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허무’와 ‘회복 탄력성’ 사이에서

어느 날 갑자기, 불청객이 찾아왔다

by 류재민

요 며칠, 이상한 녀석을 만났습니다.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녀석이었는데요. 올해도 얼마 안 남았으니 얼굴이나 좀 보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아무리 송년회 시즌이라고 해도 정말 그 녀석만큼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녀석은 막무가내로 찾아와 저를 불러냈습니다.


녀석의 이름은 ‘허무’라고 합니다. 혼자 온 것도 아닙니다. 꼬붕 절친인 ‘무기력’까지 대동했습니다. 황혼에서 새벽까지 저를 붙들고 놓아주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녀석들에게 물었습니다. “대체, 왜 갑자기 찾아와 이러느냐”라고. 그들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만히 보니, 올 한 해 네가 한 일이 참 많더구나. 대선과 지방선거라는 굵직한 선거도 상반기에만 두 차례 치렀고 말이야. 어쩌자고 마라톤은 두 번이나 뛴 것이야. 둘셋 중 한 명은 걸렸다는 코로나도 용케 피했어. 최근에는 출판사와 책 계약까지 했다지?”


저는 따졌습니다. “그럼 잘했다고 칭찬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니야? 허무와 무기력 대신 기쁨과 행복을 보냈어야지?”


그들은 비웃음인지, 조롱인지는 모르겠으나 히죽이며 말했습니다. “이미 걔들은 네 옆에 와 있어. 네가 알아보지 못할 뿐이지. 인간들은 참 불쌍해. 항상 즐겁고 행복한 상태만 바라지.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데 말이야. 사실, 우리를 부른 건 네 맘속의 허탈함이거든.”


제가 만든 '인생의 허무와 회복탄력성 사이에서' 포스터입니다.

그리고 저는 꿈에서 깼습니다. 참, 오래 잤습니다. 왜, 그런 날 있잖아요. 아무 일도 없는데, 아무 일도 하기 싫을 때. 세상이 속절없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느껴질 때. 요즘 제가 그런 악몽을 꾸었나 봅니다. 옆에 누운 아내는 복에 겨워하는 ‘배부른 투정’이라고 욕하고 있지만.

패턴은 일상의 행동에 작은 전구를 일정한 간격으로 달아놓는 일이기에, 삶은 패턴으로 인해 조금이나마 빛나게 된다. (중략) 자기 안에서 무엇인가 정처 없이 무너져 내릴 때, 졸렬함과 조바심이 인간을 갉아먹을 때, 목표 없는 분노를 통제하지 못할 때, 자기 확신이 그만 무너져 내릴 때, 인간을 좀 더 버티게 해줄 것이다. 김영민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94쪽

살면서 어느 정도의 긴장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올해 세운 목표를 이루었다고 착각한 순간, 일말의 긴장마저 수십억 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로 날아갔나 봅니다. 그 틈을 비집고 ‘허무’와 ‘무기력’이 찾아왔나 봅니다. 잠시 방심한 사이 달갑지 않은 불청객이 몰래 마음속에 들어와 어지럽게 헤집고 간 기분입니다.


이 역경의 시간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회복을 위한 ‘탄력’이 필요하겠죠. 회복 탄력성은 카톡 선물 보내기로 할 수도, 실시간 계좌이체로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닐 겁니다. 저 스스로 다시 마음의 근육을 일으켜 세워야 할 일입니다. 아내는 제 마음의 근육을 일으켜 세울 비타민 같은 말을 쑥, 던집니다. “이달 카드 명세서 보여 줄까?” 오, 맙소사!

회복탄력성은 마음의 근력과 같다. 몸이 힘을 발휘하려면 강한 근육이 필요한 것처럼, 마음이 강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튼튼한 마음의 근육이 필요하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마음의 힘은 일종의 ‘근육’과도 같아서 사람마다 제한된 능력을 갖고 있으며, 견뎌낼 수 있는 무게도 정해져 있다. 그러나 마음의 근육이 견뎌낼 수 있는 무게는 훈련에 의해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 김주환 『회복 탄력성』 23쪽


올해가 이십일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견뎌낼 수 있는 무게를 감당할 수 있도록 근육을 길러야겠습니다. 내일 당장 ‘월요일’이라는 악당이 찾아오겠지만, 그들에 맞설 ‘토요일’을 기다리며 인생의 허무와 무기력에 냉정해져야겠습니다. 물론, 이번 달 카드값에도 냉정해져야겠습니다.


녀석들이요, 오냐오냐 해줬더니 툭하면 찾아옵니다. 여간해서 떼어내기 쉽지 않습니다. 무슨 빚쟁이들도 아니고. 그래서 내일부터 남은 스무날 동안 열심히 ‘웃는 훈련’을 할 예정입니다. 그래야 산타할아버지가 푸짐한 선물 보따리를 들고 올 게 아니겠어요?


악당 이름은 먼데이(Monday), 그와 싸우는 슈퍼히어로 이름은 위켄드(Weekend), 먼데이와 위켄드의 싸움은 끝이 없다. 먼데이가 인간을 지배할 듯하면, 어느덧 위켄드가 도착한다. 그러나 위켄드도 오래가지 않는다. 다시 먼데이가 역습한다. 시간 구분은 다름 아닌 인간이 스스로 만든 거라는 점을 깨달았을 때야 비로소 이 싸움은 끝날 것이다. 깨달은 사람은 사리가 생기고, 그 사리의 내공에 힘입어 먼데이를 물리친다.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사리 대신 요로결석이 생길 뿐. 먼데이가 오면 할 수 없이 출근해야 한다. 그뿐이랴. 아까운 월차를 내서 요로결석 치료를 받아야 한다. 김영민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94쪽


*상단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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