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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스트 Jun 29. 2024

나는 무슨 ‘싸움’을 해왔나.

   "00아, 잘 지내니? 어쩌구 저쩌구"


   와이프는 모르는 번호로 문자를 받았다.

   전날 저녁에 지나가는 우리 부부를 봤는데 아는 척을 못했다며, 오랜만에 연락을 한다는 문자였다. 와이프는 누구냐고 물었고, 상대는 00언니라고 답을 해왔다.


   한때 가까웠던 사이였지만 그녀는 '나르시시스트'라 와이프가 몇 년째 멀리하다 기억에서도, 전화번호도 지웠다. 와이프는 오래 연락하지 않는 사람은 번호를 지운다는 답을 했고, 웬일인지 상대는 전과는 다르게 예의를 갖추는 느낌이었다.


   와이프는 별로 탐탁지 않아 하며, 문자 대화를 적당히(짧게) 마무리했다.


https://brunch.co.kr/@jaemist/553


   지난 글에서 나는 가까운 친구와 연락을 끊고 지낸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직 그에게 연락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와이프가 뜬금없는 연락에 반가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니 혹여나도 그 00언니처럼 여겨지는 건 아닌지 머뭇거리게 된다.


   어쨌든 친구의 근황을 엿보다 문득 고등학교 동창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져서 동문 연락처 명부를 꺼냈다.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카톡 프로필에 뜨는 그들 역시 얼굴만 익숙하고, 배경은 모두 낯설었다.


https://brunch.co.kr/@jaemist/28


   나는 명문고 실패자다.

   졸업한 지 30년이 다되어 가도록 여전히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다. 나는 와이프와 아이를 위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돌이켜보면 마음 깊은 한 켠에는 언젠가는 그들을 이겨버리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고 싶은 마음.

   사실 우월감도 열등감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나에게 이기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건 여전히 나에게는 열등감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 나에겐 열등감이 있다.


   어쨌든 동기들 전화번호를 하나하나 입력하며, 어떻게들 지내는지 봤다.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시절 내가 그들에게 느꼈던 그들의 '우월함'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우월함이라기보다 뭔가 나보다 훨씬 커 보였던 동기들이 예전만큼 커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작아 보이는 애들이 더 많았다.

   나한테 그 따위로 말하고 무시하더니 '고작 그렇게 살고 있냐'는 생각도 들었다.


   좀 허무했다.

   물론 마흔여섯의 나이가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긴 하지만, 다들 애쓰며 살고 있는, 사느라 정신없는 그렇고 그런 중년의 모습들이었다.


   이제는 그 학벌이, 그 직업이, 그 일이 전부가 아니고, 어떤 애로사항이 있는지도 알고, 또 다 거기서 거기라는 걸 잘 알고는 있었지만, 나보다 '커보였던' 그들은 여전히 '나보다는 클 거라는' 막연한 상상을 해왔던 것 같다.


   그동안 허공과 싸움을 해온 기분이다.

   그들은 그런 말을 그런 행동을 한 기억조차 없을 텐데 나만 허공에 주먹질을 해온 것이다. 물론 복수의 칼날을 갈며 와신상담처럼 하루하루 살아온 건 아니지만, 오랜 기간 쓸데없는 마음 낭비를 해왔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지옥이 있다."

   <짜라투스트라는 말했다>


   나의 지옥은 열등감이다.

   그리고 우월감도 나의 지옥이다. 그래서 열등감뿐만 아니라, 우월감을 느낄 때도 '내가 또 내가 만든 지옥에 빠졌구나' 생각하기로 했다.


   몇 년 후면 모교 홈커밍데이가 있다.

   졸업 30주년에 학교에 방문하는 행사다. 그때가 되면 나도 50이다. 예전에 선배들 홈커밍데이 하는 거 보면 다들 헐렁헐렁한 아저씨 아줌마들이던데, 내 동기들은 다들 어떻게 변해있을까?


   글을 쓰는 지금 내 지옥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그때 그건 더 이상 내 지옥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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