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by 류재민

한 번은 아버지가 저혈당 쇼크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농번기에 일도 못 하고 병간호 걱정 때문인지 어머니의 표정은 어두웠다. 병원에서는 당뇨가 원인이라고 했다. 다만,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서 오래 있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연신 한숨만 길게 내쉬었다.


잠든 아버지와 걱정 어린 눈빛의 어머니를 병실에 남겨 둔 채 밖으로 나왔다. 저녁노을이 질 무렵 병원 외벽은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어 스산하고 을씨년스러웠다. 긴 의자에 앉아도 봤다가, 일어나도 봤다가, 병원 건물을 멍하니 빙빙 돌기도 했다. 혼란스럽고, 두려웠다. 당뇨는 평생 관리해야 한다는데, 아직 젊은 아버지가 몹쓸 병을 얻었으니.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어머닌 “어딜 가서 그리 오래 있었느냐”며 다시 눈살을 찌푸렸다. 목석같이 뻣뻣하게 누워 잠든 아버지 곁에서 어머니는 갑갑했나 보다. 식구들 저녁도 차려주고, 아침에 밭에도 가 봐야 한다면서 어머니는 밤늦게 집으로 돌아갔다.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한층 더 선명하고 깊어졌다.

3인실이던 병실은 아버지 말고도 두 명의 환자가 더 있었다. TV도 없고, 무료함을 달랠만한 것이 없어서 그랬는지, 환자들 모두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아무리 여름이라고 해도 새벽엔 공기가 찬 법”이라며 잠들기 전 아버지 이부자리 한 번 더 챙기라던 어머니 당부가 떠올랐다.


아버지 이불은 약간 올라가 있었다. 다리까지 덮을 요량에 이불 끝자락을 잡아 끌었을 때, 아버지의 양 발이 드러났다. 오래된 무좀 발. 지저분하게만 보였던 그 발을 본 순간, 여느 때와는 다른 감정이 밀려왔다. 그 못생긴 발이 가엽도록 사랑스러웠다. 나는 아버지의 무좀 발을 한참 동안 내려다봤다.

그래, 편지를 쓴 적도 있었다. 아버지가 퇴원하고 집에 오던 날. 차마 직접 드릴 용기가 없어 사시사철 입고 다니던 단벌 양복 안주머니에 몰래 넣어뒀다. 그때 쓴 편지 내용을 지금은 기억할 수 없다. 아마도 병원 밥 드시느라 고생하셨고, 건강과 관련한 얘기였을 터.


며칠 후 내 방 책상 위에 흰 봉투에 ‘아들에게’라고 적힌 편지가 놓여 있었다. 아버지의 손 편지. 내가 쓴 편지를 보시고 손수 꾹꾹 눌러쓴 답장을 보낸 것이다. 그래, 내 아버지도 편지를 쓸 줄 아셨다.

너에게 달려가는 것보다
때로 멀찍이 서서 바라보는 것도
너를 향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겠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보다
묵묵히 너의 뒷 모습이 되어 주는 것도
너를 향한 더 큰 사랑인 줄을 알겠다.
너로 인해, 너를 알게 됨으로
내 가슴에 슬픔이 고이지 않는 날이 없었지만
네가 있어 오늘 하루도 넉넉하였음을…….
네 생각마저 접으면
어김없이 서쪽 하늘을 벌겋게 수놓는 저녁해.
자신은 지면서도 세상의 아름다운 뒷 배경이 되어 주는
그 숭고한 헌신을 보면, 내 사랑 또한
고운 빛깔로 마알갛게 번지는 저녁해가 되고 싶었다.
마지막 가는 너의 뒷모습까지 감싸줄 수 있는
서쪽 하늘, 그 배경이 되고 싶었다. *

*이정하 시집 『편지』 중 <길의 노래> (2012, 책만드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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