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불안 등 여러 다양한 증상으로 병원에 찾아오지만, 잠을 못 잘 수밖에 없는 상황에 오랫동안 처해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는 게 우선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런 때에는 상담 치료나 약 처방을 하기에 앞서 우선 잠을 푹 잘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만 해도 절반 정도는 금세 상태가 좋아집니다. *
한동안 잠을 설쳤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던 것 같은데 자다 깨 일어나는 날이 많았다. 숙면을 이루지 못하니 온종일 정신이 멍했다. 몸도 무겁고, 금방 피곤해졌다. 사소한 것에도 짜증을 내고, 그에 비례해 우울감과 무기력이 더해지는 기분이었다.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허투루 나온 게 아니구나 싶었다. 어느 날은 오는 밤이 지겹고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다 아침이 되면 혈당 수치도 쭉 올라갔다. 공복 혈당이 160을 넘는 날이 여러 날이었다.
내 상태를 가장 걱정한 건 아내였다. 아내는 일찍 잠자리에 들라고 조언했다. 밤늦게 핸드폰을 보거나 커피를 마시지 말고, 운동도 무리하게 하지 말라고 했다. 되도록 그렇게 했다. 취침 시간을 앞당겼지만, 잠이 바로 들진 않았다. 무수한 별을 세고, 수백 마리 양을 세어봤지만 별무소용. 거실의 시계 초침 소리, 욕실 변기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 다 거슬렸다. 불안과 초조함만 더했지만, 눈을 꼭 감고 반짝이는 별과 어린양들을 찾아 헤맸다.
어릴 적, 나는 할머니와 한방을 썼었다. 방이 셋 딸린 집에서 안방은 부모님이 썼고, 나머지 하나는 여동생 둘이 썼다. 할머니와는 성인이 되어서도 같은 방을 썼다. 동생들이 취업하고 독립생활을 시작했을 때 비로소 나 역시 독립된 방을 가졌다. 어릴 적, 할머니와 한 이불을 덮고 자다가 잠이 오지 않아 뒤척거릴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할머니에게 잠이 안 온다고 투덜거렸다. 그때마다 할머닌 “눈을 감고 가만히 있어 보거라. 그러면 잠이 올 테니”라고 달래곤 했다.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해보니 정말 어느샌가 스르륵, 잠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어도 금방 잠이 들지 않는 날에는 할머니에게 ‘거짓말쟁이’라고 응석을 부리며 오래된 품을 파고들어 젖무덤을 더듬었다. 할머니의 마른 젖가슴은 쭈그러지고 축 늘어져 있었다. 마치 황량한 사막의 모래언덕처럼.
할머닌 “우리 손자 대학 갈 때까지 살라나, 군대 갔다 올 때까지 살아있으려나” 소리를 입버릇처럼 했다. 내가 “저 장가갈 때까지 사세요”라고 했을 때, “예끼. 악담을 해라 이놈아”라며 손사래를 쳤던 할머니는 내가 장가를 가서 딸을 낳고, 그 딸이 돌이 될 때까지 사셨다. 치매기가 있을 때도, 하나밖에 없는 손자만큼은 기억에서 단단히 부여잡고 놓치지 않았다.
할머니는 백 년에 걸친 사막 여행을 마치고 하늘로 돌아갔다. 희고 둥그런 납골함에 담겨 30년 가까이 기다리던 할아버지 곁으로 가셨다. 조부모는 1층 부부단에서, 아버지는 2층 개인단에서 서로를 내려보고 올려보면서, 지낸다. 그 옛날 백열등 밑에서 다닥다닥 붙어 잠자던 시절처럼. 그때는 알람 대신 새벽닭 우는 소리가 들렸으리라. 함박눈이 푹신 내릴 때도, 한여름 더위에 모기가 극성일 때도, 그들은 한방 한 이불에서 서로가 서로에 몸을 부대고 기대 체온을 느끼며 곤한 잠을 잤으리라. 깨고 일어나면 기억하지 못할 단꿈을 꾸었으리라.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사본 어느 소설책을 읽고 ‘꿈’이라는 세계에선 무궁무진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꾸고 싶은 꿈을 살 수 있는 백화점이라. 그 소재부터 몽환적이고 환상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건 책에서나 읽을만한,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현실을 자각하고선 실망의 여운이 오래갔다.
“할머니, 할머니 인생은 어땠던 것 같아요?”
“좋았지.” 할머니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좋았어? 정말로? 어떤 점이?”
남자는 의자를 당겨 앉아 할머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나 어렸을 적에는 남의집살이 안 하고, 우리끼리 오순도순 사는 것만으로 좋았지.”
“그럼 젊어서는?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셨잖아.”
“….”
“늙어서는 손자 크는 것 보는 재미로 살았고, 꼭 네가 스스로 앞가림할 때까지 오래오래 살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어느 맘씨 좋은 신이 들으셨는지 늙은이 소원을 이뤄주었지 뭐냐. 그러니까 할미 인생은 참으로 좋았지.”
할머니가 손자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분명 어릴 적 할머니의 손은 까끌까끌했는데, 오늘은 아기처럼 보드라운 손길이었다. **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난 할머니가 이불을 폭 덮어주면서 해준 말을 떠올렸다. “눈을 감고, 가만히 있어 보거라. 그러다 보면 잠이 올 거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 할머니의 ‘복음의 언어’를 되뇌고, 새벽 명상을 시작하면서 불면의 밤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가끔 꿈을 꾸면 고운 비녀를 꽂은 할머니 쪽진 머리가 보였고, 무명 저고리가 보였고, 버선발이 보였다. 꿈속의 할머닌 말이 없었다. 그저 조용히 나를 쳐다보며 해맑게 웃다 어느샌가 사라졌다. 어딜 가시냐며 따라가려 무진 애를 써봐도, 다리가 땅에 박힌 듯이 한 걸음도 걷지 못했다. 묘하다. 잠이라는 것이, 꿈이라는 것이. 근데, 왜 꿈의 색은 흑백일까. 그 역시 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