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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스트 Jul 05. 2024

공유 ‘움막’

공유오피스

   남자들에게는 움막이 필요하다.

   아주 낡고 허름한 움막이어도 괜찮다. 폐가 수준이어도 된다. 문이 없으면 구해 달면 되고, 빛이 들어오지 않으면 일단은 촛불로도 지낼 수 있다. 추우면 어떻게든 불을 피울 것이고, 더우면 찬물 샤워를 하고 모기장 속으로 숨을 것이다.


   황소바람이 들어오는 곳을 샅샅이 찾아 틀어막고, 비가 오면 새는 곳을 어떻게든 덮을 것이다. 일단은 오늘을 어떻게 넘기고 차차 고쳐나갈 것이다. 하나둘씩 고치다 보면 머지않아 꽤 쓸만한 지낼 곳이 된다.


   실내는 환해지고, 따뜻해지고, 시원해지고, 바람도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물고랑을 잘 내면 비가 많이 와도 물이 차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점점 다시 오고 싶어지는 곳이 된다.


A do come come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이런 움막

   왜 필요할까?


   마음이 지낼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든 남자가 반드시 저런 움막을 콕 짚어 원한다고 할 순 없지만, 자기만의 공간이라면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이런 곳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20대 나에게도 로망 같은 게 있었다.

   나중에 독립을 했을 때의 나만의 희망사항 같은 거랄까? 노트 한 페이지를 꽉 채웠던 것 같은데 기억에 남아있는 건 이 정도다.


1/ 슬리퍼 신고(이 때는 슬세권이란 표현이 없었지만) 맥주와 담배를 즉시 사러 갈 수 있는 근처에 편의점이 있는 오피스텔

2/ 차로 20~30분만 달리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노지 낚시터(취미 공간)

3/ 연비 좋고 공간 넓은 수동변속기 왜건 자동차(이동 공간)

4/ 실감 나는 영화감상을 할 수 있는 보스 서라운드 시스템이 되어 있는 방


   나는 저런 걸 꿈꾸다 전 여자 친구에게 정신을 잃고(?) 결혼을 했다. ㅋㅋ


   지금?

   술담배 안 한다. 낚시 안 간 지 오래다. 세단 탄다. 그리고 서라운드 시스템은 무슨 거실에서 조용히 아이패드로 조용히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단독 생활을 접고 단체 생활(?) 한다. 아들방, 침대만 있는 안방, 옷방 그리고 거실에는 와이프 책상과 아들 책상, 나는 식탁에 있다. ㅋㅋ


   아빠의 주요 서식지는 소파라지만 우리집은 소파도 없다. 그렇다고 뭐 지금이 싫거나 그런 건 아니다. 제대로 된 가구 등은 자가로 정착하면 사기로 했다. 하지만 나만의 움막에 대한 필요성을 점점 더 깊이 느끼는 중년의 남자다.


   그래서 내 또래의 남자들이 캠핑, 차박, 캠핑카, 세컨드하우스 등을 찾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비가역적 비용이 일시불로 너무 많이 든다는 점에서 불편하게 느껴진다. 그러다 질리면 어떻게 하나, 거의 다 매몰비용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런 것들에는 딱히 끌리지 않는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에게도 움막은 있다.


   이른바 공유 움막, 카페다. ㅋㅋ

   평일 오전 3천 원 아메리카노 한잔이면 몇 시간이고 창가에 앉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움막에 있다. 커피도 있고, 음악도 있고, 적당한 백색소음도 있다.


dog honey


   밖에 비바람이 불고, 춥고, 또 아무리 더워도 여기 관리인은 움막을 아주 쾌적하게 세팅을 이미 해놓았다. 나는 예약도 없이 가볍게 와서 책을 보고, 글도 쓸 수도 있고, 심지어 영화를 볼 수 도 있다. 내 물건만 챙기면 언제든 떠날 수도 있다.


   역시 카페는 초단기 부동산 임대업이다.

   계약서 도장 꽝꽝도 필요 없고, 내가 청소할 필요도 없고, 냉난방을 어찌할 일도 없다. 3,000원이면 된다. 오늘은 왠지 이 움막이 질리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움막으로 가면 된다. 대한민국은 커피 공화국이다.


   WeWork 같은 공유오피스와 비슷하다.

   이용료는 저렴하고, 관리도 알아서 해준다. 거기서 톱질할 것도 아니고, 노래를 부를 것도 아니다. 그저 책 보고, 글 쓰고, 영화나 좀 볼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카페는 나에게는 딱인 움막이다. 물론 여럿이서 써야 하는 공유 움막이긴 하지만. ㅋㅋ


   은퇴를 하면 이렇게 근처 카페를 골라 다니며 오전 시간을 보내고 싶다. 이렇게 여유 있게 글도 쓰고 말이다. 캠핑이나 차박이나 세컨드하우스보다는 훨씬 싸고 관리할 일도 없고 편리하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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