 트리가 말이죠. 사실 한국산 ‘구상나무’라고 합니다. 나무 이름은 제주도 방언 ‘쿠살낭’에서 유래했다는데요. ‘쿠살’은 성게, ‘낭’은 나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가지에 달린 잎 모습이 성게와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랍니다. 그럼 대체 이 나무는 어떻게 외국으로 넘어가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트리’가 되었을까요?
구상나무가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 전인 1920년이다. 영국 식물학자 어니스트 윌슨이 ‘아놀드식물원 연구보고집’ 1권 3호에 ‘한국에서 온 신종 침엽수 네 가지’란 글을 기고하며 구상나무를 보고하게 된 경위를 상세히 소개했다. (중략) 1917년 윌슨은 한라산과 지리산에서 구상나무를 관찰한 뒤, 이를 전나무속 분비나무와 구분되는 하나의 새로운 종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1920년 학계에 ‘Abies koreana’라는 이름으로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윌슨은 한국에서 구상나무 씨앗을 가져와 아놀드식물원에 심었는데, 이것이 자라 큰 나무가 됐다. 2020년 12월 12일, 동아사이언스 <크리스마스 트리는 알고보면 '한국산'··· 멸종위기의 구상나무를 구하라> 중
아마도 윌슨이라는 식물학자는 그 옛날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붓두껍 속에 몰래 목화씨를 숨겨 들어온 문익점 같은 인물 아니었나 싶습니다. 근데 말이죠. 한라산과 지리산의 구상나무가 멸종위기라고 합니다.
문제는 지구 온난화 등 기후 위기 때문입니다. 기온이 오르면서 나무에 필요한 만큼 물을 공급받지 못한 탓입니다. 과거에는 5월까지도 눈이 남아 나무가 마실 물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기온이 올라 봄이면 눈이 다 녹아 없어진다고 합니다. 목이 마른 나무가 바짝바짝 말라죽어가는 거죠. 흑흑.
한라산과 지리산 구상나무가 멸종위기라고 합니다. 문제는 기후 위기 때문입니다.
기후 위기가 가져온 생태계 변화가 어디 구상나무뿐이겠습니까. 육지뿐만 아니라 해양의 동식물도 기후 변화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했다는 뉴스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닙니다.
구상나무가 없어도 간편하게 살 수 있는 인조 트리 덕분에 크리스마스는 그럭저럭 보낼 것 같습니다. 저처럼 산과 들로 소나무를 베러 가겠다고 도끼를 찾는 아이들도 없으니까요. 다만, 토종 나무가 기후 위기로 멸종되고 있다는 건 반갑지 않은 소식입니다.
그나저나 우리 집 아이들은 저더러 “이번 크리스마스에 무슨 선물을 해 줄 거야”라고 묻습니다. 제가 산타할아버지도 아니고. 뭐, 어쩌겠습니까. 유치원 때부터 산타가 저라는 걸 알았다는 걸요. (그럼 산타 타령은 하지 말든가) 그럼에도 또 어쩌겠습니까. 하늘엔 영광, 땅에는 축복, 가정엔 평화가 깃들려면, 고요하고 거룩한 밤이 되려면, 산타할아버지는 아니어도 ‘산타 아버지’는 돼야죠. 미리 크리스마스입니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