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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스트 Mar 09. 2022

명문고 실패자가 본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무소속 프리퀄

   "이번에 우리 반 모의고사 반 평균 성적이 전국 1등이다."

   고3 때 담임선생님이 야간자습의 정적을 깨며 교실에 들어왔다.

 

  "ㅇㅇ이가 반 평균을 1점 깎아 먹었으니까, 니가 나가서 아이스크림 사와라."


   나는 건네받은 지폐를 손에 쥐고 컴컴한 운동장을 혼자 가로질러 걸어 나갔다. 아이스크림 48개를 봉지에 담아 나는 교실로 돌아왔다. 무슨 이야기들이 한창이었는지 다들 이유를 알 수 없는 즐거운 표정들로 바뀌어 있었다.


   부끄러움과 외로움이 밀려왔다.


   20년도 훌쩍 지난 지금도 그때의 감정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을 보면 상처가 꽤 깊었던 모양이다. (고등학교 앨범은 이미 문서세단기를 통과했다.)




   나는 명문고 출신이다.

   내가 속했던 고등학교는 지금도 수능성적과 진학률 등의 지표로 따지는 고교 순위로도 특목고들 사이에 섞여있을 만큼 최상위권에 있다. 그런 학교에 나는 입학 장학금을 받으며 최상위권으로 들어갔다.


   3월 첫 주가 입학이었지만, 그 당시 학교는 입학하기도 전인 1월에 선수학습이라는 것을 했다. 부모님의 기뻐하는 모습, 주변의 큰 기대를 받고 학교에 들어간 내가 절망하는 데는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주요 과목들만 수업을 했기에 하루에도 국영수는 매일 각각 두 시간 이상이었다. 나는 그날 배운 것도 다 소화를 못 시켰는데, 수업 진도는 가차 없이 다음 역으로 떠나버렸다. 나만 모르는 이야기는 매일 교실을 채웠다.


   삼일째가 되던 날, 내 오른쪽에 앉은 아이의 '수학의 정석'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책은 이미 헌책으로 보일 정도로 마지막 단원까지 이미 풀려 있었다. 심지어 어떤 아이들은 '실력 정석'마저 다 풀려있었다. 내 '기본 정석'만 깨끗한(순진한) 새것이었다.


   내 인생에서 고등학교 3년은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공부를 더 열심히 할 걸'이라는 후회는 없다. 그 당시에도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오래 앉아있었다). 매일 밤 11시 50분까지 야간자습을 했고, 휴일에도 온종일 자습이었고, 심지어 명절 연휴 마지막 날에도 야간자습을 했을 정도였다. 방학은 길어야 3~4일이었다. (자습을 빠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던 학교였다.)


   3년 내내 나는 자리에 앉아서 방황했다.




   나는 '선행학습'을 하지 않고 순진하게 고등학교에 온 것에는 지금도 전혀 아쉬움이 없다. 사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학교가 정한 속도와 분위기에 3년 내내 떠밀린 것이 가장 후회스럽다.


   일괄적으로 전진하는 무리에서 이탈했어야 했다. 나는 나의 속도를 인정하고 지켰어야 했다. 그리고 때때로 교실에서 나와 회복할 수 있는 여유를 챙겼어야 했다.


   오늘 와이프와 아들과 함께 극장에서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보고 왔다. '누가 내 일기장을 허락 없이 보고 영화를 만들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감이 가는 대사와 장면이 많았다.


지금 나는 무리에서 이탈한 무소속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의 속도를 인정하고, 방향도 내가 정한다.

나의 회복을 스스로 챙기고 있다.


그래도 나는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살아가고 있다.


   지금의 내가, 과거로 돌아가 고등학생이었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영화 속 경비아저씨처럼 도와줄 순 없겠지만, 한번 꼭 안아주고 싶다.


   “ㅇㅇ아, 괜찮아. 천천히 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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