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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스트 Jun 28. 2024

앗싸, 화장지 받았다.

   요즘은 아침 메뉴가 좀 바뀌었다.

   바뀌었다기보다 보완되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기존의 벤나주스(사과, 당근)에 블루베리와 아보카도 그리고 아몬드우유(아몬드브리즈 언스위트)를 첨가했다. 그러다 보니 하루가 멀다 하고 우유팩이 나온다.

웬 떡이냐

   매일 저녁 설거지를 마치면 싱크대에 있는 우유팩을 잘라 씻은 다음 이렇게 건조를 한다. 그렇게 하나둘씩 모인 우유팩은 어느덧 큰 비닐팩 하나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지난주에 와이프와 주민센터로 가서 두루마리 화장지 하나로 바꿔왔다.


   우유팩 잘라서 씻어 말리는 일이 성가시기도 하지만 아까운 자원이 그냥 버려지는 것이 아쉬워서 잘 모아서 갖다 줬는데 두루마리 화장지를 하나 주니 국민학교 때(나는 국민학교를 나왔으므로) 선생님께 포도알 받는 것 마냥 기분이 좋았다. 


   우유팩 1kg에 두루마리 화장지 하나인데, 주민센터에서 무게를 재어 보니 1.2kg가 나왔지만 나에게는 아까운 자원 재활용을 위해 모은 것이기에 초과된 200g도 기쁜 마음으로 놓고 나왔다.


   이런 소소한 일상이 재미있다.

   방금 전에도 아침 먹은 그릇 설거지를 뽀득뽀득 씻어서 건조대에 레고 조립하듯 잘 끼워 세웠다. 건조대 물 받침에 생긴 물때도 싹싹 닦아서 다시 끼우고 건조대 아래에 있는 먼지와 물기도 핸드타월로 사악 닦아 마무리한다. 


   가득 쌓인 빨래 바구니를 세탁기에 넣고 돌리는 일, 세탁된 빨래를 건조기에 넣는 일, 건조기를 돌리기 전에 필터망을 깨끗이 청소하는 일, 건조된 빨래를 거실에 우르르 쏟아내는 일. 빨래를 개는 건 하지만, 서랍에 분류하기를 싫어하는 마누라를 대신해 서랍장에 촥촥 넣는 일. 


   아, 그런데 이 서랍장에 넣는 일은 와이프가 거실에 없을 때 해야 제맛이다. 그래야 다 치워진 거실을 보며 좋아할 와이프를 생각하면 나도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와이프는 내가 하기 싫어하는 청소기와 물걸레질을 착착한다.


   아이의 방학이 시작되면 엄마들의 스트레스가 시작된다. 마찬가지로 남편의 방학(은퇴)이 시작되면 또 와이프들의 스트레스가 시작된다. 어린 '방학깨비'들ㅋㅋ 거둬먹이는 것도 힘들었는데, 전보다는 쓸모없어진(?) 남편의 어슬렁거림이 거슬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방학이 시작되면 집에서 당당하게(?) 어슬렁거리기 위해 미리부터 집안일을 한다. ㅋㅋㅋ 그런데 다행히 와이프도 내가 이 정도만 한다면 그렇게 거슬리지는 않을 거 같다고 한다. 휴~ ㅋㅋㅋ


   남자들은 주로 바깥 일을 한다.

   그러다 보니 늘 돈이 되는 일, (돈으로 환산될) 성과로 인정받는 일, 그래서 그런 명예 같은 것이 뒤따르는 일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이런 돈으로 환산되기 어려운 집안일은 별거 아닌 것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있다. 


   지난번에 썼던 글에 댓글싸움이 이어졌다.

   남자가 하는 일은 얼만데, 여자가 집에서 하는 일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댓글에 대댓글이 달렸다.


   집안일에 대한 가치관 차이처럼 보이지만, 사실 돈에 대한 가치관 차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돈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의 차이다. 


   돈, 필요하고 중요하다.

   근데 사람의 정성과 관심과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지 않을까? 


   돈을 내면 받을 수 있는 서비스와는 다르다. 

   서비스는 편리해서 좋지만, 정성과 관심과 사랑은 편안함을 준다. 사람은 불편해도 살지만, 불안함으로는 온전히 살기 어렵다. 물론 편리함을 마다할 이유가 없겠지만 굳이 선택하라면 우선순위가 그렇다.


   사회는 개인에게 성과와 성공과 명예를 추구하라 하지만, 은퇴한 분들의 글을 보면 현역 때의 사고방식에서 자신의 쓸모를 찾던 분들은 인생의 방학이 시작되고 힘들어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래서 그 지혜를 여자들에게서 배운다.

   출산과 동시에 계급장(경력)을 내려놓고, 일상의 소소함을 '견디며' 또 주어진 삶에서 슬기롭게 재미를 찾는 그런 모습 말이다.  내 작가명이 재미스트이지만, 진짜 재미스트는 아무리봐도 와이프인 것 같다.


   두루마리 화장지 하나.

   재미있다. ㅎㅎ 나의 또 다른 우유팩과 두루마리 화장지는 어디 있을까? 그걸 찾아봐야겠다. 아, 2년이 넘도록 쓰고 있는 이 브런치 글쓰기도 나의 우유팩이구나. 이 글로 브런치 우유팩 164개 모았다.


https://brunch.co.kr/@jaemist/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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