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33.
전적인 잘못은 아침에 일기예보를 알고도 우산을 챙기지 않은 내게 있었다. 비를 쫄딱 맞고 집에 들어갔다. 아내는 “우산이 없으면 어디서 사서라도 쓰고 오지”라며 혀를 끌끌 찼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우산을 살 만한 곳이 없었다. 근처에는 편의점도 없었고, 그 흔한 우산 장수도 보이지 않았다. 저간의 사정을 알지도 못하고 핀잔을 주는 아내에게 살짝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결혼해 살다 보면,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배우자의 말 한마디에 속상할 때가 생긴다. 신혼 때는 감정을 못 이겨 자주 싸웠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도 나와 아내는 충돌이 잦았다. 그러다가 둘 다 나이가 마흔이 넘었다. 싸우는 횟수와 강도가 전보다 많이 줄었고, 약해졌다. 싸우다가 정든 걸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눈빛만 봐도 서로의 성격을 알아서 그럴 것이리라. 상대의 감정선을 건드리지 않고, 큰 소리 나오지 않게 하는 방법을 둘 다 터득해가고 있기 때문이리라. 마흔, 40대에는 그렇게 나이를 먹는 시기인가 보다.
‘칼로 물 베기’라는 부부싸움도 상대가 있어야 하는 일이다. 요즘 청년들은 양육과 보육 부담을 이유로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나혼족’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혼족’이라도 반려동물을 키우거나, 종교활동을 하거나, 혼자만의 여가를 즐기며 ‘소확행’을 즐긴다면, 그것만큼 자유롭고 평화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돈이 생기면 자신에게 투자하는 청년도 시대의 흐름이 되고 있다. 다만, 매사에 긍정만 있는 건 아니다. 모든 사회 현상에는 작용과 반작용이 작동한다. 동전의 양면처럼. 어렵게 번 돈을 불려보겠다고 잘 알지도 못하는 주식이나 비트코인에 손을 댔다 낭패 보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본다. 그랬다가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주저앉는 젊은이들 이야기를 들을 때면 못내 안타깝다.
1인 가구는 비단 젊은 층에 국한한 건 아니다. 사별하거나, 이혼한 뒤 혼자 사는 중년과 노년층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뉴스에는 ‘고독사’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몇 년 전, 고독사를 분석한 시사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20년 고독사는 모두 4,196건이었다. 하루 11.5건꼴. 2013년에 비해선 2.5배나 늘어난 수치라고 한다.
일자리 부족과 취업난에 청년들의 고독사율도 빠른 증가세에 있다고 들었다. 아쉬운 건, 나이가 젊다는 이유로 고독사 예방사업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 혼자 사는 노인들도 주변에 많다. 경제력이 있는 노인들 역시 고독사에서 예외일 순 없을 테고. ‘한창 일할 나이’인 4050 세대도 고독사에서 절대 자유롭지 못하다고 하니, 남 일 같지 않다. 고독하게 생을 마감하는 순간, 얼마나 외로웠을까.
나도 외롭냐고 묻는다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성은이 망극해야 한다. 아침마다 밥을 차려주는 아내를 존경해야 한다. 날마다 밥 차려주는 엄마 아빠만의 시간을 주겠다며 자기들끼리 노는 아이들에게도 고마워해야 한다.
고독사는 사회 양극화가 빚어낸 비극이자, 가장 외로운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고독사는 특정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청년도, 중년도, 노인도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오늘도 누군가는 어디서 홀로 죽어가고 있겠지.
부름을 받고 다다르는 곳곳에 가난과 고독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검게 색 바랜 빈곤의 잎사귀가 우수수 떨어져 도처에 널브러져 있는 것 같다. 내 시선이 오랫동안 가난에 물들어 무엇을 봐도 가난의 상징으로 여기는 것일까? 어떤 날은 죽은 이의 우편함에 꽂힌 채 아래를 향해 구부러진 고지서와 청구서마저 가난에 등이 휜 것처럼 보인다. *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40대와 50대는 ‘한창 일할 나이’가 됐다. 노동과 근로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때로는 국가와 지역 정부 지원에서 소외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정부나 지자체의 고독사 지원은 65세 이상 노년층에 초점을 맞춰져 있다.
고독사를 예방하려면 행정기관의 관리도 중요하지만, 이웃의 관심도 중요하다. 옆집이나 위 아랫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사는 세상이니. 가끔은 우유나 신문이 쌓여 있지 않은지, 신경 쓰고 들여다보는 습관도 갖고 살아야겠다. 어떤 삶이든,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내가 겪을 수 있는 ‘사건’ 일 테니까.
이제부터 비 소식이 있는 날에는 반드시 우산을 챙길 것이다. 길을 가다 우산 없이 비를 맞는 청년이나 어르신을 보면 같이 쓰고 가자고 말을 건네야겠다. 그렇게 우산이 되어 살아야겠다. 우리는 이웃이고, 나는 아직 팔팔한 마흔이니까.
*김완『죽은 자의 집 청소』 (김영사, 2020) 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