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컴의 면도날
나는 생각이 많다.
아니 생각이 길다. 한 가지 현상을 두고도 본능적으로 여러 개의 상황 시나리오가 출력이 된다. 그 출력된 시나리오를 가지고 사고실험하고 타당한 결론을 찾느라 긴 생각에 빠지곤 한다.
나의 선택이 가장 베스트이길 또 가장 높은 확률로 이뤄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빛과 그림자가 모두 있는 내 습성이자 직업병이기도 하다. 이것은 1인기업을 하는 나에게는 꽤 유용했고 또 불가피했다. 혼자서는 다각도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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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런 먹고사니즘의 기술적 측면에서는 이런 다양한 시나리오를 쓸 수 있는(예민하게 생각하는) 덕분에 20년 가까이 한 업종의 자영업으로 생존해오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사소한 부분을 수정했을 때 고객에게서 어떤 반향이 나올지에 대한 그런 예민함(시나리오)은 나의 능력부족을 '많이' 보완해 줬다고 생각한다. 분명 그걸로 먹고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그런데 내 사고의 과정은 복잡했을지 몰라도 대체로 인과관계나 발단에서 결말로 이어지는 전개는 매우 심플했다. 거의 대부분 본래의 이치나 본질의 방향을 따라갔다. 복잡 다단한 역학관계가 발생하는 듯 하지만 도미노처럼 다음 블록을 넘어뜨릴 뿐이었다.
이렇게 되면 어쩌나 걱정해 봤자 일은 무심히 진행되었다. 또 내가 얼마나 염원하든 간에 사건은 본질을 따라 흘러갔다. (내가 상상할 수 없었던 외부의 변수는 제외하고) 거의 그랬다.
그래서 '답은 다 내 안에 있다'고 하나 보다.
답은 자명하고 또 내 안에 있었지만, 선택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솔직히 이득은 취하고 싶으나 책임은 지기 싫고, 그 책임을 피하고 싶었거나, 더 나은 선택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에 실질적인 행동은 하지 않고 방치하고 우유부단한 스탠스를 취한 경우가 십중구십이었다.
오컴의 면도날
불필요한 복잡성을 제거하고, 간결하게 접근하는 것이 (확실은 아니지만) 주어진 조건에서는 가장 타당하다는 이론이다.
대체로 충분히 다음을 예상하고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처럼 (개중에는 한두 번 더 생각하고 디뎌야 하지만) 거의 모든 일들은 꽤 간결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돌아보면 그랬다.
미니멀한 생활을 실천한다지만 머릿속만큼은 전혀 미니멀하지 않아서 늘 아쉬움이 있었다. 이 이론은 나의 과잉사고에 따른 불안감을 꽤 잠재워 주었다. 그래서 요즘은 머릿속이 전보다 간결하고 명료해졌다.
앞으로는 다각도로 살피되 짧게 끝내고, 매사에 간결하게 접근하기로 다짐했다. 갈팡질팡 해봤자 징검다리 사이에서 물에 빠지기나 할 거 아닌가. 심플하게 폴짝 건너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