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꽃 필 무렵

by 류재민

감꽃이 피던 계절이었다. 나는 발밑으로 기어가는 일렬의 개미 떼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리곤 그중 제일 커다란 녀석 하나를 집었다. 녀석이 무리의 대장이었는지 나머지 개미들은 일제히 행군을 멈췄다. 대장 개미는 새까만 전투복을 입고 있었고, 기골이 장대해 우두머리다운 풍채가 느껴졌다. 다리는 치열한 전투 중에 잃었는지, 아니면 내가 방금 손가락으로 잡다가 떨어져 나갔는지 하나가 빈다. 놈은 그저 한 마리의 곤충에 불과했으나, 그날따라 신경에 거슬렸다.

“네놈들 짓이지? 어제 내 알사탕을 훔쳐 간 놈들이?”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대장 개미는 연신 다리를 바르르 떨다가 발버둥 쳤다. 나의 심문에 강력한 부정의 표시였는지, 잘못했다는 사과인지는 모를 일이다. 대장 개미에 대한 조사에 한창일 때,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거서 뭐 하능겨?” “요 봐라. 요놈들이 글쎄 내 알사탕을 갖고 토낀 놈들이다.” 나는 재식이 형의 얼굴 가까이 대장 개미를 들이댔다. 형은 깜짝 놀라 하마터면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겨우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요 쪼그만 놈들이 어떻게 그 큰 왕사탕을 먹냐?”라고 핀잔을 줬다.


그 말에 나는 씩씩거리며 대꾸했다. “왕사탕이 아니라 알사탕이라구! 형은 자연 시간에 뭐 배웠어? 요놈들은 협동심이 강해서 알사탕 하나는 거뜬히 옮길 수 있단 말이여.”


나는 개미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러자 재식이 형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혼비백산 달아나는 개미 떼를 무심히 내려다보고 있을 뿐. 학교를 파하고 집에 돌아오면 나와 재식이 형은 줄곧 영지 누나네 감나무 밑에서 놀았다. 나무 그늘에 앉아 돌멩이를 주워다 공기놀이도 하고, 넙데데한 돌을 세워놓고 비석 치기도 했다.


“형은 오늘 학교에서 해오란 거 했어?”

“뭐?”

“아이 그거 있잖어. 똥 검사.”

“으이구, 이 멍충아. 똥 검사가 뭐냐, 대변 검사지.”

“그거나, 그거나. 냄새나는 건 마찬가지다.”

나는 히죽거리며 농을 쳤다. “야, 그거 그냥 화장실에 있는 거 좀 떠나 내도 되지 않을까?” “으이구, 멍충이는 내가 아니라 형이 멍충이네. 자기 똥을 가져가야 제대로 된 검사가 되는 거지. 내가 내일 가서 선생님한티 형 똥 아니라고 다 이를 거다.”

“칫, 일러라 일러. 그냥 내꺼 가져가믄 되지.”


잔뜩 삐친 재식이 형이 나를 쏘아붙이곤 홱 하고 돌아서 집으로 돌아갔다. 씩씩거리며 돌아가는 형의 뒷모습을 나는 뭐가 그리 고소한 지 낄낄거렸다. 내 발밑에는 흩어진 개미 군대가 여기저기서 더듬이를 치켜세우고 전열을 가다듬었다. 대장 개미 역시 다리를 연신 절뚝거리며 무리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내 날은 이내 어둑해졌다. 하늘은 붉으락푸르락한 것이, 마치 성난 재식이 형 얼굴 같았다. 하루살이가 이리저리 퍼져 나는 음산한 저녁나절이었다.

*

한밤중이었다. 별도 달도 잠든 고요한 시골 마을에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맨 윗집 준영이 형네 집에서 시작한 컹컹, 개 짖는 소리가 옆집 재영이네로 가더니, 아랫집 현경이네까지 이어졌다. 시끄러운 개소리에 집마다 하나둘씩 불이 켜졌다. 우리 집과 재식이 형네 집에도 불이 켜졌고, 무슨 일인가 싶어 어른들이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왕왕대는 개소리가 한동안 귓전을 때렸다.

그때, 걸걸하면서도 잔뜩 쉰 목소리 하나가 개들의 비명 사이로 흘러나왔다. “야 이눔아, 여기가 어디라고 겨 들어와. 뒤지든 살든 난 인저 모르니께 나가 이눔아.” 찢어질 듯한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바로 감나무가 있는 영지 누나네였다. 노상 가래가 끓는 영지 누나 할머니는 ‘커억’ 하며 가래 올라오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퉥’하고 밭았다. 단단히 노기 띤 얼굴이었다. 깊게 팬 이마의 주름도 한껏 긴장된 모습이었다.

“아이고, 영지 할머니 고정 하셔유. 하나밖에 읍는 아들이 몇 해 만에 돌아왔는디, 이르믄 안 되지유.”

“뭐? 하나밖에 없는 아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구? 마누라 잡어 먹고, 자식 놈 빙신 만들어 놓고, 지 에미까지 팽개치고 나간 놈이 무신 놈의 아들이여? 다 필요 읍써. 내 눈에서 썩 꺼져버려 이 망할 놈의 자식아.”

그날 밤 난리가 난 배경은 삼사 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 기억에는 영지 누나가 중학교 입학을 앞둔 해였을 거다. 누나네 어머니는 무슨 병이 들었는지, 기침을 자주 했다. 비쩍 마른 몸은 피골이 상접한 듯 앙상해졌다. 급기야 자리를 깔고 누워 여러 날 일어나지 못했다. 놀란 식구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영지 누나 아버지는 모두가 당신 때문인 양 비관했다. 부부는 트럭 한 대에 식료품과 잡화를 싣고 이 마을, 저 마을 돌며 물건을 팔던 ‘슈퍼 차’로 벌이 했다. 새벽바람으로 수산 시장에 가 생선을 떼고, 푸줏간에 가서 고기를 떼고, 밭에 가서 심어놓은 파와 마늘, 상추를 뜯어다가 팔았다. 일은 고돼도, 벌이가 쏠쏠해 그만두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누나의 아버지는 소아마비를 앓아서 한쪽 다리를 쓰지 못했고, 다른 일을 하기도 어려운 신세였다.


아이들이야 할머니가 봐준다고 했지만, 물건을 떼다가 차에 싣고, 장돌뱅이처럼 동네를 돌며 물건을 팔고, 밤늦게야 파김치가 돼 돌아오는 날이 여러 날이었다. 원체 몸이 허약했던 누나네 어머니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병원에도 여러 날 입원했지만, 확실한 병명을 모른다고 했다.

영지 누나 아버지는 날마다 소주병을 끼고 살았다. 술만 마시면 ‘저걸 살려야 하는디. 저걸 저래 보내믄 안 되는디’ 하며 울고불고했다. 절름거리는 다리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 개울이며, 논고랑에 빠지고, 담벼락과 전봇대에 부딪쳐 넘어지기 일쑤였다. 슈퍼 차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감나무 옆에 방치됐다. 그러다가 아주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누나네 아버지와 할머니가 산에 가서 몸에 좋다는 약초를 캐다 달여 먹였지만, 병원에서 퇴원해 집에 온 지 사흘 만에 눈을 감았다.


당신


당신

살고 싶다고 했지요

살아남아서 행복하겠다고

작은 눈물 글썽이며 웃었잖아요

슬퍼지기 전에 사랑하자고

그러면 슬픔도 덜어질 거라면서

내 처진 어깨 감싸주던 당신이잖아요

당신

내가 고생하는 것이 안쓰러웠는지

어제도 오늘도 미안하댔지요

날마다 나더러 고맙댔지요

괜찮아요

당신 일기장 속으로 보이던

마른 눈물 자욱들

모두 다 한결같은 당신의 사랑이었고

다 날 향한 당신 마음이란 걸 알았으니

당신

지금은 나 혼자 이 세상에 있지만

절대 외롭거나 슬프지 않을게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당신이지만

어디선가 날 지켜보고 있을테니까

영원히 날 지켜 줄 테니까요

그거면 돼요

내게 그보다 더 큰 행복은 없습니다,

수고 많았어요, 안녕히 가세요. 류재민 시 <당신> 전문


영지 누나에게는 엄마가 사라졌다. 발인하던 날까지 영지 누나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어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던 소녀에게 엄마의 죽음이란 부재는 충격, 그 자체였으리라. 엄마를 묻고 온 누나는 집을 나갔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 엄마 없는 삶에 대한 막막함과 두려움, 갈수록 어려워지는 살림 등이 그녀의 가출을 부추겼다. 누나는 1주일 만에 돌아왔는데, 많이 변해 있었다. 너무나 비참한 몰골로. 마녀가 세상에 있다면 그런 모습일까 싶을 만큼.


사고를 당했었나 보다. 그녀는 한쪽 다리를 절뚝거렸다. 그날 밤, 누나의 아버지가 집을 나갔다. 더 이상 숨 막히는 집에서는 살 용기가 서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 행동이 늙은 어머니와 어린 딸에게 얼마나 큰 죄를 짓는 건 줄도 모르면서. 누나의 할머니는 장애인이 된 손녀딸과 한 살 터울 남동생을 먹이고 입히며 버틴 거였다. 지금은 고인이 된 영지 누나네 할머니는 "죽지 못해 살았다"라고 말했다.


어린 시절의 크고 작은 상처들을 품은 채로 우리는 성인이 되어서 살아간다. 다시 말해서, 상처 입은 내면아이를 품은 채로 겉만 성장하여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치유되지 않은 상처들은 아직도 우리 안에 남아 있으며 불행하게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 상처를 전달하며 살아가게 된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상처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치유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인생의 모든 문제의 가장 큰 원인으로 남을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의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반드시 자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다 큰 어른이 어린아이로 돌아갈 순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볼 생각이다. 이른바 ‘식민지(재식·재민·영지)’ 시대의 추억과 향수를 통해 내 속의 내면 아이를 치유해 볼 생각이다.


*존 브래드 쇼, 오제은 역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학지사, 2004) 5쪽

keyword
이전 18화잘 나가던 동네 형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