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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스트 Sep 16. 2022

몽둥이로 배운 영어

영어공부, 영어회화

   'I am a boy.'

   이것을 처음 배운 것은 중학교 1학년 영어교과서 첫 페이지에서였다. 당시 초등학교 교과과정에는 영어가 없었고, 내가 살던 곳에는 학원이라고 해봐야 소수의 미술, 피아노, 주산학원, 컴퓨터학원이 전부였다.


   중학생이 되었음에도 알파벳밖에 몰랐던 나의 영어실력을 키워준 것은 학교 영어 선생님이었다. 이 선생님은 좀 독특한 교육방식을 가졌다. 1년 내내 영어교과서를 통째로 외우게 시키는 것이었다. (문법 설명은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각 분단 별로 칠판 앞에 한 줄로 서서 교과서를 다 같이 암송(합창)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독사 눈을 뜨고 쳐다보며 립싱크를 하거나 머뭇거리는 학생들은 몽둥이 끝으로 지목하여 열외를 시켰다. 끝까지 생존한 자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리에 들어가 앉고 열외자들은 종아리를 3대씩 아주 찰지게 맞았다.


  하필이면 2학년 때 우리 반 만 그 선생님의 수업을(몽둥이를) 1년 더 받게(맞게) 되었다. 자랑스럽게도(?) 나는 2년 내내 한 번도 열외를 당하지 않은 유일한 생존자였다. 그래도 정말 싫었다.


   2년 동안 고통스럽게 교과서를 암송한 덕분에 영어학원을 따로 다니지 않고도 영어를 잘하게 되었다. 나는 종아리를 맞지 않으려고 거의 매일 몇 시간씩 방에서 소리 내어 읽었다. 방식은 다소 투박하고 무식(?)했지만 그 효과는 대단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해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법을 그분께 제대로 배운 것 같다. 읽는 순서대로 이해하게 되니, 듣기도 덩달아 향상되었다. 학교 수업만으로도 그렇게 실력이 향상되었다.


   그 덕분인지 수능에서도 영어는 다 맞았다.

   그렇게 입시 영어는 어느 정도 했지만 대학에 가서는 영어회화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읽고 듣는 것은 어느 정도 하겠는데, 외국인을 만나면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도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지나가는 외국인만 보면 쫓아가서라도 말을 걸었다.


   주로 방학 때가 되면 집 근처의 문화유적지로 갔다.

   그 당시 지방에서는 관광안내체계가 허술했었고, 시골에서 외국인에게 영어로 말을 거는 사람도 드물었다. 그래서 외국인들은 영어로 말을 거는 나를 꽤 환영해줬다. 그렇게 기회가 생기는대로 다양한 외국인들과 하루 내지 이틀 삼일을 동행하며 안내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 보는 외국인과 갑자기 제로베이스에서 대화를 시작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처음엔 좀 민망하기도 하고,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한 상황도 자주 생겼다. 하지만 외국인과 영어를 사용한다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계속 들이댔다.

   

   아마도 유학을 제대로 다녀온 사람들에 비교해보자면, 나는 유창하거나 고급 어휘나 현지에서나 쓰는 표현을 유려하게 구사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어떻게든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모르는 표현은 상대 외국인에게 영어로 물어가며 이야기하면 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모든 표현을 다 알 수는 없다.

   '모르면 물어보면 된다'라는 생각이 자리 잡으니 안심이 되고 긴장이 사라졌다. 점점 외국인 친구들이 주변에 많이 생겼고, 그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편해졌다.



   졸업 후에는 무역회사에서 근무를 할 수 있었고, 퇴사 후에 외국인 교수와 함께 영어로 수업하고 과제하고 발표하는 대학원 3년을 잘 다닐 수 있었다. 물론 가끔은 용감한 콩글리쉬가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원어민이 아니기 때문에 괜찮다.


   아,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한 짓(?)도 했다.

   휴대폰 전원을 끄고, 외국인과 통화하는 척 계속 길에서 말하고 다녔다. 주로 나의 근황을 이야기하는 상황극을 했다.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기도 하고, 지금 있는 곳을 설명하기도 하고, 누군가와(?) 한참을 다투기도(?) 했다.


   늘 외국인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혼자서라도 연습을 했다. 집에서 혼자 벽보고 하는 것보다 지루하지 않아서 꽤 자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냥 내가 재미있어서 한 것들이다.


   영어 텍스트를 큰 소리로 반복하여 암송하는 것은 지금도 아니 언제나 효과적인 영어공부방법이다. 음성을 따라 읽는 섀도잉은 발음이 교정되고 감정을 실을 수 있어 더 좋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한국말로 해석하는 습관을 버릴 수 있다.


   대개 해석이 되어야 이해한 것 같고 뭔가 개운한 느낌도 있지만, 그 습관 하나 때문에 영어가 쉽게 늘지 않는 다. 해석하고 분석할 시간에 그 표현을 한 번이라도 더 입 밖으로 말해보는 것이 더 좋다.


   무조건 소리 내어 떠들면 된다.

   물론 공짜다.


   몽둥이가 있으면 더 효과적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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