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난 도깨비이고, 넌 이무기야
옷을 갈아입은 도깨비는 피곤함이 몰려오는 듯 보였다. 낯선 곳에서 인간과의 동거도 영 어색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의 눈에 띄면 어쩌나 하는 게 가장 큰 걱정이다. 도깨비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저기...저 말야...?”
“왜 그러는데?”
“알다시피 내가 지구인이 아니잖아. 그래서 외부인 눈에 띄기라도 하면 곤란한데.”
“그래서?”
“혹시, 숨어있을 만한 장소가 있을까?”
“아, 은신처? 음..그런 데가 어디 있을까.”
머릿속에 생각나는 공간이 하나 있긴 하다. 바로 집에서 80여 미터 떨어진 오두막이다. 오두막은 옛날 부모님이 쓰던 농기구를 보관하던 창고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몇 가지 도구만 남겨뒀다. 치울만한 물건은 별로 없지만, 사람 사는 곳이 아니라 가재도구는 전혀 없는 상태다. 다가오는 겨울을 나려면 난방장치도 필요했다.
“오두막이 하나 있긴 해. 그런데 음식을 하려면 조리도구며, 생필품이 필요하지 않겠어?”
“그건 걱정하지 마. 최소 6개월은 먹지 않아도 살 수 있거든.”
“것 참, 신기하네. 하긴 외계인이니까.”
“외계인이라는 말 대신 내 이름인 ‘도깨비’라고 불러줄 순 없겠니?”
“외계인더러 외계인이라는데 뭘.”
“그럼 너도 ‘이무기’라고 안 하고 ‘야, 인간아’라고 부르면 기분 좋아?”
하긴 그랬다. 외계인도 생물이고, 인격체인데. 함부로 부르면 내 인격체마저 저급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잠시 고민하고 나서 도깨비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넌 초능력이 있으니, 뭐든 다 할 수 있지?”
“뭐든 다 할 순 없어. 할 수 있는 것만 할 수 있어.”
“그래? 그러면 오두막에 넣을 난방 도구가 필요한데, 가능해?”
“난방 도구? 뭐가 필요하지? 우리 별에선 난방할 일이 없거든.”
“기본적으로 전기담요나 장판, 난로, 온풍기 같은 거.”
“아, 그 정도는 만들 수 있어.”
나는 도깨비를 데리고 오두막으로 향했다. 늦가을 하늘빛이 맑고 눈부셨다. 추수를 마친 들녘은 황량한 벌판처럼 보였고, 그 위를 바람이 잠자코 지나갔다. 햇빛을 똑바로 볼 수 없는 도깨비는 바닥을 보며 내 뒤를 따랐다. 힐끗 돌아보니 미리가 유치원 시절 신던 신발을 신고 있었다.
우리는 무왕산 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랐다. 무왕산은 백제 무왕이 신라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를 만나러 갈 때 이 산을 넘어갔다는 전설이 내려져 온다. 산세가 험하진 않았지만, 산짐승이 많아 입산 제한 구역이 꽤 많다.
오두막은 입산 제한 구역 경계에 걸쳐 있다. 그렇다 보니 인적이 드물고, 가는 길도 좋지 않다. 오전 11시가 넘었는데, 풀잎에 이슬이 매달려 있다. 그래서 지날 때마다 바짓자락이 젖었다. 걷다 보니 어느새 오두막 앞에서 다다랐다.
“자, 여기야.”
나는 다섯 평 남짓 오두막을 소개했다. 오두막은 전체가 통나무로 지어졌다. 조부가 손수 지었다. 6.25 전쟁 때는 증조부의 피난처이기도 했으니, 100년은 족히 넘은 유물과도 같은 곳이다.
나는 세월의 손때를 한껏 머금은 오두막의 미닫이 손잡이를 힘껏 밀어젖혔다. ‘끼이익, 끼익’ 나무 틀이 비틀거리는 소리와 함께 오두막 내부가 나와 도깨비의 눈에 서서히 들어왔다.
오래된 나무 냄새와 농기구에서 풍기는 쇠붙이 냄새가 났다. 천장과 벽 모서리 여기저기에는 흰 거미줄이 잔뜩 처져 있다. 벽에는 곡괭이와 삽이 두벌 씩 걸려 있고, 바닥에는 호미와 낫, 쇠스랑 따위의 농기구가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내부는 축축하고 음산하고, 썰렁했다.
“오래 쓰지 않아서 엉망이군. 4년 전 어머니 돌아가신 뒤부턴 여기 올 일이 없었으니.”
“아버지는?”
“아버지는 10년 전에 암으로 먼저 돌아가셨고.”
“그렇구나. 나는 부모와 자식 관계를 몰라. 우리는 포유류가 아니거든.”
“포유류가 아니면? 알에서 나오나?”
“크크. 비슷해. 공장식 건물에 커다란 시험관을 설치하고, 그 안에서 체외수정이 이루어져. DNA 복제 방식이고, 보통 1년에 5쌍이 출생하는 꼴이야.”
“성별이라는 건 없어? 수명은 어느 정도고?”
“성별은 없어. 대개 50년을 사는데, 난 지금 절반 정도를 살았어.”
“어린앤 줄로만 알았는데, 다 큰 청년이었네?”
“내가 뭐랬어. 나는 우리 별에서 정찰대장이라고, 우리 별에서는 이게 표준 키야. 여기서 더 크지도 작지도 않아.”
“하긴, 대대손손 복제니까.”
도깨비와 신상에 관한 이야기를 마친 나는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도깨비는 그런 나에게 “비행접시를 고치려면 부품이 필요해”라고 말했다.
“외형복원은 내가 어떻게 손을 보면 되겠는데, 엔진이랑 일부 부속은 사야 할 것 같아.”
“그래? 무슨 부품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려줘. 내가 한번 구해볼게.”
“웬만한 건 인터넷으로 살 수 있을 거야.”
도깨비 손에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휴대용 통신장비가 들려 있었다. ‘스마트폰’과 같은 용도였다. 도깨비는 카톡 앱을 깔았고, 내 연락처를 친구 등록했다.
“카톡으로 보낼 테니까 좀 부탁해.”
“별 걸 다하네. 알았어. 그런데 부품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아? 그렇군. 돈은 내가 만들어 줄게.”
“뭐라고? 돈을 만들어 준다고? 어떻게?”
“어허, 내가 누군가. 금 나와라 뚝딱, 하는 도깨비님 아니신가.”
“뭐? 하하하. 그럼 난 집에 가서 이부자리 좀 챙겨 올 테니까 여기 정리 좀 하고 있어. 저녁 무렵 다시 올게.”
“그래, 그동안 난 비행접시 좀 살펴보고 있을게.”
“그런데 말이야. 커다란 비행접시를 밖에 꺼내 놓으면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까?”
“걱정 마. 이 안에서 할 수 있어.”
도깨비는 손가락으로 사각형을 그렸다. 순식간에 네모난 모니터가 공중에 떠올랐다. 태블릿 피씨 모양이었다. 터치 패드 형식으로 버튼 몇 개를 누르니 도깨비가 타고 온 비행접시가 모니터에 나타났다. 나는 휘둥그레 한 눈으로 신기한 듯 모니터를 바라봤다.
‘영화에서나 보던 걸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이야.’
신기하게 바라보는 날 쳐다보던 도깨비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곧 돌아서 밖으로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 할 일이 많아졌다. 산길을 내려오면서 오두막 쪽을 여러 번 돌아봤다.
‘별일, 없겠지?’
골짜기 입구까지 내려왔을 즈음이다. 아래쪽에서 누군가 올라오는 게 보였다. 강 포수였다. 강 포수는 학창 시절 야구선수였다. 포지션이 ‘포수’였다고 ‘강 포수’라고 하는데, 요즘은 사냥하러 다니는 ‘포수’로 불린다. 강 포수는 이 동네 사람은 아니었으나, 멧돼지와 꿩사냥을 하러 자주 무왕산을 찾았다.
강 포수가 나를 알아보고 말을 걸었다. “이 국장.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산에 다녀오는 길인 것 같네?” 나는 짐짓 놀란 표정으로 말을 더듬어 받았다. “아, 안녕하세요. 오두막에 좀 갔다가요. 연장을 가지러 갔는데 없길래 돌아가는 길입니다.”
“오두막에 연장을? 가을걷이도 끝난 마당에 무슨 일을 하려고?”
“그게, 저..아, 집에 못이 몇 개 빠져서 망치가 있나 해서요. 철물점에 가서 하나 사야겠어요.”
내 말을 건네 받은 강 포수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내처 산 쪽으로 향했다. 오른손에는 매번 갖고 다니는 엽총이 들려 있었고, 허리춤에 찬 탄띠에는 산비둘기 한 마리가 매달려 있었다.
“벌써 한 마리 잡으셨나 보네요?”
“올라오다 들판에서 나락을 주워 먹고 있더군. 정신이 팔렸을 때를 노려 한방에 잡았지.”
강 포수는 수염을 쓰윽, 한번 만지더니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나는 갑자기 겁이 났다. 혹시라도 강 포수가 오두막에라도 들어가면 도깨비와 마주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걸 어쩐다. 다시 돌아가야 하나. 아니면 강 포수를 붙잡아야 하나.’
조바심이 났다. 그사이 강 포수는 이미 내 사정거리를 벗어나 있었다. 다행히 강 포수의 동선은 오두막과는 반대 방향이었다.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집 쪽으로 발길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