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10분

by 류재민

2차 술자리가 끝난 시간은 밤 9시였다. 일행들은 대리기사를 부르거나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 근처라 걸어왔던 나는 일행을 하나하나 배웅했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혼자 길 위에 남았다. 집에 들어가긴 어중간한 시간. 아주 늦지도, 그렇다고 아주 이른 시간도 아니었다.


근처 단골 술집을 찾았다. 오징어회와 문어숙회를 잘하는 집이었다. 사장은 5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는데, 대머리인지 일부러 밀었는지 오징어와 문어처럼 머리가 미끈했다. 그날따라 사장은 보이지 않았다. 주인이 바뀌었나, 하면서 빈자리에 앉았다.


소주 한 병에 어묵탕을 시켜놓고 핸드폰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데, 어느샌가 나타난 사장이 ‘오랜만’이라며 아는 체를 했다. 파스텔 빛 조명에 비친 그의 머리가 유난히 반들거렸다. 그는 익숙한 듯 내 앞에 앉아 소주잔을 들었고, 나는 그의 빈 잔에 술을 따랐다. 맑은술이 또르르, 잔에 찼다.


채운 술잔에 사장의 뿔테 안경이 어른거렸다. 사장은 직원을 부르더니 오징어회 한 접시를 가져오라고 했다. 내가 오징어회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나는 그에게 얼굴이 안 보여 주인이 바뀐 줄 알았다고 했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네요.”


그는 이 먹자골목에서 자수성가했다. 한창 장사가 잘될 땐 그 집 앞에만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고, 한겨울에는 옆 건물 창고를 임대해 대기 장소까지 마련했을 정도다. 그 덕에 식당 근처에 ‘2호점’까지 냈다. 한 번은 저녁에 산책하다 그 옆을 지났는데, 2호 점마저도 손님이 북적거려 혀를 내두르고 지난 기억도 있다. 그렇게 장사수완이 좋던 사람이 무슨 이유인지 기운이 하나 없이 가게를 그만두고 싶다는 걸까. 사장은 소주 서너 잔을 더 마시곤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하루에 천만 원씩 버는 날도 있었어요. 막말로 돈을 쓸어 담기도 벅찰 정도로 잘 됐습니다. 통장에 찍히는 돈만 보면 금방 갑부가 될 줄 알았죠. 그런데 바닥으로 떨어지는 건 순간이더군요.”


2호점을 내고 가게가 번창하던 무렵 코로나19가 터졌다. 4명 이상은 모이지 못했고, 영업시간은 단축됐다. 밤 10시 이후에 먹자골목의 인적은 끊어졌다. 술집마다 켜졌던 불은 모두 꺼졌고, 셔터를 내려야 했다. 줄 서 기다리던 손님들의 발길은 뚝 끊겼고, 매출은 뚝뚝 떨어졌다. 매달 수백만 원에 달하는 임대료를 내기가 버거워졌다. 하는 수 없이 직원들을 하나둘 줄여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했어도 벌이는 예전 같지 못했고, 2호 점도 문을 닫았다.


“지금은 코로나 상황이 나아져 영업 제한이 풀려 그나마 입에 풀칠은 하고 삽니다. 그래도 코로나 전이랑 비교하면 새 발의 피죠.”


그사이 아내가 불치병에 걸렸다. 파킨슨병이었다. 그녀는 손이 빨랐다. 수족관에서 펄떡펄떡 뛰는 오징어 두 마리를 꺼내다 부지런히 칼을 놀려 내 앞에 내놓곤 했다. “젤로 싱싱한 놈들로 잡았어요”라며 생글생글 웃던 그녀. 미소가 떠나지 않는 표정과 살가움에 단골이 부쩍 늘어나게 했던 그녀. 거동이 불편하니 집에서 꼼짝을 할 수 없었고, 집안 살림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집안 살림도 그렇거니와 가게도 나올 수 없으니 이만저만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는 게 사장의 설명이었다. 게다가 파킨슨병은 치료 약이 없는 병이라 절망감은 더하다고 했다.

“한창 돈 잘 벌 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그땐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겠다는 생각만 했으니까요. 아내랑 아이들이랑 어디 놀러 갈 생각도 못 했고, 맛있는 음식도 먹어본 적도 없어요. 아내가 갑작스럽게 저렇게 되다 보니 미안하고, 앞만 보고 달려온 날들이 후회만 됩니다.”


나는 그에게 어떠한 위로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비어 가는 잔에 술을 따라주는 수밖에.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를 돌아봤다. 우울증과 무기력.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남자의 처진 어깨와 깊고 슬픈 눈에서 그것들이 떠올랐다. 그래도 저 남자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던가. 때론 과감히 도전했고, 무모하게 느껴질 만큼의 모험도 하지 않았나. 나도 그랬던 적이 있을까.

“밤 10시에 간판 불을 끄고, 셔터를 내린 다음 이 자리에 혼자 앉아 술을 마시곤 했는데요. 한 번은 저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10시 10분이더군요. 작은 바늘과 큰 바늘이 마치 두 팔을 벌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기분이 좋은 날은 ‘만세’를 부르는 것처럼 보였고, 우울한 날에는 모든 걸 포기한 채 세상에 ‘항복’하고 싶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요즘은 고통스러워하는 아내를 볼 때마다 ‘백기 투항’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와 나 사이에는 소주병이 하나둘 늘어났다. 모처럼 만나 그런가, 아니면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스스로 위로받고 싶었을까. 우리는 꽤 오래 함께 앉아 ‘중년의 삶’에 대해 때로는 가벼운, 때로는 무거운 대화를 이어갔다.


“저도 요즘 극심한 우울과 불안,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어요. 병원도 다니고, 상담센터도 다니면서 조금 나아졌는데요. 제 또래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저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남성도 여성 못지않은 갱년기를 겪고, 여성들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니 잘 극복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쉽게 무너지는 게 지금 우리 나이더라고요. 사장님은 열심히 살고 계신 겁니다. 그러니 이렇게라도 버티고 있는 거 아니겠어요? 사장님이 힘을 내야 사모님도 툴툴 털고 일어날 겁니다. 힘내세요. 저도 잘 이겨내 보렵니다.” 그리고 나는 파킨슨병에 걸린 정신분석 전문의와 그녀가 쓴 책을 소개하며 한번 읽어보라고 권했다.

더 이상 과거가 당신의 현재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재를 덮고 있는 과거의 무거운 이불을 걷어 내고 밖으로 나와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푸른 하늘을 보는 것이다. 과거가 고통스러웠다고 해서 현재까지 고통스러워야 하는 한다는 법은 없다. 과거가 고통스러웠다면 그것을 잘 지나 온 당신은 그것만으로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분명 당신은 행복해질 것이다. 과거의 슬픔을 인정하고 슬픔을 이겨 낸 자신을 대견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 믿는다면, 새로운 방식으로 사는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


마지막 잔을 함께 부딪치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불빛에 반사된 그의 민머리가 반작거렸다. 가게 벽걸이 시계는 10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김혜남『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메이븐, 2022) 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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