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라는 이름으로

by 류재민

내가 어느 정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떠간다고 생각했을 때, 철이 들어가고 있다는 걸 느꼈을 무렵인 것 같다. 아버지의 모습이 차츰 다른 이미지로 전환되고 있음을 은연중 느꼈다. 어머니 혼자 여름내 포도밭에서 땀 흘려 번 돈으로 마련한 아버지의 첫 자동차. 쥐색 프라이드.


내가 대학 입시를 앞둔 수험생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그 차를 끌고서 내가 밤늦도록 공부하던 도서관으로 데리러 왔다. 나는 당시 그것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로선 꽤 대단한 일이었다.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탓에 그 좋아하는 술을 참아야 했으니까.


자연히 귀가 시간은 빨라졌고, 술 취해 불리던 내 이름도 가물거릴 정도였다. 새침데기 여동생들이 간간이 던지는 핀잔도 농담으로 넘겨버릴 적도 더러 있었다. 간혹 튀어나오는 아버지의 사투리 섞인 우스갯소리를 듣고 있을 양이면, 속으로 깜짝깜짝 놀라던 나였다. 집에서는 누가 묻는 말 외에는 말수가 없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술과 절교를 한 건 아니었다. 말수 없는 아버지가 술에 취해 즐겨 부르던 십팔번은 ‘울고 넘는 박달재’. 대문을 박차고 들어오면서부터, 심하게 몸이 흔들리면서 흥얼거리던 그 노래.


‘우울~었~소, 소~리 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


아버지의 가슴을 그토록 터지게 만드는 것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답답한 마음에 안타까움만 더해졌다. 아버진 당신의 응어리진 한(限)을 토해 내고 싶었던 것 같다. 변기 속으로 얼굴을 반쯤 들이밀고, 속에서 넘어오는 고독을 헐떡거리며 토해내면서. 그렇게라도 소리쳐서라도 당신의 가슴속 깊숙이 숨겨 둔 고독을 자위하는 게 차라리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음주 평균치가 이틀 정도로 줄었다는 것과 아버지가 식구들에게 조금이나마 관심을 내비쳤다는 건 매우 고무적인 변화였다.


내 아버지는 대학 교육은 받지 못했다. 그래서 집안 최초로 대학생이 된 나를 자랑스럽게 추켜세웠다. 군에 입대하던 날에도 아버지는 휴가를 내고 경상도에 있는 훈련소까지 따라왔다. 거리가 멀어 나와 아버지는 하루 전날 도착해서 여관에 묵었다. 오랜만의 동침이었다. 아니, 오랜만도 아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는 아버지의 옆에 누워본 것 같다. “너 어릴 적에 늬 아버진 한 번도 안아주거나 업어준 적이 없었다”라던 어머니 말이 새삼 떠올랐다.


아버지와 나는 침대에 반듯이 누웠다. 통 잠이 오지 않았다. 입영에 대한 불안과 초조함 때문인지, 아버지와 잠자리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그때 아버지가 나더러 자냐, 하고 말을 건네지 않았다면 우린 그동안 쌓아온 벽을 허물지 못했으리라. 넌 잘 해낼 거라며 조용히 이불을 덮어주던 아버지. 나는 이제 술도 줄이고 어머니 속 좀 편하게 해 달라고 이불 밑으로 아버지의 뭉툭한 손목을 잡았다. 이십 년 만에야 비로소. 그때 아버지의 손은 무척 메마르고, 거칠었으며, 외로웠다.


장대비가 그칠 줄 모르고 쏟아져 내릴 때도 흔한 비닐우산 하나 사 쓰지 않고 들어와선 말없이 가벼운 미소만 보이던 그. 그래서 며칠이나 출근도 하지 못하고 끙끙 앓던 분. 그분이 내 아버지였다. 삶에 대한 고독과 번민을 처자식에게 내보이기 미안해서 당신 혼자 전전긍긍했을 아버지의 휜 등허리가 애처롭게 보였다. 나는 당신의 하나뿐인 아들이었지만, 손잡아 일으켜 주기보다 스스로 일어서기를 바랐던 걸까.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아버지! 그래도 그건 소풍 가서 한 번도 찾아낸 적 없는 보물 찾기만큼이나 어려웠습니다.


가족 대기 장소에서 눈물 바람인 부모들을 뒤로하고 훈련소로 들어가던 순간, 등 뒤에서 내 이름이 들렸다. 내 이름을 부를 사람은 아버지밖에 없었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발길을 멈추고 돌아서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려고 했지만, 난 차마 돌아서지 못했다. 가슴속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순식간에 확 터져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눈물’이었다. 아버지는 내 등 뒤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내 이름을 부르는 아버지의 쉰 목소리와는 음색이 확연히 달랐다. 너무나도 탁하고 우울함이 담뿍 묻은. 나 역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이유를 알듯 말 듯하면서, 눈물은 서로의 두 뺨을 타고 내려왔다.


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만날 수 없다. 자기 모습만을 무한 투사하며 불안해하게 된다. 이미 아들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 된다. 내 상처 속에 매몰돼서다. *


*정혜신 『당신이 옳다』 (해냄, 2018) 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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