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콩팥팥
간만에 보는 넘집 자식들은 우후죽순 마냥 쑥 커있고, 군대 간지도 몰랐는데 제대했다 하고, 엊그제 임신했다고 한 거 같은데 벌써 애가 걸어 다니는 거 보면 남의 일은 참 금방금방이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나를 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살이 왜 그렇게 많이 빠졌냐고 묻는다. 나는 꾸준히 조금씩 조금씩 빠진 것 같은데 말이다.
85kg (그 이상도 잠깐 있었지만)에서 현재는 72~3kg대를 유지하고 있다. 매일 아침 러닝한다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의 몇백 미터 달리기만을 꾸준히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밖으로 나간 것 밖에 없다.
요즘 다시 아들과 함께 달린다.
아들의 달리기는 방학 매뉴얼이었지만, 요즘에는 학기 중에도 달린다. 3월 새 학년이 시작되고 방학 동안 비축해 둔 에너지가 어느새 바닥이 났기 때문이다.
7시에 일어나 학교 가기 전에 한바탕 달리고, 층계로 10여 층을 걸어 올라오면 땀이 주르륵 흐른다. 시원하게 샤워 한바탕하고 나와 '어, 시원~하다'고 말한다.
달리니 배고프단다.
배고프니 꿀맛 같은 아침을 와구와구 먹고, 씩씩하게 학교에 걸어간다.
사춘기 아들.
중2 아이들이 득실대는 학교에서 중2 아이가 마음 편할리는 없다. 아침 달리기/샤워 루틴을 두 달 여가 지나고 있는 요즘엔 '학교 생활이 할만하다'에서 어느새 '재미있다'는 말로 변하가고 있다.
요즘은 친구들과의 갈등 상황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처세(?)도 전보다 향상된 것 같았다. 전보다 더 쾌활하고 씩씩해졌다.
고민이라서 고민이 아니었다.
자신의 에너지 레벨이 낮으면 모든 게 고민으로 느껴진다. 아들도 확실히 에너지 레벨이 올라가니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듯 어지간한 것들은 자잘하게 보이는 모양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인과관계만을 말하는 속담인 줄 알았는데 그것만이 아니었다.
오늘 심어도 몇 달이 지나야 나온다는 거다.
내일 심은 콩은 오늘 심은 콩이 나온 다음 날에 나온다. 그렇게 하루하루 콩 심고 팥 심은 게 쌓이다 보면, 몇 달 뒤에는 매일 콩과 팥을 수확한다. 한때 유행했던 적금 풍차 돌리기처럼 말이다.
아들은 여전히 매일 콩을 심고 있다.
요즘은 초반에 심었던 것들을 수확도 하고 있다.
사춘기 아이를 키운다는 건 아마도 이렇게 매일 콩을 심고 수확하는 재미를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몇 달 뒤에 나오는 콩, 몇 달 뒤에 나오는 팥, 몇 년 뒤에 과일이 열리는 나무, 몇 년째 뿌리만 뻗다가 어느 날 하루에 30cm씩 솟아오르는 대나무.
와이프와 나는 자식에게는 좋은 습관만을 남겨줄 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언젠가 우리는 아이 곁을 떠나지만 좋은 습관만큼은 남아서 아이를 지켜줄 것이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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