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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스트 Sep 04. 2024

기분 ‘오지’는 뛰르가즘

무라카미 이틀키, 슬로우 조깅

   아침에 눈을 뜨고 창 밖을 확인한다.

   멀리 보이는 저 산이 얼마나 선명하게 보이는지가 오늘 아침 공기질의 척도이다. 요즘은 산이 너어무 잘 보인다.


   드디어 9월이 왔다.

   도무지 올 것 같지도 않던 9월이다. 매끄럽게 가을로 바뀌어가는 요즘 날씨와 기온 변화는 마치 노련한 음악가의 변주를 듣는 것만 같다.


   그래서 요즘 달리기는 그야말로 축복 같다.

   이런 날씨는 봄에 잠깐 그리고 가을에 잠깐이다. 와이프가 이때 아니면 못 먹는다는 그 제철과일의 짧은 시즌에 열광하듯 나는 이때를 더 누리기 위해 빠뜨리지 않고 달리고 또 틈나는 대로 걷는다.


   한 번은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라와 참기 힘든 적이 있었다. 그때 저 멀리 쭉뻗은 길이 우회전으로 꺾이는 그 지점까지 냅다 달렸다. 숨이 점점 차오르고, 발 하나하나 바닥에 내딛느라 저 멀리 들쑤시고 다니던 분노의 마음은 계속 발 디딜 곳을 신경 쓰느라 서서히 제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방금 전까지 걸리기만 하면 귀퉁배기를 한대 후려칠 것만 같던 화난 고릴라는 한바탕 달리고 숨을 고르는 눈이 예쁜 말로 변해있다. 그래 별거 아니었지. 들끓는 속을 맑은 공기로 토렴을 했더니 뜨거웠던 속이 식었다. 그래 그거 별거 아니었어.




   ‘킬로미터당 00분’

   달리기 하는 사람들이라면 스마트 워치에서 알려주는 저 페이스에 귀를 기울이고 저 숫자로 서로의 실력을(페이스를) 말하기도 한다.


안스마트워치 기능 : 부딪혀도 안부서짐 그래서 심장 떨리지 않음, 알람, 스톱워치, 야광, 아주 아아주 오래가는 배터리


   그런데 나는 모른다.

   나의 안스마트워치는 나의 페이스를 읽지 않기 때문이다. 뭐 가뜩이나 하는 일도 온통 수치화에 통계인데 취미로 하는 일의 숫자 정도는 몰라도 괜찮다.


   뛰는 게 중요하다.

   오늘 아침에도 밖에 나가 햇빛을 봤는지만 생각한다. 내가 어지간히 달릴 수 있는 거리의 절반 이하로만 그것도 걷는 속도로 달린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걷는다.


   마치 속도계에 찍히지도 않는 유희관의 공처럼 킬로미터당 몇 분을 거론할 수도 없는 굉장히 느린 속도다. (그런데 그 느린 공도 상당한 마구다.) 그래도 효과는 꽤 봤다.


85 → 70

   체중 감량은 둘째 치고, 달리고 나면 보람 있고 뿌듯해지는 그 달린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뛰르가즘’이 좋다.


   누구는 러너스 하이 runner's high를 말하던데 그렇게 고통이 승화되는 수준까지는 달리고 싶진 않고, 나 자신을 이기고 싶지도 않고, 타인과 경쟁하고 싶지도 않고, 적당히 대애충 하지만 꾸준히면 만족한다.


   그러고 보니 달리기에 대한 글이 반복된다.

   취미라고 해봐야 달리기와 글쓰기가 전부니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보면 역시 작가는 작가다.


   한마디로 요약될 말을 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표현력으로 길게도 늘려 책 한 권을 써놓았다. 이런 걸 솜사탕 같은 글솜씨라고 하던데 ㅋㅋ 어쨌든 그에 대한 평가는 아니고 감탄이다. 정말 대단한 작가다.


   나도 뭐 달리기와 글쓰기를 즐길 뿐이다.

   그냥 마음에 드는 글이 완성되면 좋아한다. 이번 글은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뭐 괜찮다(할 수 없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니다. 무라카미 이틀키 정도? 음 사흘키?? ㅋㅋ 별명을 바꿔볼까?ㅋㅋ




   다시 돌아와서 아침에 뜨는 가장 신선한 햇빛, 다른 사람들이 입대지 않은 깨끗한 공기를 내 몸 가득 채워놓고 시작하는 하루는 좋지 않을 수가 없다.


   어쨌든 달리자.

   요즘은 공기가 아주 제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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