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동네 형의 죽음

by 류재민

그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세찬 바람에 후드득 떨어지던 4월의 어느 봄날이었다. 그는 나와 한동네에 살던 다섯 살 많은 형이었다. 어려운 마흔의 고비를 넘어 막 오십 길에 접어들었던. 어릴 적, 형이 없던 나는 그를 무척이나 따랐다. 그는 얼굴도 잘생겨서 또래 여자아이들과 동네 누나들의 선모의 대상이었다. 학교에 들어가서도 인기가 많았고, 성장하면서도 연예인 못지않은 유명세를 탔다. 실제로 연예기획사에서 ‘길거리 캐스팅’을 받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부모는 아들이 ‘딴따라’가 되는 걸 원치 않았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인천에 있는 물류회사에 취직했다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1년 만에 귀향했다. 그리고 옷 장사를 시작했다. 그의 부모는 물려받은 재산이 많았다. 동네의 논과 밭의 절반이 그 집 땅이었다. 그래서 동네에서는 “재식이네 땅을 밟지 않고는 못 살 정도”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는 장사 수완이 좋았다. 천성적으로 빼어난 외모 덕을 봤는지, 의류 회사를 내자마자 돈방석에 앉았다. 비싼 연봉을 주고 엘리트 디자이너를 영입했고, 해외에 수출도 했다. 고급 외제 차를 타고 다녔고, 금수저 집안의 여자와 결혼했다. 나는 사업에 정신없는 그와 한동안 연락할 기회가 없었다. 그의 어머니가 동네 마을회관에서 늘어놓는 자식 자랑을 내 어머니를 통해 간간이 전해 들을 따름이었다.


그는 딸 둘에 아들 하나를 뒀다. 막내로 아들을 낳았다고 그의 어머니는 동네방네 방송하고 다녔다. 이따금 명절날이면 그는 어린아이들과 우리 집을 찾아 세배하곤 했는데, 그의 유전자를 물려받아서인지 하나같이 예쁘고 잘 생겼다. 그의 어머니는 맞벌이하는 아들 부부를 대신해 손자 셋을 초등학생 때까지 데려다 길렀다. 아주머니는 내가 그의 안부를 물을 때마다 “엄청 바빠서 연락은 못하는디, 돈을 많이 줘서 애들 보는디는 암시랑 걱정이 읍써”라고 했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을 안심시키려는 둘러댐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그의 아들은 이따금씩 나를 만났을 때 이런 말을 했다. "삼촌, 저는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없어요. 나중에 커서 반드시 복수할 게예요."

*

그는 돈은 많이 벌었을 진 몰라도, 행복하진 못했다. 부부싸움이 잦았고, 그는 그때마다 술로 화를 풀었다. IMF에 잘 나가던 회사는 적자를 면치 못했고 직원들 월급도 몇 달이나 밀렸다. 결국 회사는 문을 닫았고, 한동안 서울역과 지하철을 전전하며 노숙자로 생활했다. 그사이 아내와는 이혼했고,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계속 시골의 할머니 손에서 컸다. 그의 어머니는 노숙자로 전락한 아들의 데려다 지극정성으로 살폈다. 덕분에 아들은 기운을 차리고 막일이라도 하면서 세 아이를 돌봤다. 하지만 그 일 역시 힘에 부쳤는지 술을 입에 대는 날이 빈번했고, 급기야 알코올 중독에 이르렀다. 아침부터 소주병을 입에 물고 다녔고, 돈이 떨어지는 날에는 집집의 문을 두드리며 술값을 구걸했다.


하루는 그가 술에 취해 창고에 있는 에탄올에 소주를 타서 먹고 병원에 실려 간 적이 있다. 응급실에서 위를 세척하고 겨우 목숨을 건졌다. 그렇게 나와서 몇 달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술을 끊겠다고 맹세하고 퇴원했지만, 작심삼일이었다.


한 번은 주말에 어머니 댁에서 쉬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리기에 열어보니 그가 풀린 눈을 하곤 내게 “미안한데, 이천만 원만 줄 수 있어”라고 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를 꺼내 그에게 줬는데, 어머니는 “그 돈을 왜 주느냐. 가서 또 술 처먹을게 뻔한디”라고 역정을 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라도 외로움에 사무쳤던 그를 위로하고 싶었다. 유년 시절 내가 그와 함께했던 추억들이 있으니 그려려니 하라고, 잘못했다간 해코지 당할지 모른다고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내가 조문을 마치고 장례식장을 나왔을 때, 영원할 것처럼 폈던 벚꽃은 비바람에 몇 톨 안 되는 꽃잎만 남겼다. 벚나무 옆 목련은 연둣빛 이파리를 드러내고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었다. 주차장을 향해 몇 발자국 내디뎠을 때, 대학생이 된 그의 아들이 따라 나와 내게 인사를 건넸다. “삼촌, 걱정하지 말아요. 우린 잘 살 거예요. 잘 버텨낼 거예요.” 속으로 그나마 다행이라며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아직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용서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에 대한 미움 때문에 나 자신을 파괴하고 나의 현재와 미래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나를 위해서라도 아버지를 그만 미워하고 복수하려는 것을 멈추어야겠습니다.”*


*김혜남『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메이븐, 2022) 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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