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이태겸의 집 사랑채에는 등불이 켜졌다. 그 안으로 화인 중진들이 들어섰다.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낮에 있었던 어전 회의의 살벌한 기운이 아직 옷자락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태겸은 상석에 앉아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대비가 결국 칼을 뽑았소.”
그가 먼저 짧게 입을 열었다.
“수인을 향해 뽑았지만, 칼날은 늘 한 번 더 돌아옵니다.”
누군가 숨을 삼켰다. 이태겸은 그 소리를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윤이 무너진다면, 그다음은 누구겠소.”
아무도 이름을 말하지 않았지만, 방 안의 모두가 같은 얼굴을 떠올렸다. 바로 자신들이었다.
“지금은 대비가 수인을 치는 것처럼 보이겠지요.”
이태겸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건 ‘정리’가 아니라 ‘본보기’요. 본보기가 끝나면, 다음 줄이 필요해집니다.”
중진 하나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럼, 가만히 있자는 말씀이옵니까?”
이태겸은 고개를 저었다.
“가만히 있으면 먼저 죽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또박또박 덧붙였다.
“지금 필요한 건 칼이 아니라, 명분이오.”
“명분이라니요?”
“우리가 대비를 치는 게 아니라, 주상을 받드는 모양을 만드는 겁니다.”
그 말에 몇몇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태겸은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대비는 늘 혼자 결정했소. 하지만 오늘은 다릅니다.”
“오늘은 이미, 궐 안에 소문이 퍼졌소.”
“이윤이 죄인이라는 소문이 아니라, 누가 다음이냐는 것이요.”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침묵 위로 이태겸의 마지막 말이 떨어졌다.
“우리가 먼저 움직입시다.”
“어찌 움직인단 말씀입니까.”
이태겸은 잠시 생각하는 척했지만, 사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궐로 들어가 모두 마당에 모여 무릎만 꿇습니다.”
중진 하나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건 무슨 뜻입니까?”
“청원이오.”
그는 좌중을 천천히 둘러보며 말했다.
“우린 대비에게 말하지 않을 겁니다. 주상에게만 할 겁니다.”
“주상께선 아직 어리십니다.”
“그래서 더 좋소.”
방 안 공기가 달라졌다. 이태겸이 마지막으로 못을 박았다.
“우린 이윤의 처벌을 요구할 겁니다.”
“대비의 뜻이 아니라, 주상의 뜻으로.”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이미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판이 본인들의 마지막 패라는 것을.
다음 날, 조회가 끝나자 화인은 일제히 밖으로 나갔다. 한 사람, 두 사람, 약속이라도 한 듯 대전 앞마당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손은 무릎 위에 올렸다. 당장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소란스러웠다. 내관들이 웅성거렸고, 수인 쪽에서 먼저 동요가 일었다.
“저 사람들이, 지금 무슨 일인가.”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그때 이태겸이 입을 열고 크게 외쳤다.
“주상 전하께 아뢸 말씀이 있어 자리를 뜰 수 없사옵니다.”
“자리를 뜰 수 없사옵니다.”
나머지도 한목소리를 냈다. 그 말 한마디로 충분했다.
편전 안에 있던 왕과 중전은 화인의 돌발 행동 소식에 당황스러웠다. 두 사람은 그들이 모여 있는 마당으로 나갔다.
“경들은 어찌하여 이러고 계신 겁니까. 할 말이 있으면 편전에서 해도 될 것을.”
왕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 물었지만, 중전은 그들의 속내를 알고 있었다. 이태겸이 고개를 들어 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전하. 불충한 소인들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니까, 저한테 하실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태겸은 작심했다는 듯 왕에게 직고했다.
“중전의 자리를 이용해 궐을 능멸하고 권력을 탐하려 모략을 꾸민 이윤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왕은 주저했다. 그러자 이태겸이 쐐기를 박듯 말을 보탰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중전마마를 폐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야 이 나라 종묘와 사직이 살고, 전하께서 진정한 만백성의 주인이 되실 수 있사옵니다.”
이윤의 처벌에 중전 폐비까지 이어지는 주청에 왕은 혼란스러웠다. 어린 왕은 무슨 말을 어떻게 할 줄 몰랐다.
“경들이야말로 조정을 능멸할 작정입니까?”
왕의 뒤에 서 있던 중전이 대뜸 반박하고 나섰다. 이태겸과 화인은 중전 쪽으로 시선을 모았다.
“그게 무슨 말씀이옵니까. 저희가 조정을 능멸하다니!”
이태겸은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그렇소. 대비마마께서 이결을 통해 저희 사가를 조사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조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셔야죠. 아무런 증좌도 나오지 않았는데 이 무슨 행태입니까. 대비마마는 물론, 저와 전하까지 겁박하려는 게 아니면 무엇입니까?”
중전은 또박또박 말했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고 단호하게 들렸다. 왕은 중전의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덜덜 떨고 있었다.
“마마, 증좌가 없다니요. 아까 편전에서 대비마마께서 내보인 종이뭉치는 증좌가 아니면 무엇입니까?”
화인 중진 이억이 따지듯이 물었다. 중전은 예상했다는 듯이 반문했다.
“그 종이뭉치가 제 사가에서 나왔다고 해서 저나 제 아버지가 썼다는 증좌가 있습니까? 저희 집안을 음해하려는 자가 몰래 갖다 놓은 것이라면 어쩌겠습니까?”
이억은 정곡을 찔린 듯 움찔했다. 이태겸 역시 중전의 당당한 태도에 당혹스러웠다.
“개미 한 마리 드나들 틈도 없는 수인 당수 집에 누가 그런 짓을 할 수 있답니까. 어쨌든 신들의 입장은 전하께 아뢰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조사가 끝날 때까지 저희는 이곳에서 한 발 짝도 움직이지 않겠습니다.”
이태겸은 물러서지 않기로 했다. 여기서 물러난다면 화인에게 남는 건 낭떠러지뿐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이들도 비장한 태도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중전은 왕과 함께 대전으로 들어갔고, 이태겸과 화인 중진 십여 명은 돌아가는 왕 부부에게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화인들 궐기는 대비전에도 금세 알려졌다.
‘끝장을 보겠다는 심사로구나.’
민 대비는 화인의 집단행동을 그렇게 단정했다. 그래도 일단 그들의 행동을 잠자코 지켜보기로 했다. 섣불리 의중을 내비쳤다 낭패를 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비는 자물쇠가 채워진 서랍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서랍 속 은침들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누르며, 그녀는 뜰 아래 엎드린 이결을 내려다보았다. 사저 수색을 마치고 돌아온 이결의 옷자락에는 흙먼지가 가득했다.
“그래, 무엇이 더 나오더냐. 중전과 내통한 서찰이라도, 아니면 역모를 꾀한 흔적이라도 찾았느냐?”
이결은 고개를 깊게 숙였다.
“송구하옵니다, 마마. 사저 안팎을 이 잡듯 뒤졌으나…대비전에서 보신 그 종이뭉치 외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나이다.”
서랍을 두드리던 대비의 손가락이 멈췄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럴 리가 있나. 제 딸을 중전으로 앉힌 자다. 욕심이 거기서 끝났을 리 없는데.”
대비의 시선이 이결의 뒷덜미를 훑었다. 이결은 대비가 보낸 내금위의 눈을 피해 이윤의 사저에서 미리 손을 썼다. 아니, 정확히는 이윤이 멍청하게 남겨둔 흔적들을 직접 지워버렸다. 그것이 중전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주인이 찾으라는 고기를 못 찾는 개는 어찌 되는지 잊었느냐?”
“제 목을 치셔도 달게 받겠나이다. 하오나 정말 아무 것도 없었사옵니다.”
이결의 단호한 목소리에 대비는 인상을 찡그렸다. 당장이라도 이결을 치고 싶었지만, 지금 그녀의 앞마당에는 더 큰 골칫거리가 버티고 있었다.
한편, 편전 마당은 소리 없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다른 화인 신료들은 물러갔고, 이태겸만 소복 차림으로 꼿꼿이 앉아 식음을 전폐한 채 버티고 있었다. 왕이 사람을 보내 물을 권했지만, 이태겸은 그것마저 거부했다.
이틀째, 이태겸은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소복 자락에는 밤새 내린 이슬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윤은 교활한 자입니다! 집 안에 증좌가 없다면 그건 이미 중전을 통해 궐 안으로 흘러들어왔다는 방증이옵니다! 전하, 부디 철저한 조사를 명하시어 궐 안의 쥐새끼를 잡아내고 중전을 폐하여 주시옵소서!”
이태겸의 목소리는 쉬었으나 기세는 더 등등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결이 ‘아무것도 없다’라고 보고할수록, 대비는 궁지에 몰릴 것이란 걸. 반대로 자신은 ‘성역 없는 조사’를 명분으로 대비의 심장부인 회랑까지 뒤질 권한을 얻으리라는 걸. 담장 너머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는 이결의 손바닥 화상 자국이 다시 욱신거렸다. 이태겸은 명분을, 대비는 권력을, 왕은 공포를 쫓는다. 그 사이에서 이결은 품 안의 은침을 더 깊숙이 밀어 넣었다.
*
왕이 단식 중인 이태겸을 찾은 건 찬 바람이 어느 정도 잠잠해진 음력 이월 중순 오후였다. 이태겸의 몰골은 퀭해졌고, 수염은 산신령처럼 자라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갈라진 입술에서 마른 소리가 났다. 소복 차림으로 꽃샘추위를 견디고 있던 이태겸의 몸은 손이 닿으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부쩍 야위었다. 이태겸은 왕의 행차에 희미해지는 정신을 겨우 부여잡았다.
“영상께서 이러고 계신 지 닷새째입니다. 국사를 함께 논해야 할 화인의 수장께서 며칠 동안 곡기를 끊고 있으니 저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왕의 말은 애처로웠지만, 표정은 덤덤했다. 이태겸은 왕의 방문 의도를 대략 짐직했다. 이쯤에서 단식을 멈추고 궐의 혼란을 멈추라는 신호로 해석했다.
“전하, 황공하옵니다. 이 늙은 신하가 전하의 치세에 걸림돌이 되고 말았습니다. 벌하여 주옵소서.”
“벌이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이제 그만하시고 거두어주시오.”
왕은 이태겸에게 재차 단식 중단을 청했다.
“전하, 이렇게 물러설 것이었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옵니다. 모쪼록 궐을 능멸한 이윤을 처형하고, 그 딸인 중전을 폐하소서. 그래야 종묘와 사직이 바로설 수 있사옵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인은 이 자리에서 죽겠나이다.”
이태겸의 단호한 태도에 왕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왕 역시 중전에게 이태겸이 어떤 태도로 나올지 미리 언질을 받은 터였다.
“그렇다면 나도 어쩔 수가 없군요. 영상 뜻대로 하세요.”
이태겸은 왕의 거부권에 적잖이 당황했다.
“아니, 전하. 어쩔 수 없다니요?”
“밥을 굶으면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고 합니다. 온전치 못한 정신에서 나오는 영상 말씀을 더는 듣기 힘듭니다. 죽이라도 드시고 정신이 돌아오면 그때 다시 얘기합시다. 난, 그만 갑니다.”
왕은 싸늘하게 돌아섰다. 이태겸은 왕의 그런 모습을 처음 봤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어린애인 줄만 알았던 왕이 갑자기 진짜 왕이라도 되는 양 변했다. 이태겸은 그저 머리를 조아린 채 왕이 돌아가는 뒷모습만 멀뚱멀뚱 지켜볼 뿐이었다.
편전 문이 닫히고 상궁들 발소리가 멀어지자, 왕은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내뱉었다. 꼿꼿하게 펴져 있던 작은 어깨가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중전은 문가에 서서 그런 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왕이 고개를 들어 중전을 보았다. 조금 전 마당에서 노련한 정치가의 기를 꺾어놓던 또렷한 눈동자가 아니었다. 왕은 배시시 웃으며 중전에게 다가가 치맛자락을 잡았다.
“중전, 내가 시킨 대로 잘했지요?”
중전은 무릎을 굽혀 왕과 눈을 맞췄다. 왕의 손은 한껏 떨리고 있었다. 이태겸의 어둡고 깊은 눈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 일곱 살 아이에게 얼마나 큰 공포였을지, 중전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예, 전하. 아주 잘하셨습니다. 영상 기세가 한풀 꺾였을 것입니다.”
“그가 죽을 갖다 줘도 안 먹겠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중전 말대로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고 하니까 아무 말도 못 하더라고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왕은 자랑이라도 하듯 아이처럼 맑게 웃었다. 하지만 중전은 그 웃음 뒤에 가려진 비정한 진실을 보았다. 왕은 이제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법보다, 상대 치부를 찔러 무력화하는 법을 먼저 배워버린 것이다.
“전하, 무섭지는 않으셨습니까?”
중전의 물음에 왕의 웃음이 잠시 멈췄다. 왕은 중전의 손을 꼭 쥐며 속삭였다.
“사실은, 정말 무서웠어요. 영상의 수염이 꼭 귀신 같았거든요. 그래도 참았어요. 내가 거기서 겁을 먹으면, 중전이 궐 밖으로 쫓겨난다고 했잖아요. 나는 이제 중전 없으면 잠을 못 자요. 이결이 비단 주머니를 보여줬을 때도 솔직히 무서웠단 말이에요.”
왕은 중전의 품에 머리를 기댔다. 중전은 왕의 작은 등을 토닥이며, 멀리 어둠 속에 서 있을 이결을 떠올렸다.
“아무도 전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중전의 목소리에는 결기가 서려 있었다. 왕은 중전의 품 안에서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중전의 눈은 다음 전쟁터를 향하고 있었다. 화인의 거두가 꺾였으니, 이제 진짜 주인인 대비가 움직일 차례였다.
“보통 아이가 아니로구나.”
민 대비는 영상의 단식장을 찾은 왕의 언행을 보고 받은 뒤 중전을 떠올렸다. 중전의 도움이 아니고서야 어린 왕은 도저히 그런 강단을 내보일 수 없었다. 대비는 뭔가 결심을 굳힌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일어나 단식장으로 향했다. 왕과 대비가 교대하듯 이태겸을 찾았다.
“영상, 그만 단식을 중단하세요.”
“아니, 마마. 그것이 무슨 말씀이옵니까. 저희 뜻이 관철되지 않았는데 단식을 멈추라니….”
대비는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영상의 얼굴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명색이 화인 당수께서 일곱 살짜리에 그 수모를 당하고도 자존심이 남으셨소?”
대비의 말에 이태겸은 오금이 저렸다. 대비의 지시에 따라 이윤의 인사 농단은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왕은 중전을 폐하지 않을 것이다. 고로, 단식은 무의미해졌다. 이태겸은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그 모습을 본 대비는 이태겸의 두 손을 잡았다. 그러곤 능청스럽게 연기를 시작했다.
“국사를 바로 세우겠다는 영상의 충심은 이제 하늘이 알고, 땅이 압니다. 하지만, 몸이 상한다면 불충을 저지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이쯤에서 그만 거두세요. 제가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태겸은 그것이 대비의 진심은 아니라고 믿었다. 다만, 자신이 단식을 물릴 명분을 만들어주기 위함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결은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없음을 깨달았다.
이태겸은 대비에게 절을 올리려 일어나려고 했다. 그 순간 다리가 휘청이며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내관 둘이 부축해 이태겸을 데리고 내의원으로 데려갔다. 화인 당수 이태겸의 단식은 닷새 만에 빈손으로 끝났다. 하지만 화인 내부에서는 대비와 수인을 견제하는 데 어느 정도 영향력을 미쳤다고 위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