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

by 류재민

우리는 최대한 많은 돈을 쓰고도, 보상은 최대한 적게 받았다. 우리는 돈이 많은 적든 늘 비참했으며, 우리가 아는 사람들도 대개 그랬다. 우리는 늘 겉으로는 유쾌하게 지내는 척했으나, 껍질을 한 꺼풀 벗기면 진실은 절대로 유쾌하지 않았다. 이 마지막 점에 관한 한 나는 세상에 이와 비슷한 상황이 수두룩하게 있을 거라고 믿는다. *

나도 아버지처럼 당뇨를 앓고 있다. 언제부터 발병했는진 알 수 없다. 지금의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고, 어지럽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현상이 잦았다. 처음엔 그저 여름이니까, 더워서 그러려니, 더위에 약한 체질 탓이려니 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편의점이든 식당이든, 술집이든 들어갔다. 가선 액상과당 음료수를 마시든, 탄산 주스를 마시든, 생맥주를 들이켰다. 그러면 타는 목마름이 가셨는데, 아마 그때부터 당뇨병 증세가 있었나 보다.


딸아이를 낳고 나서야 병원에 갔고, 당뇨병이란 진단을 받았다. 주치의는 당뇨 합병증을 설명하며 잔뜩 겁을 줬다. 어찌나 겁을 주는지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었다. 서른 중반부터 당뇨약을 먹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아이고, 그건 유전이래던디..”하며 혀를 차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아버지는 말없이 대문 밖을 나가셨다. 마치 내 당뇨병이 당신 때문인 양 죄책감을 가진 듯싶었다. 아버지의 처진 어깨와 뒷모습에 내 마음도 가라앉았다.


그래서 시작한 운동이 바로 수영이다. 어릴 적 개울가에서 놀다 수렁에 빠져 죽을 뻔한 이후로 난 물가에 가는 걸 싫어했다. 하지만 합병증으로 죽을 바에야 차라리 물에 빠져 죽는 게 낫다는 식으로 뛰어들었다. 퇴근 후 꾸준히 강습을 받고, 1년 뒤에는 1.5km 울트라 수영대회에 참가해 완주도 했다. 죽을 각오를 하고 덤벼 들면, 죽지 않는다는 말은 맞나 보다.


이년 뒤 둘째가 태어났다. 손 귀한 집안에서 기다렸던 아들이 ‘오대 독자’ 타이틀을 달고 세상에 나왔다. 세상 다 가진 듯 좋아하던 아버지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자식들 어렸을 땐 품에 안아본 적 없던 아버지는 알록달록 아기 띠에 손자를 업고 안고 다녔다. 아이 얼굴을 보며 싱글벙글 웃는 모습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생경했다. 삼대와 사대, 오대 독자가 한집에 모인 날이면 아버지는 목욕탕엘 갔다. 가서 서로 등을 밀어주기도, 구운 달걀을 까먹기도 했다. 당이 높은 콜라와 사이다는 빼고.

*

아버지는 내가 결혼하자마자 자신 명의로 된 밭을 우리 부부에게 증여했다. 나와 아내에게 정확히 반씩 나눠줬다. 어머니가 “뒀다. 뭐 합니까”라며 반강제적인 제안을 했지만, 유일한 재산을 막 결혼한 자식 부부에게 물려준다는 건 여간해선 쉬운 게 아니었다. 그것도 환갑밖에 안 된 나이에. 아버지는 재산에 아무런 욕심도 미련도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반대로 어머니는 당신이 직접 설계 도안을 만들어 지은 집을 아직도 꼭 쥐고 산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몇 년 지나 두 곳의 전답을 동생들에게 나눠주긴 했는데, 속이 허전했다고. 그러니 아버지는 어땠을까. 아버지라고 달랐을까. 내색만 하지 않았겠지, 싶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저축 예금을 조회해 찾으러 간 적이 있다. 우체국에 찔끔, 농협에 찔끔, 무슨 무슨 은행들에 찔끔찔끔. 그래도 그곳에선 상속인들 모두 도장을 갖고 방문해야 돈을 내준다고 했다. 직접 오기 힘들면 위임장이라도 받아오라고 했다. 다행히 시집간 동생들 나와 같은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어 시간을 맞춰 어머니를 모시고 같이 돌아다녔다. 한 번은 아버지 부고를 뒤늦게 들은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아버지가 나한테 보험을 든 게 있다”라며.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어머니랑 동생들이랑 같이 가서 찾아가라고.


나는 그분에게 고맙다고 했다. 전화가 없었다면, 아버지가 들어놓은 보험금은 찾지 못했으리라. 아니, 아버지는 워낙 그런 쪽에 관심이 없으셨으니, 보험을 들어놨을 거란 상상조차 하지 않았겠지. 그렇게 모은 돈과 부의금과 합의금을 어머니는 삼 남매에게 똑같이 떼줬다.


여생에 보태 쓰라고 극구 거절했지만, 어머니 뜻은 완고했다. “난, 배우자 연금 타서 쓰면 된다. 나이 먹어서 쓸 돈도 없다. 늬들 필요한데 써라.” 어머니는 아버지 유산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난 내 몫의 아버지 유산을 받아서 아이들 통장에 똑같이 나눠 예금했다. 살아생전 금쪽같이 여겼던 손자, 손녀들한테 준다면 아버지도 고개를 끄덕일 것 같았다. 그 돈은 아직도 아이들 통장에 꽁꽁 묶어두고 있다. 아버지 목숨값이니, 소중한 곳에 써야 하지 않겠나. 그러고 보면, 유전이든 유산이든, 난 아버지한테 받은 것이 참 많다.


*찰스 디킨스, 한명남 옮김 『위대한 유산』 (동서문화사, 2016) 3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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