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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스트 Feb 04. 2024

이웃집 프로파일링 하기(1)

아랫집

   학부 때 교양과목으로 관상과 사주를 배웠다. "다음 8명의 인물사진을 보고 과학자를 찾고 그 이유를 기술하시오"가 기말시험 문제로 나왔던 기억이 있다. 얼굴의 3정과 12궁을 기반으로 따져보는 거였는데 지금은 이론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겉으로 보고 판단하는 것이 관상만 있는 게 아니다. 관상뿐만 아니라 손을 보는 수상, 발을 보는 족상, 몸을 보는 골상도 있었는데, 관상이불여심상이라는 말대로 상대의 마음을 보는 것이 제일 정확하다고 관상가들은 말한다.


   나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가설을 세우고 맞추는 것을 재미있어한다. 생김새뿐만 아니라, 피부, 손,  몸, 걸음걸이, 말투, 단어선택이나 시선 등을 보면서 관찰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런 데이터들을 모아 그 사람의 직업이나 성격, 성향 등에 대한 예상도를 그리고 지켜본다.


   아랫집 부부는 학원 강사라고 생각한다. 이사 온 초창기에는 대략 추측만 했다. 나의 추측은 정황과 쌓여가는 간접 증거들(?)로 점점 확신을 하다가 결정적인 계기로 확신하게 되었다.


   우선 남자는 평일 밤 10시 20~30분 사이에 집에 돌아온다. 이걸 알 수 있는 이유는 그 시간에 아랫집 개가 짖기 때문이다. 개가 짖고, 문이 쾅하고 닫히고도 약 5초 정도 더 짖는다. 이사 온 이후로 3년째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학원 강사라 생각한 또 다른 이유는 오후에 출근을 하는 모습을 자주 봤기 때문이다. 내 차 옆에 주차된 경차를 타고 나가는 모습을 봤고, 그날 이후로 거의 매일 이른 오후에도 그 차가 주차되어 있는 모습을 본 후로 이 사람은 주로 오후에 출근해서 오후 10시경에 퇴근하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피부가 하얀 편이었다. 팔도 손도 얼굴도 하얀 편이어서 햇빛을 보며 일하는 직업은 아닐 것 같고, 손모양과 팔을 보니 육체적인 힘을 쓰는 직업도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렇다고 일반 사무직이라고 하기엔 일반적인 출퇴근 시간에는 집에 있었다.


   약간 통통한 몸매에 갈색 구두와 벨트, 베이지색 면바지 그리고 셔츠를 주로 입고 있었다. 바지와 셔츠 모두 판판하게 다림질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보이는 것에 신경 쓴 느낌을 받았다. 안경을 꼈고, 머리가 벗어지진 않았지만, 머리숱이 얇은 것으로 보아 기초대사량 즉 평소 활동량은 적어 보였다.


   매일 오후에 출근하고 단정한 옷차림으로 사람을 상대하며 퇴근 시간이 10 시인 직업이 뭘까 생각을 해봤다. 입시학원의 야간수업은 10시까지로 제한되어 있기에 앞에 나열한 정황들을 조합해 봤을 때 이 사람은 학원강사라고 일단 추정했다.


   그렇게 예상도를 그리다가 어느 날 그 남자가 아파트 후문에서 00 수학학원 학원버스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학원 강사로 확신했다.ㅋㅋㅋ


   여자도 비슷하게 살집이 좀 있는 편이다. 마찬가지로 햇빛을 전혀 보지 않는 사람처럼 피부가 하얗다. 3년째 살면서 저 여자가 밖에서 걷는 것을 딱 한번 봤다. 그것도 여름 예닐곱 시쯤의 밝은 초저녁이었다.


   어쩌다 집으로 들어가는 때가 겹쳐서 같이 엘리베이터를 탄 적이 있다. 여자가 통화하는 것을 우연히 들었는데, 말을 다소 거칠게 내뱉는 습관이 있어 보였다.


   방에서 자려고 누웠을 때 아랫집의 부부싸움 소리가 가끔 들리기도 하는데 여자는 까시러 지게 소리 지르는 파이터 형이고, 남자는 조근조근 화를 내는 편이다.


   개 산책도 주말에 남자 혼자서 하는 것만 봤다. 여자는 좀 쎄보이고, 남자는 좀 샌님 같다. 관상도 대략 그렇다.


   여자는 원피스로 몸을 가리는 옷을 주로 입는다. 여름에는 방패연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종아리와 발목이 굵다. 움직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유형 같다.


   여자도 비슷한 시간에 남자와 같이 출근을 하지만, 초저녁에 들어온다. 같이 차로 출근하고, 여자가 차를 가지고 먼저 들어오고 남자가 늦게 학원차를 타고 오는 것으로 보아, 여자는 초등부 강사일 거라 추정하고 있다. 초등부 수업은 일찍 끝나니까.


   집에 둘 다 없는 오후에 개가 자주 짖고, 개가 짖지 않는다면 여자는 퇴근했다는 뜻이다. 아랫집개는 주인이 없을 때 계속 짖어대기 때문이다. 뭐 둘 다 밤 늦게 들어올 땐 계속 짖는다.


   언젠가는 둘 다 개를 놓고 여행을 갔는지 밤새 짖었던 때도 있었다. 둘 다 뭐 개를 저렇게 방치하는 걸 보면 딱히 키울만한 인간성은 없어 보인다. 개가 산책을 거의 안 하고 집에만 있으니 스트레스받아 짖어대는 듯하다. (엘리베이터에서 들었던 여자의 말투가 떠오른다.)


   아랫집 여자는 요리(음식)를 즐기는 편이다. 대략 8시에서 9시경이면 매일 달라지는 음식냄새가 올라온다. 음식 냄새(메뉴)와 조리 시간으로 보아 아래 아래층에 사는 노부부 일리가 없다. 70은 넘어 보이는 노부부가 와플이나 마라탕을 9시에 드실 일은 없지 않을까?


   물론 아래 아래 아래층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음식 냄새의 진하기를 생각해 볼 때 그 정도의 거리는 공기 중으로 확산되는 양이 많아서 우리 집 주방창문까지 두드리긴 어렵다고 생각했다.


   매번 요리가 달라지고, 냄새를 맡아봤을 때 요리실력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그렇게 그 시간대에 요리를 해놓고 10시 20분경에 남자가 들어오면 같이 늦은 저녁을 먹는 것 같다. 그렇게 늦게 먹고 활동량도 적으니 둘 다 통통하지. ㅋㅋㅋ


   아, 아랫집 덕분에 아시안컵 호주전에서 한국이 골을 넣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들은 안방에 TV가 있기 때문이다. 가끔 TV볼륨을 미친 듯이 크게 틀어놓을 때가 있어서 잘 알고 있다. 어쨌든 8강전 밤에 잠을 못 이루다가 새벽 4시가 되어 간신히 잠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까지 이들에게 관심을 두고 관찰하는 것은 이들이 싫기 때문이다. 개가 밤낮으로 짖고, 가끔 늦은 밤에 큰소리로 떠들고, 우리집까지 TV소리가 들릴 정도로 볼륨을 키우기 때문이다. (그럴 땐 아래 옆집에서 벽을 주먹으로 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등기부등본 떼어보니 세입자 같던데 거기 나온 집주인 주소로 연락해서 개 키운다고 꼰질러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렇다. 뭔가 발신인이 없는 편지 같은 거? 편지를 쓸 때 비닐장갑을 끼워야겠지? 지문 노출 안되게?


   ㅋㅋㅋ

   다음은 윗집 이야기를 써볼 생각이다. 참고로 윗집

남자는 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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