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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스트 Apr 29. 2023

고교 동창의 일기 아니 에세이를 읽고

반짝이지 않아도 사랑이 된다 - 나민애

   늘 뒷모습으로 기억하던 아이였다.

   긴 곱슬머리에 왼팔인지 오른팔인지를 좌우로 흔들며 걷는 특유의 걸음걸이가 기억이 난다. 부지런히 걸어가는 이 아이의 옆을 나는 매일 자전거를 타고 지나쳤다. 책표지에서 글쓴이의 이름을 보고 고교시절 등하굣길 풍경이 문득 그려졌다.


   이 친구의 뒷모습을 하루에 4번은 본 것 같다.

   집이 같은 방향이었기에 학교 가는 길 그리고 저녁 먹으러 집에 가는 길, 다시 야간자습 하러 학교에 가는 길 그리고 야간자습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 그렇게 3년 동안 뒷모습을 보던 아이였던지라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는 듯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 친구와 단 한마디도 나눠보지 않은 사이가 맞을 것이다. 있다고 해봤자 아마 한번 정도? 있었을 것이다. (규모가 크지 않은 학교여서 웬만하면 같은 학년은 다 안다고 해도 될 정도다.)


   궁금했다.

   명문고라 불리는 학교 내에서도 손꼽히던 공부 잘하는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더하여 사소한 일과 세세한 감정마저 적혀있어 마치 이 친구의 일기를 몰래 읽는 듯했다. 책장을 넘길수록 궁금증이 더해져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었다.



   '그래, 그랬구나. 나도 그랬는데.'

   이 좋은 세상에 나에게만 있는 것만 같던 삶의 무게는 그 아이에게도 있었다. 인간의 삶이라는 비슷한 여행 경로에서 써 내려간 그의 인생 여행기를 읽으며, 나는 한 인간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끼고 위안도 얻었다.


   동년배의 삶의 프레임에서 내 삶이 보였고, 중년에 들어선 여자의 시각에서는 내 아내의 삶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아내에게서 내가 읽어주지 못한 마음이 보여 아내에게 한번 더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아내와 내가 아들에게 틈틈이 해주는 말과 상통하는 말들을 책에서 찾으며 싱긋 웃음도 났다. 그리고 아들에게 해줄 몇 개의 지혜로운 말도 배워서 기뻤다.


   25년 만에 동창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친하지는 않았지만 책으로라도 만나서 반가웠고, 좋은 이야기 해줘서 고마웠고,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나는 그동안 글을 쓰며 신기하게도 삶의 위안을 얻는 느낌이 있었다. 내 마음 어딘가는 더 단단해졌고, 또 어딘가는 보다 유연해졌기 때문이다.


   이 친구도 에세이를 쓰며 삶의 위안을 얻고, 더 단단해지고 또 유연해졌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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