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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스트 Nov 11. 2023

아내가 나의 출가를 걱정한다.

철봉스님과 섹시보살

   반인반스

   : 반은 보통 인간이며, 반은 스님.


   요즘 나의 생활을 네 글자로 말한다면 이렇다. (반인반수 아님)


   머리는 0.8mm로 밀었고, 하루 섭취량은 채소와 잡곡밥의 비중이 육류보다 더 높다. 역시나 술담배는 하지 않는다. 어두운 새벽에 조용히 일어나 이불을 반듯하게 갠다. 한바탕 달리고 돌아와 아침 아침 공양 읍읍 아니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사과당근주스를 마시고, 채소 샐러드를 한 그릇 넘치게 먹는다. 예전에 한창 술을 마실 때는 술잔을 엎지르면 "아이고, 저 아까운 술을!" 했다. 고기를 바닥에 떨어뜨렸을 땐 "어이쿠, 이 비싼 고기를!" 했다.


채소 많이 먹고 온실가스 배출해야지.


   그런데 요즘에는 아침에 채소를 씻다가 싱크대로 버터헤드 하나라도 떨어지면 "아이쿠 저 아까운 것을!" 한다.ㅋㅋㅋ 허 참, 언제부터 이렇게 바뀐 걸까?


   예능 놀토에서 어떤 가수가 샐러드이야기에 무조건 반사로 '아, 맛있겠다.'라며 탄식하는 장면이 기억이 난다. (태연이었던가, 키였던가?) 요즘 그 말이 종종 생각난다. 말도 안 된다며 전혀 공감이 되지 않던 게 이제는 뭔지 알겠다. 채소의 식감이 좋아 맛있게 느껴진다.


   매일 달리며 호흡하고, 아침 햇빛을 받는다.

   그리고 하루 10회 X 3 set 철봉을 잡아당기며 상체를 운동한다. 앉아서는 편하지가 않아서 나는 가만히 누워 호흡에 신경 쓰며 명상을 하기도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당기고, 달린다.


   나는 이제 11kg가 빠져 72kg대에 진입했다.

   몸은 점점 더 가벼워지고, 가뿐하고, 뱃속도 편하고, 피부도 맑다. 정신도 예전보다 더 또렷하고 맑아진 것 같다.


   정제된 생활을 사람들은 애쓴다고 여긴다.

   이렇게 살아보니 정제된 생활은 애쓰는 게 아니라 즐기는 것임을 알게 된다. 이 정제된 생활을 통해 몸이 평안해지고 마음의 평화를 느끼기 때문이다.


   하루에 스트레스를 느끼는 시간이 줄었다.

   스트레스받을 일도 줄고, 스트레스의 강도도 전 같지 않다. 세상을 더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어리석은 선택에는 자연스레 손이 가지 않게 된다. 이러니 정제된 생활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불규칙한 생활(술, 담배, 야식 등)이 자유라고 느꼈다면, 지금은 이런 정제된 생활을 통해 스트레스의 빈도와 크기를 줄이는 쪽에서 진짜 자유를 느낀다.


   그래서 요즘 스님들이 왜 그렇게 사시는지 알 것 같다. 단출한 환경에 자신을 넣지 않으면 제대로 정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유튜브에서 "왜 저러고 사냐, 왜 저 사서 고생을 하나, 카메라 앞에서만 저런다" 등의 댓글들을 보기도 하지만, 반인반스가 되고 있는 나는 스님의 삶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요즘 설거지를 하며 EBS 다큐에서 스님들 영상을 보게 된다. 그런데 와이프는 자기 남편이 머리 빡빡 밀고 만날 스님 영상을 보고 있으니, 갑자기 출가하는 건 아닌지 걱정을 한다. 어느 날 훌쩍 떠나 산속에 암자를 짓고 홀로 사는 것을 선택할 것 같단다.


   다른 여자들은 자기 남편이 자연인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을 한다는데 와이프는 남편이 스님이 될까 봐 걱정을 한다. 그래서 스님 영상 금지령이 내려졌다.ㅋㅋ


   노년에는 산에 가는 거 아니란다.

   낙상으로 뼈가 부러져 일주일만 누워있어도 근감소가 순식간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노년에는 넘어지기 쉬운 산이나 층계는 가급적 얼씬도 하지 않을 것이기에 산으로 출가할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의 하이브리드형 반인반스처럼 자본주의를 활용한 미니멀한 삶으로 오랫동안 예쁜 와이프에게 젖은 낙엽처럼 착 붙어있으려 한다. 그래서 요즘 나는 우리 부부를 “철봉스님과 섹시보살”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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