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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May 05. 2024

잃어버린 꿈을 찾아주는 정다운 흥신소

고인돌과 고우리

찬바람보다 더 차갑게 문 앞에 서 있던 여인은 바로 고인돌의 아내 백장미였다.

“드디어 꼬리가 잡혔군.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속담이 여기서 쓸게 될 줄은 미처 몰랐네?”

“여, 여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진 모르겠지만, 말투를 보니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아.”

“뭐? 오해? 오해 같은 소리하고 있네. 당장 내 앞에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두 손을 싹싹 빌어도 시원찮을 판에!”

백장미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파였다. 그녀의 음성에는 독기가 잔뜩 서려 있었다. 고인돌에게 고정됐던 백장미의 시선이 고우리에게 옮겨졌다. 

“오냐, 너구나. 요 며칠 내 남편 옆에 착 달라붙어 꼬리를 살살 치던 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어디서 여우짓이야!”

백장미의 노기 띤 음성에 우리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닭똥 같은 눈물이 쏟아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인돌은 장미를 향해 크게 팔을 가로저으며 ‘X’자 표시를 보냈다. 하지만 장미는 못 본 건지, 못 본 체하는지 꿈쩍하지 않은 채 계속 우리를 쏘아봤다. 그때 다운이 무거운 공기를 걷으며 장미에게 말을 건넸다. 

“대표님, 언성을 낮추세요. 지금 뭔가 대단한 오해를 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꽂혀 있던 장미의 날카로운 시선이 다운에게 향했다.    

“그래요. 당신이라면 잘 알겠군요. 내가 고용한 탐정님. 며칠 동안 미행의 결과를 어디 한번 적나라하게 보고해 보시죠. 저 두 사람이 무슨 짓거리를 하고 다녔는지, 아주 소상히!”

다운은 최대한 차분한 감정을 유지하며 장미를 넌지시 바라봤다. 

“일단, 서서 이러지 마시고요. 앉아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자, 다들 소파로 가시죠.”

다운의 제안에 한껏 흥분했던 실내 분위기가 한풀 꺾였다. 그리고 다운은 포함한 4명은 소파로 이동했다. 백 대표가 가장 윗자리에 앉고, 오른쪽으로 정다운, 왼쪽으로 고인돌과 고우리가 나란히 앉았다. 이윽고 다운의 설명이 이어졌다. 다운은 그동안 자신이 두 남녀를 미행하며 찍은 사진과 동선마다 적어 놓은 수첩을 백 대표 앞에 꺼내 놓았다. 그리고 백 대표가 등장하기 전까지 인돌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전달했다. 다운의 설명을 들은 백 대표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자신이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음을 직감했다. 

“으음. 하아.”

백 대표는 낮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해요, 여보. 그리고 우리 씨. 난 그런 줄도 모르고…큰 실례를 했습니다.”

그제야 인돌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우리의 눈가에선 한줄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우리는 테이블 위에 놓인 티슈로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울먹이며 말했다.

“괜찮아요. 저 같았어도 그런 오해 충분히 하고도 남았을 거예요. 그래도 다행이에요, 금방 오해가 풀려서.”

우리의 말에 백 대표는 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하든 우리에게는 쉽게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았기에. 

무겁고 깊은 침묵을 깬 건 인돌이었다.

“오해가 풀렸으면 됐어. 당신이나 우리나 서로의 존재를 몰랐으니까. 이제 우리가 한 식구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다정하게 지내면 되지 않겠어.”

백 대표와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백 대표는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고, 우리도 백 대표가 내민 손을 잡았다. 

“반가워요, 아가씨.”

“잘 부탁드려요. 언..니.”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웃었다.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다운은 힘껏 박수를 쳤다.

“정다운 소장님. 괜한 일로 시간만 허비하게 만들어 드렸네요. 미안합니다. 어쨌거나 일당은 약속대로 드리겠습니다.” 

백 대표는 다운에게 사과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저야 늘 하는 일이 이런 건데요. 하지만 이번 의뢰비는 받지 않겠습니다. 이런 극적인 이산가족 상봉이 또 어딨습니까. 너무나 극적인 장면에 저는 그냥 한 편의 드라마를 본 셈 칠게요.”

다운은 그래도 사례를 하겠다는 백 대표의 고집을 겨우 꺾고 밖으로 나왔다. 

“저는 이제 서울로 돌아갑니다. 세 분의 앞날에 행복이 깃들기를 바랄게요. 혹시 나중에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연락하시고요.”

다운은 펜션 뒷담에 세워둔 차에 올랐다. 백 대표와 인돌, 우리가 떠나는 다운을 배웅했다. 백미러로 손을 흔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다운은 운전석 창문을 살짝 열고 손을 흔들었다. 

“또 봐요. 굿바이~.”

서울로 돌아온 다운은 더 이상 남의 뒤를 밟거나 비밀과 정보를 캐내 돈을 받는 흥신소 일을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다시금 꿈을 되찾는 일을 돕는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수입이 생기지 않는 일이라 사무실 임대료부터 생활비까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다운의 사정을 접한 백 대표는 다운에게 사무실 한 칸을 마련해 줬다. 그리고 매달 월세도 후원했다. 4년 전, 정다운 흥신소는 그렇게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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