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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Dec 30. 2022

안녕, 도깨비(7화)

#7. 도깨비와 막대사탕

장은 구운 마를 동네 아이들에게 먹이고 친해진 다음 노래를 지어 따라 부르도록 했다. 노랫말은 선화공주가 장을 사모해 밤마다 찾아가는 내용이다.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사귀어 두고 서동 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노래는 장안을 거쳐 도성에 퍼지고 급기야 궁궐까지 들어갔다. 대소신료들은 왕에게 공주를 귀양보내도록 진언했다. 왕은 할 수 없이 선화를 궁에서 내보냈고, 장은 선화를 데려다 아내로 삼았다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서동요>라는 이름으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나는 이 설화를 토대로 새로운 장르의 소설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궁에서 쫓겨난 선화공주에게 서동인 ‘장’이 어떻게 접근했는지, 또 선화는 그의 마음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쓰는 건 전적으로 창작이 필요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자신이 없었다.      


내 이야기를 듣던 도깨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지만, 나도 무슨 말을 해줄 수가 없겠어. 우리는 인간들만큼의 감정은 없거든. 어쩌면 내가 이곳에서 인간들에게 배워갈 임무가 바로 그 ‘사랑’이라는 감정인 것 같아.”     


“괜찮아. 그건 전적으로 인간이면서 작가인 내가 상상력을 발휘해서 써야 하는 몫이니까. 그리고 창작은 고통스러운 작업이거든.”     


나는 애써 도깨비를 다독였다. 도깨비는 비행접시 수리도 수리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어떻게 수행할지에 더 고민인 것 같았다. 인간들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감정, 그걸 느끼고 배우는 게 그가 지구에 온 이유였기 때문이다.


도깨비는 나더러 다음에 올 때는 막대사탕을 더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달콤한 맛도 중독성이 있었지만, 사탕에 새겨진 울긋불긋한 무늬들이 카드휠과 무척 닮았기 때문이리라. 도깨비는 그걸 보면서 자신이 떠나온 행성을 떠올렸고, 복귀의 시간을 준비하는 듯 했다.      


나는 도깨비에게 줄 사탕과 몇몇 생필품을 사기 위해 차를 몰고 시내로 나갔다. 마트에 들러 플라스틱 통 안에 가득 담긴 막대사탕을 통째로 샀다. 털장갑과 모자도 사고, 유통기한이 긴 과자도 장바구니에 넣었다. 계산을 마치고 마트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트렁크에 짐을 싣고 운전석 문을 여는 순간, 누군가 나를 불렀다.      


“이무기 국장, 오랜만이네.”

“어? 경감님, 안녕하세요.”     


전국경찰서 오진환 경감이었다. 오 경장은 내가 수습기자 시절 경찰서를 출입하던 때부터 알고 지내는 지인이다. 햇병아리 시절, 사건 사고 자료를 챙기러 강력계에 들어가면 순경이던 그는 가장 먼저 출근해 청소하고 있었다. 빗자루로 사무실과 복도 바닥을 쓸었고, 대걸레를 깨끗이 빨아다 구석구석 닦았다. 고참 형사들의 책상도 정리하고, 수건으로 먼지를 훔쳤다.      


그는 부지런함과 성실함은 기본이고, 업무 능력까지 탁월했다. 관내 살인사건 용의자를 검거하는 공로로 1년 만에 경위로 초고속 승진했다. 지금은 무궁화 두 개를 붙이고 있다. 정보계 계장으로 있다.     


내 차 앞까지 온 오 경감은 “차 한잔할 시간 있어?”라고 물었다. 내게 뭔가 할 말이 있다는 투였다. 무슨 일일까 싶어 나는 그를 차에 태우고 근처 커피숍으로 갔다. 커피숍에는 아무도 없었다. 코로나19에 4인 이상 집합 금지가 내려진 탓도 있겠지만, 시골에서 한가하게 커피를 마시러 오는 사람은 드물었다.      


첫 개시 손님을 받은 커피숍 주인은 반갑게 우리를 맞았다. 키오스크에서 음료를 주문한 뒤 우리는 창 쪽 소파로 가 앉았다. 그리고 오 경감이 낮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저, 말이지? 혹시 요즘 촌평리에서 기거하나?” 촌평리는 내 작업실 겸 사무실이 있는 동네 이름이다.     

“네. 그런데요. 그건 왜 물어보시죠?”


“다른 게 아니라. 얼마 전 자네가 사는 그 마을 근처에서 지진이 난 것 같다는 민원이 여러 건 들어왔어. 어느 집은 건물과 담벼락이 흔들리고, 또 어느 집은 가축들이 흥분해서 날뛰었다고 하더군.”

“아, 그래요?”


“서에서 직원들이 무슨 일인가 나가봤지.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특이한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어. 그런데 그쪽이 자네 사무실과 아주 가깝더라고.”

“그, 그래서요?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가 봤는데, 아무리 불러도 인기척이 없었대. 방에 불은 켜져 있는데 말이지. 그래서 잠시 외출했겠지, 하고 돌아왔다지 뭔가.”

“아, 그렇군요. 글쎄 저는 아무런 소리도 못 들었는데요. 그 정도면 제가 먼저 경찰서에 신고하고, 사진 찍고 ,취재하고 기사까지 썼겠죠.”

“하긴. 나도 그렇겠다 싶어 그냥 말았어.”     


그날, 내가 도깨비를 데리고 오두막에 갔을 때 경찰서 직원들이 다녀간 듯했다. 촌평리는 10여 가구가 전부이고, 70대 이상 어르신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대표적인 강촌이다.      


“노인네들이 도깨비에라도 홀렸나 봐.” 오 경감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는 오 경감이 ‘도깨비’라는 말에 순간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양 따라 웃었다. 그사이 주문한 음료가 나왔고, 우리는 창밖을 쳐다보며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내 옆자리에는 도깨비에게 줄 사탕이 든 플라스틱 통이 놓여 있었다.      

커피를 다 마신 오 경감은 막대사탕이 든 통을 보면서 “애들 주려나 보군. 조금씩 먹여. 이다 썩으면 치과 비가 더 나온다고”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 경감을 배웅한 나는 멋쩍게 웃으며 차로 돌아왔다.      

나는 운전석에 앉아 오 경감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한참을 차에 앉았다가 시계를 보니 오후 3시가 훌쩍 지났다. 시동을 걸고, 촌평리로 향했다. 나와 막대사탕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도깨비가 떠올라 마음이 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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