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미스트 Aug 12. 2024

교양 있게 ‘지랄’하는 법

    화가 난다.

   지금 내 화를 어떻게든 뾰족하게 만들어서 저놈이 제일 아파할 부위를 정확히 맞춰야 하는데 몹시 흥분하다 보니 제대로 던져질라나 모르겠다.


   누구는 용서가 최고의 복수라던데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상대가 적어도 나만큼은 아프거나 불편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다.


   그런데 딱 적당히 되기가 쉽지 않다.

   흥분한 상태에서는 뭐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그래서 좀 부족한 것 같으면 여전히 약이 오르고, 좀 과하다 싶으면 또 미안한 마음도 들고 체면도 생각난다. 그래서 또 짜증이 난다.


   그래서 용서가 쉽다고 하는 건가?

   저 놈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다 보면 서로의 이익이 공존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마땅히 내가 누려야 할 이익과 즐거움이 침해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화가 나고 때로는 싫은 소리를 한다. 그리고 사이다 같은 복수를 떠올리기도 한다.


   이 '사이다 같다'는 말은 꽤 적절한 비유다.

   사이다는 꿀꺽꿀꺽 마실 때는 좋지만, 시간이 지나면 입안에 갈증이 남기 때문이다. 사이다 처럼 속이 시원한 말은 나중에 불편한 갈증이 남는 것 마저도 닮았다.


   그렇다고 지랄을 안 하자니 내 속이 타고, 지랄을 하자니 적당히가 안된다.


   어떻게 지랄을 하면 좋을까?


   뭐, 나라고 뭐 성인군자겠나?

   부끄러운 기억은 얼마든지 많다. ㅋㅋㅋ 나 같은 어리석은 자는 그런 부끄러움 속에서 얻어맞으며 배워야지 어쩌겠나? 나는 갈등상황 속에서 서투른 감정표출로 한두 번 망한 게 아니다.  


   나는 상대의 교양 있고 세련된 대응을 당할(?) 때 부끄러워진다. 특히 나보다 어린 사람들의 그런 '교양 있는' 뭔가 '정제된 표현으로' 상황을 정리당할 때 더 큰 수치심을 느낀다. 나는 이 나이 먹도록 도대체 뭘 배운 건가 싶어서 말이다.


   한 예로 나보다 열 살은 어린 B사장은 "뭐라고 답을 드려야 할지 몰라서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했다. 맞다. 상대의 불편한 말에 반드시 대답을 할 필요도 없거니와, 나에게 답할 가치가 없었다는 메시지도 던졌고, 답하지 않은 것을 무례함이 아닌 자신의 부족함으로 돌려버리는 그의 센스에 나의 뒤통수는 아직도 얼얼하다.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어린 친구에게 내가 뭐라고 할 건가. 그는 내가 몰리는 코너를 아는 거다. 내가 맞고 틀리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의 세련된 풋워크는 흥분한 나를 코너로 몰았고, 결국 KO를 이뤄냈다.


   연예인들 중에서도 꽤 이름값이 높은 연예인들은 구설수에 쉽게 아니 끝까지 반응하지 않는다. 대개는 무대응으로 일관하거나,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방향을 선택한다. (억울하지만) 말을 꺼내면 꺼낼수록 부유물이 가라앉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릴 뿐이기 때문이다.


   또 어설프게 반응해 봤자 아니 어떻게 반응을 해봤자 현란한 풋워크로 자신을 코너로 몰 수 있는 인간들은 그들의 인기만큼이나 세상에 널렸기 때문이다.    

폰주인은 다른 테이블에 있다. 1.그냥 폰을 옆에 치우고 앉는다. 2.앉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앉는다. 3.여러 테이블 차지하냐고 한마디 한다. 4. 다른 자리를 찾는다.

   살다 보면 지랄을 하게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참으려고 했다가도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나는 지랄을 해버렸다. 사이다를 마신 거 마냥 잠시 시원했다가 찝찌름한 갈증을 느껴야 한다.


   얼마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고, 지금도 불편한 갈증을 느끼고 있다.


   46년을 살았어도 발전이 없는 걸 보면 나는 그 B사장처럼 교양 있고 세련되게 지랄하긴 글렀다. 어렵다. 나라는 인간한테는 숙달되기 어려운 방법이다. 아니면 그런 기질이 나의 유전자에는 없나 보다.


   그래서 나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 걸 선택하기로 했다. 일단 흥분한 상태에서는 뭐든 적당히 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또 노련한 상대를 만나서 그의 비장의 세련된 풋워크에 또다시 코너로 몰리고 싶지 않다.


   꼭 상대의 말에 전부 답을 해야 할 이유도 없고, 감정의 부유물이 좀 가라앉은 다음에 응해도 늦지 않는 일이라면 일단은 무대응이 나 같은 사람에게는 더 쉬운 방법일 것 같다. 근지러운 입을 닫아야 하는 참을성을 좀 길러야겠지만 말이다.


   아이씨, 인생 뭐 이렇게 복잡하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