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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Dec 30. 2022

안녕, 도깨비(8화)

#8. 아내와 아이들의 방문

주말 오후에 아내와 아이들이 촌평리 작업실로 왔다. 세 식구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말에 이곳에 왔다가 이튿날 점심까지 머물다 돌아갔다. 지난주에는 외가에 다녀오느라 한 주일을 건너뛰었다.      


미리와 바리는 작업실에 오자마자 메고 온 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은 이곳에 올 때마다 대문 밖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들과 놀며 시간을 보냈다. 오늘도 고양이들에게 줄 사료를 가져왔다.      

“시골에 사는 고양이들한테 사료를 주면 안 돼. 사료 맛을 알기 시작하면 쥐를 잡을 생각을 안 하거든. 이 동네에는 쥐들이 많아서 고양이가 잡아주지 않으면 골치가 아프다구.”     


아이들은 내 말을 귓등으로 흘려버렸다. 그사이 새끼를 쳤는지 못 보던 새끼고양이가 세 마리나 아이들 곁으로 모여들었다. 새끼 고양이 옆에는 어미가 몇 걸음 떨어져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새끼 고양이들 눈은 모두 초록색이었고, 어미는 짙은 호박색이었다. 새끼들의 털은 흰색이었고, 어미는 흰색과 갈색이 반씩 섞였다. 아비의 털 색이 갈색이었나 싶었는데, 아비는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이 밖에서 고양이들과 놀고 있을 때, 아내는 나를 조용히 불렀다. 지난주 친정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려는 참이었다. 장인어른의 몸이 부쩍 쇠약해졌다는 얘기부터 꺼냈다.      


“거동을 잘못하는 거야 어쩔 수 없는데, 엄마가 수발들다 병나겠어.”

“그러게 말야. 어머니도 연세가 많아 힘드실 텐데. 간병인을 부르면 안 되나?”

“아버지가 원치 않으셔. 다른 사람이 대소변을 받는 게 불편한가 봐. 엄마만 찾아.”

“그렇지, 정신은 멀쩡하시니. 장모님 체력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걱정이야. 동생들한테 얘기하기도 그렇고.”     


아내는 집안의 장녀다. 남동생만 둘인데, 둘 다 외국에 나가 산다. 큰 처남은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밟고 있고, 작은 처남은 호주에서 무역업을 하고 있다. 처남들이 외국에서 살다 보니 명절 때나 볼까 하는 정도다. 사업이 바쁜 작은 처남은 벌써 3년째 얼굴을 못 봤다.     


“여보, 그래서 말인데..”     

아내는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려는 듯 말을 천천히 했다. 그녀는 매사에 신중했고, 내 허락이 필요하다 싶은 얘기를 할 때는 꽤 뜸을 들였다.      

“왜? 무슨 얘기를 하려고 또 그렇게 말을 끌어.”

“다음 달에 방학하면 말야. 애들 데리고 친정에 좀 가 있으려고 해. 한 달만이라도 내가 가 있으면 엄마도 편하지 않겠어? 애들도 할아버지 할머니 좋아하니까.”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내가 오히려 미안하네. 찾아뵙지도 못하고.”

“방학에는 학교 나갈 일이 거의 없으니까. 애들도 복싱이랑 태권도는 내가 태워다주면 되고.”

“그래, 그렇게 해. 나도 애들 방학 끝날 때까진 글을 마무리해야 할텐데..”

“참, 글은 어때? 잘 되고 있는 거야?”     

난 순간 머뭇거렸다. 잘 안 써진다고 하면 걱정할 테고, 그렇다고 잘 써진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으응..그냥, 그럭저럭. 매일 조금씩 쓰고는 있어.” 그 정도가 적절한 대답이었다. 아내도 굳이 더 묻진 않았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의미였다.      


밖에서 놀다 들어온 미리와 바리가 내 작업실 문을 두드렸다. 작업실 방 안으로 들어온 아이들은 책상 위에 올려둔 사탕 통을 보더니 환호성을 질렀다.      


“야호, 아빠, 우리가 올지 알고 사탕을 통째로 사다 놨네?”     

도깨비한테 가져다주려고 산 사탕이 아이들 손에 들어가고 말았다. 아이들은 허락도 없이 뚜껑을 열고 양손에 몇 개씩 사탕을 쥐었다. 그리고는 “아빠, 잘 먹겠습니다”하며 나갔다.  

    

“이 썩으면 치과 가야 하니까 조금씩 먹어라. 난 분명히 경고했어.”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였다. 그래도 통 안에는 절반 넘게 사탕이 남아 있었다. 통째로 들고 나가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느덧 저녁때가 다 됐다. 도깨비가 있는 오두막에 가야 하지만 좀처럼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나서 산책을 갔다 온다고 하고 잠시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대문 밖에 나와보니 아이들이 사탕 껍질을 벗겨 새끼 고양이들에게 내밀고 있었다. 새끼 고양이들은 바리가 내민 사탕을 조심스럽게 혀로 핥았다. 단맛을 알았는지 손가락까지 핥는 통에 바리가 쥐고 있던 사탕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고양이들이 순식간에 떨어진 사탕을 향해 달려들었다. 새끼 고양이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나뒹굴었고, 긴 하품을 하고 있던 어미 고양이는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무리를 쫓아냈다. 하지만 사탕은 사라지고 없었다. 어떤 녀석이 입 안에 물고 있는지, 아니면 이미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는진 알 수 없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에 놀란 건 고양이들만은 아니었다. 바리도 깜짝 놀라 뒤로 넘어졌다. 내가 뒤에 가서 일으켜주자 바리는 바지에 묻은 흙을 털며 일어났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새 사탕을 꺼내 비닐을 벗긴 다음 새끼고양이에게 다가갔다. 새끼 고양이는 야옹, 소리를 내며 바리 앞으로 다시 걸어왔다. 어미 고양이는 새끼의 행동을 주시하며 경계를 살폈다.      


나는 미리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고, 바리는 새끼 고양이가 막대에 붙은 사탕을 거의 먹어 땅에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들어왔다. 나는 식탁 앞에 앉은 바리의 검은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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