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늦가을의 저녁은 일찍 찾아온다. 한로와 상강이 지나면서 낮은 짧고 밤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시끄럽게 울던 매미 소리는 잦아들고, 대신 귀뚜라미가 울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한 채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항공기 부품 판매 정보를 검색했다. 대부분 해외 직구 상품이었고,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문제는, 도깨비가 보내온 목록과 맞는 부품이 하나도 없다는 거였다.
“이걸 어쩐다. 비슷한 걸 사고 싶어도, 맞는 건지도 모르겠고. 난감하군.”
나는 다시 옷을 걸쳐 입었다. 도깨비를 찾아가 직접 물어보고 사는 게 나을 성싶었다. 어스름이 내린 산길을 저벅저벅 올랐다. 저 멀리 오두막이 보였다. 가는 길에, 아침에 도깨비가 신었던 미리 신발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그새 미리도 숙녀가 다 됐다. “걸음마도 못 하던 녀석이었는데, 내년 봄이면 중학생이라니.”
오두막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내 앞에 다시 강 포수가 나타났다.
“아니, 여기는 무슨 일로?”
강 포수는 뭔가 수상한 걸 직감한 듯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말이지. 이 국장네 오두막 안에 산 짐승이 들어있는 것 같아.”
“뭐라고요? 쥐나 들고양이 같은 녀석이겠죠.”
“아니야, 뭔가 대단한 짐승의 기운이 느껴져.”
“대단한 짐승이요?”
강 포수는 오두막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마치 살기 어린 야수와 같았다. 섬뜩했다. 머리가 쭈뼛 섰고,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이대로 문을 열었다가는 도깨비 정체가 탄로 날 판이었다. 난 도깨비에게 도망가라는 소리도 치지 못하고 어쩔 줄 몰랐다.
강 포수는 이미 총알을 장전한 상태였다. 문을 열자마자 목표물을 확인하고, 확인 즉시 방아쇠를 당길 태세였다. 내 손은 덜덜 떨렸고, 초조해졌다. 숨과 심장이 동시에 멎는 듯했다. 강 포수는 숨을 죽인 채 입 모양으로 하나, 둘, 셋으로 세고 나서 오두막 문을 열어젖혔다.
힘껏 열어젖힌 오두막 안에는 스님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도깨비는 보이지 않았다. 긴장이 풀린 강 포수는 헛기침하면서 말했다.
“아니, 웬 스님이 이곳에 계십니까?”
스님은 아무런 말 없이 목탁을 앞에 놓고 염주를 굴리고 있었다. 나는 스님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스님, 어떻게 여기에 계십니까. 여기는 제 오두막입니다만..”
스님은 두 사람의 물음에 아무 대꾸 없이 눈을 감고 염주만 굴렸다. 강 포수는 오두막을 나갔다. 나도 문을 닫고 따라 나갔다.
“이런 땡중 같은 양반을 봤나. 누가 물어보면 대꾸를 해야 할 것 아냐. 여기가 무슨 법당이냐고. 허락도 없이 들어와선.” 강 포수는 마치 오두막이 자기 소유인 것처럼 말하며 투덜거렸다.
“냅두세요. 저러다 가시겠죠.”
“그런데 이 국장. 이 산에 절이 있었나? 난 그동안 절이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네, 저도 절은 못 봤어요. 어디 암자에서 도 닦는 스님인가 보죠.”
“그런가. 아무튼 이상한 스님이군.”
강 포수는 기대한 ‘대물’이 아니라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는 오늘 산비둘기 한 마리만 잡은 모양이다. 탄띠에 더 많은 사냥물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탈해하며 내려가는 그를 보다 돌아서서 나는 아주 낮고 작은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오두막은 잘 치워져 있었다. 아침에 바닥에 뒹굴던 농기구는 한쪽에 정돈돼 있었고, 모서리 곳곳에 있던 거미줄도 깨끗하게 치워졌다. 그런데, 도깨비가 보이지 않았다. 도깨비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스님에게 넌지시 물어보기로 했다.
“스님, 혹시 여기 들어오기 전에도 아무도 없었나요?”
그때였다. 스님이 앉았던 주변에 소용돌이가 일더니 도깨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이럴 수가. 둔갑술도 해?”
“명색이 도깨빈데, 이 정도쯤이야. 대신 둔갑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말을 할 수 없어.”
“어쩐지, 뭘 물어봐도 입을 꾹 닫고 있길래 이상하다 싶었다.”
혼이 반쯤 나갔다 돌아온 나는 도깨비가 웃는 모습을 보고야 긴 한숨을 내쉬었다. 강 포수에게 들킬 뻔한 위기는 도깨비의 둔갑술로 모면했다. 도깨비는 나에게 강 포수에 대해 물었다.
“이 동네 사람은 아닌데, 거의 주말마다 사냥하러 와. 겉으로는 친절한 척하지만, 속을 모르겠을 사람이야. 둔갑술이 있더라도 조심해야 할 거야.”
“알았어. 나도 네가 들어오는 줄 알고 문을 열려다 깜짝 놀랐어.”
나와 도깨비는 공구함을 깔고 나란히 앉았다. 그러고 나서 부품 구매와 관련해 도깨비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도깨비는 “정확히 맞지 않아도 돼. 비슷한 거면 내가 어떻게든 수리해 볼게”라고 말했다.
어둠이 내려앉았다. 나는 서둘러 다시 내려와 인터넷으로 도깨비가 알려준 부품을 주문했다. 그런 다음 도깨비의 잠자리를 챙겼다. 거실 한쪽으로 치워뒀던 라꾸라꾸 침대와 모포를 챙겼다.
밤이 깊어진 산길은 스산했다. 부엉이 우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리고, 노루인지 고라니인지 모를 산짐승이 낙엽을 밟고 지나가는 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오두막에 도착했을 때, 도깨비는 비행접시의 내연기관을 살피고 있었다.
“난 암만 봐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그럴 수밖에. 글자도 다르고, 모든 시스템은 암호화돼 있거든.”
도깨비는 능수능란하게 기기를 다뤘다. 모니터 안을 바라보는 눈은 반짝였고, 가끔 입을 실룩였다. 습관적으로 혀를 날름거리기도 했다. 가느다란 손가락은 부지런히 움직였고, 짧은 두 다리는 절묘하게 꼬고 앉았다.
도깨비는 오늘 철야 작업을 한다고 했다. 하루라도 빨리 수리를 마쳐야 카트휠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카트휠의 정찰대장 ‘도깨비’. 그는 대체 무엇을 알아보려고 여기에 온 걸까. 이름은 하필 또 ‘도깨비’일까. 녀석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궁금증만 더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