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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스트 Jan 28. 2024

시골에서 살해되지 않는 방법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귀촌을 생각했다. 현업에서 은퇴하면 자급자족과 offgrid의 삶을 꿈꾸며 시골로 들어가 보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EBS 다큐 같은 귀농, 귀촌 다큐를 보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알아보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이 책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원제: 시골에서 살해되지 않는 방법)'를 알게 되었고, 절판된 이 책을 도서관에서 찾아 드디어 읽고 있다. 사실 귀촌에 대한 부정적인 저자의 생각도 들어볼 요량이었으나, 이 책은 시골살이를 소재로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신랄하게 쓰고 있다.


   사람들은 성선설과 성악설의 어느 쪽을 믿느냐는 질문을 하곤 한다. 요즘의 나는, 사람은 성선과 성악 둘 다 가지고 있으며, 사람마다 어느 비중이 큰지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살아볼수록 성악의 비중이 더 크다는 쪽으로 점점 기울어지고 있다.


   시골이라는 어쩌면 원초적이고 열악한 사회에서 그런 성악을 드러내는 인간의 민낯을 저자의 필력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시골 생활을 실제로 해본 것은 아니라도 인간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연결고리를 형성할 수 있다.



   인상적인 목차들을 중제목 소제목 관계없이 나열해 본다.


- 풍경이 아름답다는 건 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이다

- 구급차 기다리다 숨 끊어진다

- 사이비 종교인들에게 당신은 봉이다

- 술을 마시는 건 인생을 도려내는 일이다

- 고독은 시골에도 따라온다

- 고요해서 더 시끄럽다

- 다른 목소리를 냈다간 왕따 당한다

- 공기보다 중요한 지역 사람들의 기질

- 깡촌에서 살인사건 벌어진다

- 시골로 이주하는 범죄자들

- 군침을 흘리며 당신을 노리고 있다

- 심심하던 차에 당신이 등장한 것이다

- 그들에게 마을은 나의 집

- 모임에 도시락을 대 주면 당선

- 엎질러진 시골 생활은 되돌릴 수 없다


   책을 읽다 보면 대개 제목을 넘어서는 내용이 없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내용은 제목을 넘어서있으며, 텍스트와 행간에 스며있는 저자의 눈빛과 새어 나오는 미소가 보일 정도다.


도심의 하늘도 푸르다.


   시골에 사시는 큰아버지 댁에 소도둑이 들었던 일이 생각났다. 당시 환갑이 넘은 큰아버지 큰어머니 그리고 아흔이 가까워진 할머니 세 분이 살고 있었을 때였다. 밤에 소도둑이 대놓고 자물쇠를 끊고 소를 끌고 가는데 그 어떠한 대응도 못했다고 했다.


   나가서 대응하자니 칼부림당할 것 같고, 신고하자니 경찰이 빨리 올 수 있을 거리도 아니었고, 신고해서 잡힌다 한들 얼마 안 가 출소해서 해코지할 것만 같아서 신고도 못했다.


   "어느 정도는 논리적인 언동이 통용되는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당신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겠지만, 시골에서는 건강은 물론 때로 목숨조차 돈과 맞바꾸는 무시무시한 가치관이 횡행합니다."라는 구절에서는 지인의 이야기도 생각났다.


   마을 인근에 축사가 들어서는데 동의하지 않고 버텼다가 당하는 수모에 대해서 말이다. 당장 수중에 돈 천만 원 들어오는데 그거 동의 안 해준다고 혐의를 입증하기 어려운 괴롭힘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 책은 시골살이에 대한 책이 아니다. 저자 마루야마 겐지는 인간의 원초적 모습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는 것이 내 해석이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내는 것이 인간이지만, 그런 원초적인 환경에서 인간은 결국 속내를 드러내기 때문이랄까?


   이런 모습은 아파트의 슬럼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지금 신도시에 살기 전에 나는 시골은 아니지만 소도시 아파트에 살았다. 그 아파트는 30여 년 전만 해도 지역 최초의 브랜드 아파트였고, 강가에 위치한 뷰가 좋은 곳이었다.


여기도 20년 뒤에는?


   처음 살 때만 해도 대학 교수나 지역 유지 등의 입주민들의 생활 수준이 높은 나름 '고급' 아파트였지만, 과거의 기준으로 지어진 아파트는 층간소음 기준 따윈 없고, 누수 같은 수선이 끊이지 않고, 편의시설이 부족하고, 주차전쟁을 치러야 하는 등의 불편이 이어졌다.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며, 더 좋은 신규 아파트가 속속 지어졌고, 심지어 근처에 신도시까지 지어졌다. 돈 있는 사람들은 새 아파트로, 신도시로 빠져나가다 보니 그 아파트는 점점 슬럼화되었다. 살기 불편하지만 값싼 아파트를 찾아온 사람들이 늘어났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 비하면 그곳은 전쟁터였다. '논리적인 언동이 통용되지 않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났다. (그 아파트에서 20여 년을 살았기 때문에 '몸소'데이터가 쌓였지만, '그 아파트'에서만 해당하는 이야기 일 수도 있다.) 거칠었고, 돈 드는 일에 예민했고, 술 취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도 생겨났다.


   정부에서 허용하는 30년 이상된 아파트 재건축 대상에도 포함되긴 하겠지만, 그 동네 사람들이 과연 재건축 분담금을 부담할 수 있을까 싶다. 이사 나오길 잘했다.


일요일 아침은 스벅 가는 날


   지방소멸, 경기침체 등의 이슈는 연일 뉴스에 나오고 있다. 시골 살이에 대한 관심으로 읽게 된 책이지만 여러 생각으로 이어졌다. 인간이 살아가는 이야기, 꼭 시골이 아니어도 열악한 환경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모습, 앞으로 세상이 변해가는 모습, 그 안에 우리 가족의 삶, 그리고 부동산 투자에 대한 고민까지 여러 생각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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