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크아웃 코리아
"이거 중요하다."
학창 시절 선생님들은 이런 말을 자주 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과학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중요한 게 아니라 '시험에 나오기' 때문에 중요했다. 그렇게 시험 출제가 유력시되는 부분들은 일단 '중요하다'고 별표를 쳤다. 어떻게 꼬아서 낼지 걱정 또는 대비를 하면서 말이다.
한국의 교육은 꽤 어긋나 있다.
사실과 원리 등을 배우는 '시늉'을 하지만 모든 것은 평가로 귀결된다. 평가를 잘 받아야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대학에 가야 대기업 취업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평가를 잘 받는 게 최우선이 되었다.
그래서 공교육은 평가의 장이 되어버렸다.
사교육의 공략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사들은 문제를 더 꼬아내기 시작했고, 그런 공교육을 사교육이 다시 파훼한다.
그런 공교육과 사교육의 엎치락 뒤치락의 결과는 괴물이 되어버린 '내신과 수능'이다. 어디서 어떻게 비틀어낼지 모르기에 아이들은 '중요한' 것들을 일단 달달 외우고 다양한 괴물(변형 문제)을 철저하게 대비시켜 줄 학원을 찾는다.
고속성장기의 대한민국은 부족한 인력충원을 위해 똑똑하고 성실한 순서가 필요했다. 그래서 입시가 중요했다. 하지만 최근의 대기업은 그때만큼의 무분별한 인력수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소수의 경력직 상시채용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제는 좋은 대학에 갔다 해도 양질의 취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 하지만 대안이 없다. 있다 한들 여전히 주류에서 벗어난 길을 선뜻 선택하기 어렵다. 그래서 '남들 다하는' 관성을 따를 수밖에 없다.
사교육은 끊을 수 없고, 물가는 복리로 오르고, 급여인상은 더디고, 부동산 (구매든 임대든) 비용도 증가하니 가처분 소득이 준다. 이미 정년 보장은 없는 세상이고, 희망퇴직시기는 빨라지고, 경기는 둔화된다.
헌법 위의 국민정서법
대기업의 확장을 막은 정책
그래서 소수만이 들어갈 수 있는 대기업
취업 경쟁
고용 불안정
그래서 입시 경쟁
수도권 집중
그래서 집값 상승
가족수 증가 = 탈 서울
출퇴근 시간(스트레스) 증가
그래서 결혼 기피, 출산 기피
인구 감소
노년 인구 증가
생산인구 감소
경기 둔화
청년 실업률 증가
노년층 부양비용 증가
불균형 심화
양극화 심화
사회적 갈등과 대립 심화
변질된 공정
그리고 아마도 스태그플레이션
고려거란전쟁을 보며 실제 적은 거란이 아니었음을 느꼈다. 견고한 기존의 내부 질서와 이해관계가 실제의 적이었다. 그래서 위기 대처의 타이밍을 놓치고, 바닥을 치고, 희생과 피해가 극대화되고 나서야 기존 세력의 명분과 힘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수천 년의 역사, 언제나 그랬다.
과거에도, 지금도 그렇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특히 한국이라는 나라는 타인의 시선, 그놈의 명분, 체면 등이 너무나 중요한 나라라서 실리적인 선택보다 폭발하는 민심을 잠재우기 위한 '국민 정서법'이 언제나 우선이다.
실패에 대해 백서를 만들고 차분하게 학습하기보다 비난과 사회적 매장으로 회생불가능하게 '조져버린다.' 그래서 실패를 통해 무엇을 학습했는지 그것으로 어떻게 더 나아졌는지가 아닌 실패 없는 완전 무결한 사람만을 찾는다.
실패를 용인하고 학습을 하지 않으니 변화하는 세상에 맞는 의견을 내는 사람은 언제나 '조져진다.' '첫판부터' 대성공이 아니라면 그 또한 '조져진다'. 누가 그렇게 되고 싶을까? 그래서 대개 '욕먹지 않는' 기존의 질서를 따르는 사람이 점점 위로 간다.
이것은 무경험자가 '실패해 본 적 없는 완전무결한 능력자'가 되어 정치인이 되기도 한다. 실패를 통한 학습의 결과를 분석하기보다 흠결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사회, 최악과 차악을 가리는 수준의 판단을 하는 국민 수준이다.
모든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
- 프랑스 정치학자 J 메스트르 -
득표와 당선으로 생명줄을 이어가는 정치구조는 '코 앞만 내다보는' 목소리 큰 인간들에게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다. (지도자 탓을 할게 아니라 국민의 수준을 안타까워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어느 조직에서나 새로운 시도보다 안정적인(?) 관례를 좋아하고, 기존 질서의 이익을 얻고 있는 사람은 그동안 축적해 온 힘으로 변화를 막는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말하면서.
주호야, 너는 감독을 안 해봐서 그래.
- 대한축구협회 아무개 위원 -
사업을 하고 또 테크업계에 오랫동안 투자를 하면서 관찰하고 있는 점은 한국은 점점 '갈라파고스화'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의 흐름과 한국은 서로 엇박자가 난 지 오래다. 정치인은 반대를(득표를) 위한 반대를 하고, 언론은 광고주가 지향하는 바에 따라 지지하는 정치성향에 따라 기가 막힌 프레이밍을 한다.
세상이 망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바닥을 치고 유혈이 낭자하면 기존의 방향성은 동력을 잃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 안에서 나는 내 가족이 희생되지 않도록 배우고, 냉정하고, 강해져야 할 뿐이다. 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