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 밀프렙
와이프는 오전부터 약속이 있다.
나는 조용한 집에서 아침에 먹은 그릇을 설거지를 한다. 냉동고에 얼려둔 밥을 다 먹어서, 쌀, 현미, 귀리 그리고 렌틸콩을 한컵씩 담아 씻고 냉장실에 불려 놓았다.
예능(tvn부산촌놈)을 틀어놓고 (낄낄 거리며) 거실에 건조된 빨래를 개기 시작한다. 다 갠 옷과 수건을 제자리에 모두 가져다 두고 세탁실로 향한다. 아까 보니 바닥이 좀 지저분했다. 물청소를 마치고, 바닥이 잘 마를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둔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금세 마른다.
냉장고에 있던 부추를 꺼냈다.
부추 겉절이를 만들 것이다. 어젯밤에 냉장고에 있던 목살을 보고 부추 겉절이랑 같이 먹으려고 어제부터 벼르고 있었다. 부추를 꺼내 큰 그릇에 담아 물을 받고 식초를 조금 넣고 잘 섞어준다.
몇 분 후 수차례 물로 씻고, 부추의 시든 부분들과 이물질들을 떼어주고 4cm 길이로 자른 다음 야채 탈수기에 넣어 물을 빼준다. 큰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고 양파도 하나 썰어 넣었다. 그리고 양념을 시작한다.
고춧가루 3 숟갈
다진 마늘 한 덩어리
식초 휘이휘이
간장 쪼르르 쪼르르
참기름 한바아퀴 반
통깨 2 숟갈
매실액 3 숟갈
발사믹식초(는 그냥 호기심에 넣어봤다) 두바아퀴
수저 두 개를 쥐고 뒤적뒤적 섞어주었다.
조금 맛을 본다. 맛이야 뭐 부추 겉절이 맛이다. 그런데 맛이 나쁘지 않다. 괜찮다.
구운 목살과 같이 점심식사를 시작한다.
오, 맛있다. 아마 와이프와 같이 먹었다면 나는 묻는 말에 최대한 늦게 단답형으로 대답하며 하나 더 먹었을 것이다. 조금 더 고단수는 질문을 계속 던지며 나는 듣는(먹는) 것이다.ㅋㅋ
주방장악 5개년 계획의 두 번째는 요리다.
요즘 아침식사는 거의 고정적으로 내가 하고 있는데, 이제는 점심, 저녁에 먹을 요리를 조금씩 해보려고 한다. 요리라고 하니 좀 거창한 것 같고 미리 한번에 많이 해두면 끼니때 간단히 데워먹기만 하면 되는 밀프렙과 반찬들이다.
요리는 재미있지만, 복잡하고 번거로운 것은 싫다.
미세한 계량도 귀찮고, 갖가지 조리도구를 써봐야 설거지만 늘어난다. 그래서 좀 간결하려면 단순한 도구와 재료들로 뚝딱뚝딱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칼은 과도 하나로 다한다. 도마는 큰 스텐접시.
그리고 '냉동 채소'같은 시간을 절약하고 편리하고 보관이 용이한(낭비가 없는) 재료가 좋다. 생채소가 더 신선하고 좋을 수 있겠지만 요리의 형태와 조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조금 내려놓으면 일의 진척이 빠르다. 맛과 영양은 대동소이하고 식비를 조금 더 줄일 수 있기도 하고 말이다.
회사에서 하는 단순화 최적화 작업을 집밥을 만드는데도 적용해보고 싶다. 물론 맛있는 일품요리도 종종 해 먹겠지만, 늘 먹는 집밥을 간단하게 밀프렙 해두며, 시간과 비용을 절약해보고 싶다. 물론 영양의 균형도 중요하다.
이렇게 나의 주방장악 5개년 계획으로 점점 와이프를 살림 부담을 덜어 주고 싶다. 나만 일에서 파이어(은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와이프도 주방에서 만큼은 최대한 은퇴하게 해주고 싶다.
요즘은 맛있는 게 좋다.
나이가 들면 입이 자꾸 심심해진다고도 하던데. 뭐 어쨌든 내가 먹고 싶은 반찬을 만들고, 와이프는 손질하기 꺼려하는(그렇지만 나는 먹고 싶은) 생선요리도 할 것이다. 그리고 낯선 요리도 찾아 만들어 먹고 싶다. 스스로 요리를 하면 (와이프도 편하고) 나도 그만큼 자유롭기도 하다.
혹시 모를 외식이 어려운 귀촌 생활이나, 곰국(와이프의 모임과 여행)과 함께 집안에 남겨질 수 있음에 대한 대비책일 수도 있겠다. ㅋㅋ
재미있다.
이것도 나를 알아가는 방법들 중 하나인 것 같기도 하다. 어제에 이어 글을 쓰는 오늘은 '토마토 스튜'를 해놓고 나왔다. 잘 졸여져서 라구파스타 소스 같은 느낌인데 맛이 꽤 좋다. 아들이 오늘도 아빠의 요리를 먹고 시크하게 엄지 척하는 모습을 보러 서둘러 퇴근해야겠다.
간편 "토마토 스튜" 레시피(재료는 라따뚜이와 비슷)
1/ 토마토 7개 꼭지를 떼고 십자가 모양을 칼집을 낸다.
2/ 물에 3~5분간 삶아내고 껍질을 벗겨낸다
3/ 믹서에 넣고 30초간 간다.
4/ 웍에 올리브유를 뿌리고 다진 마늘 한줌을 볶는다.
5/ 간 소고기(앞다리살) 1팩(400g)을 넣고 볶는다.
6/ 핏기가 사라지면, 냉동 볶음밥용 채소(감자, 호박, 양파, 청파프리카, 홍파프리카) 2팩(1kg)를 넣고 볶는다.
7/ 오래 서서 볶기 귀찮으므로 믹서에 간 토마토를 바로 넣는다.
8/ 중불로 바글바글 끓이며 가끔 뒤적거려 준다.
10/ 맛술 한 바퀴
11/ 치킨스톡 한 바아아퀴
12/ 소금 착착
13/ 후추 착착착
14/ 버터 신용카드 크기로 두께 2센티
15/ 고소함을 위해 베지밀B 200ml 콸콸
16/ 잘 섞고 조금 걸쭉해질 때까지 약불로 끓인다.
17/ 소분해서 얼렸다가 먹을 때 전자레인지에 데운다.
그냥 먹어도, 구운 빵이랑 먹어도, 밥이랑 먹어도 맛있다.
재료를 들여다보면 영양도 만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