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소설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었다
밑도 끝도 없이 써 놓은 저 유령은 어쩌나
한 달하고 일주일 전 일이다. 김태리가 악귀로 나온 드라마 <악귀>를 보다가 갑자기 소설이란 게 쓰고 싶어졌다. 왜 그 드라마를 보다가 소설을 쓰고 싶어 졌는진 지금도 알 수 없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그래서 썼다. 주제도 정하지 않고 썼다. 주인공도 정하지 않고 썼다. 생각나는 대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무작정 썼다. 한 달하고 일주일 후 어떤 사달이 날진 상상도 못 한 채.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내달렸다. 이건 미련함이 지닌 성질이다.
덕분에 나는 무척 후회하는 중이다. 밑도 끝도 없이 쓰고 보니 원고지 200 장하고도 스무 장이 넘었다. 글자는 4만 자에 육박한다. 장편소설을 쓰려면 대략 원고지 1,000장에 12만 자를 써야 한다는 데, 애매한 위치까지 온 셈이다. 그런데 보는 사람마다 재미가 없단다. 나 역시 그런 것 같다.
가장 큰 패착은 확실한 ‘주제’를 정하지 않고 시작한 데 있다. 주인공도 딱히 없이 주변 인물만 차고 넘치다 보니 몰입도가 떨어진다. 쓰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했던 생각은 어리석음의 극치였다. 나처럼 소설을 썼다면, 이 세상 절반 이상이 소설가가 되고도 남았으리라. 정말이지 주제도 모르고 한 처사다. 이건 반성이 지닌 성질이다.
내가 올해 초 쓴 <슬기로운 기자 생활>의 한 대목이 불현듯 떠올랐다.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기자를 해선 안 된다고 했던. 어쭙잖게 소설이라고 덤볐다가 제대로 쓴맛을 봤다. 소설도 기사처럼 아무나 쓰는 게 아니었다. 나는 그저 ‘소린이’(소설가+어린이)에 불과하다는 걸 느꼈다. 이건 깨달음이 지닌 성질이다.
멈추자니 닥치고 써온 한 달 남짓이란 시간과 원고지 220장이 아깝고, 계속 가자니 더 시간만 낭비하고 실속이 없을 것만 같다. 이건 진퇴양난이 지닌 성질이다. 갑자기 소설가가 마냥 부럽고 존경스러워진다. 초보 운전자가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자유자재로 차를 모는 운전자를 보는 것처럼. 키판잡고 발차기하는 강습 1일차가 숨도 안 쉬고 초스피드로 치고 나가는 수영선수들을 보는 것처럼. ‘왕 부럽’을 너머 ‘개부럽’이다.
서점에 가면 숱하게 쌓여 있는 게 소설책인데, 나는 언제쯤 그런 책을 낼 수 있을까. 이건 ‘첫술에 배부르랴’와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가 지닌 성질이다. 그래. 실력 있는 기자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눈 뜨고 일어나니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이는 없는 것처럼, 멀리 보며 가보자.
소설을 잘 쓰려면, 소설을 많이 읽으라고 한다. 그래서 소설을 많이 읽고 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가 절로 나온다.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필력에 내 존재는 한없이 작아진다. 수백번 죽었다 깨도 난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을 전개와 묘사와 문체. 200 장하고도 스무 장을 더 쓴 내 글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될 정도로. '그치들은 분명 1타 강사 고액과외를 받았을 거야'라는 비겁한 자위도 해 보건만. 이건 열등감이 지닌 성질이다.
다독, 다작하며 정신을 다잡아야 하리라. 조급히 생각하지 말지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꾸준함이 빨리 간다고 했다. 그럼, 꾸준하게 돌아가면 되는 걸까? 그럼, 내 이름을 건 소설 하나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걸까? 이건 김칫국이 지닌 성질이다. 그래서 결론은... 난 모르겠따아아아아! 될 데로 되라지이이이이! 아, <유령>이여! 널 어찌할꼬! 악귀야 물렀거라아아아! 이게 다 김태리 때문이다아아아아!
*상단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