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ther nature
점심 약속 장소까지 30분을 걸었다.
날씨가 좋아서 차를 두고 걸어왔더니 가슴이 시원해지는 것 같다. 바람은 좀 불었지만 어느새 햇빛이 따스해져서 기분이 무척 좋다. 기름값을 아꼈고 운동도 되었고 햇빛 샤워도 충분히 즐겼다.
작년 봄에 제주에 갔을 때 숙소의 문만 열면 바로 땅을 밟으며 밖으로 나올 수 있던 것이 기억이 선명하다. 문만 열면 볼 수 있던 그 들꽃이나 햇빛, 풀냄새, 공기, 새소리 어느 하나 즐겁지 않은 것이 없었다.
자연을 가까이하는 삶을 언제나 동경하지만 수십 년 동안 익숙해진 도심의 아파트라는 생활공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아파트에서는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엘리베이터 문을 나와 한 번 더 출입문을 통해 건물 밖으로 나올 때'까지의 단계가 많아서인지 심리적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그래서 도심 아파트 생활자들의 실외생활시간이 짧은 것 같다. (나가도 '자연산'인척 하는 아파트 정원뿐이다. '양식'이라고 해야 하나?)
출퇴근시간 길게 늘어선 차량행렬을 볼 때마다 아파트라는 곳은 퇴근하고 돌아와 잠시 숨을 돌리는 복싱 경기장의 홍코너, 청코너인 것 같다. 잠시 숨 돌리고 재정비한 뒤 '땡'하는 종소리와 함께 링 가운데를 향해 힘겹게 일어나야 하는 그런 간이 의자가 있는 곳 말이다.
게다가 아파트는 인간의 활동량을 최소화할 수 있는 '동선이 짧게 설계된 곳'이다. 짧은 동선은 편리하지만 활동성이 부족해지니 몸에 쉽게 지방이 끼고 활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한다. 그것도 햇빛을 가린 그늘 아래에서만 주로 머물게 된다.
집 - 엘리베이터 - 지하주차장 - 차 안(도로) - 회사 주차장 - 사무실, 그리고 퇴근은 역순이다.
세계적인 축구스타 엘랑 홀란드는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햇빛을 보려고 애쓴다고 한다. 생체리듬을 좋게 하는데 아침부터 햇빛을 보는 것만 한 게 없다는 이유이다.
아침에 햇빛을 받으면 멜라토닌 농도가 최저치로 내려가고 그렇게 낮은 농도를 유지하다가 14시간 후 재분비되기 시작하며 잠이 쏟아진다. 그리고 7시간 정도 멜라토닌이 높은 농도로 유지돼 숙면을 돕는다고 한다.
숙면은 다음 날의 컨디션의 기본값을 또 올려주니 생활은 선순환 사이클을 탈 수밖에 없다. 숙면의 맛을 아는 나도 오전에 햇빛을 보며 걷기를 챙기려고 노력한다. 밤이 되면 잠이 쏟아져 금세 잠이 들고, 충분히 자고 새벽에 가만히 눈이 떠지는 그 기분과 바꿀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런 실외활동은 아파트라는 허들을 벗어나야 더 손쉽게 그리고 더 자주 노출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가끔 '홍코너의 간이의자에서 잠시 재정비하고 있는 듯한' 회의감이 몰려들 때마다 와이프와 시골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하곤 한다.
인생의 절반 가까이는 아파트에서 살았으니 남은 인생은 자연이 가까운 주택에서 살아보는 것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아파트에서는 하기 어려웠던 그런 일상을 상상하기도 한다. 그래서 '5도 2촌'에 대한 생각을 와이프와 나누기 시작했다.
물론 익숙지 않은 크고 작은 불편함도 시골에 도사리고 있겠지만, 층간 소음이나 주차문제와 같은 빌런들도 견뎌내야 하는 높은 인구밀도의 공동생활도 무조건 좋다고만 할 수도 없다. 어쩌면 당연해지고 익숙해진 것뿐일 것이다.
장수마을로 꼽히는 곳이 이편한세상일까? 자이일까? 아니면 힐스테이트일까? 아니, 아리팍일까? 아, 시그니엘인가? 세계적인 장수마을(블루존)로 꼽히는 곳들이 무슨무슨 아파트 단지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어디에 산다고 장수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자연환경에서 형성된 사람들의 식습관과 생활습관이 장수를 이끌어 낸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당장 시골로 갈 수는 없으니 지금 살고 있는 도심에서라도 건강한 식습관을 잘 유지하고, 햇빛, 신선한 공기, 숲 등의 자연을 최대한 영끌하며 느슨하게 지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