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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스트 Aug 23. 2024

노래 급식 또는 오마카세, 라디오

선택하지 않을 것을 선택한다.

   시동을 걸어 차를 깨운다.

   내 차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이소라의 목소리로 채워지며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온다. 라디오에 흘러나오는 노래는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오래전에 좋아했던 노래였다. 노래가 끝났고, 짧은 정적 뒤에 나올 DJ의 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운전에 쓰고 남는 신경을 귀에 모은다.


   "이소라의 더위, 들으셨습니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오늘 대타로 나온 스페셜 DJ 김소현 님이 노래의 제목을 말했다. 반가웠다. 오래전 친구의 이름이 가물가물 기억나지 않다가 번뜩 떠오른 것처럼 말이다.


   라디오에서 틀어주는 노래는 학교 급식 같다.

   지금 내 기분이나 차창 밖 풍경과 어울리는 기막힌 선곡이 이어질 땐 또 오마카세 같기도 하다.


   급식 메뉴는 늘 마음에 들진 않지만 또 그렇게 나쁘지만도 않다. 나는 미식가처럼 매일 같이 뭘 먹을지(뭘 요리할지) 고민하기를 즐기는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자기 결정권이 있다는 건 중요하다.

   그런데 너무 잦은 결정에 나는 피로감을 느낀다. 인간은 가뜩이나 하루에 150번의 선택을 계속한다는데, 나는 결정 피로를 많이 느끼는 편이라 최대한 줄이려고 한다.


https://brunch.co.kr/@jaemist/11


   요즘은 여름에 입을 옷을 입고 있다.

   상의는 흰 티에 통 넓은 검정바지를 입는다. 와이프는 컴싸 패션(컴퓨터용 싸인펜)이라고 부른다. ㅋㅋ


   가을옷은 선선해지기만을 바라며 서랍 속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다. 가을옷에 덧입을 경량패딩 조끼와 점퍼 그리고 무적 롱패딩은 행거에서 다음 순번을 기다린다.


https://brunch.co.kr/@jaemist/215


선택하지 않을 것을 선택한다.


   선택을 하지 않는 것도 꽤 괜찮다.

   다시 노래이야기로 돌아오면, 나는 그래서 라디오를 즐겨 듣는다. 그래서 유튜브 뮤직이나 애플 뮤직 같은 음악구독은 하지 않는다.


   음악 구독은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좋지만, 썩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십중팔구 첫 소절만에 넘기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나는 익숙한 것만 늘 듣고 있다.


   나는 고수의 그 화학약품 같은 향에 도무지 적응이 안 되었다. 세 번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리고 잊고 지내다 어느 날 갑자기 그 고수가 생각났다.


   그렇게 네 번째 시도 만에 '갑자기 정말 불현듯 이상하게 신기하게' 고수 혐오자에서 고수 러버로 당적을 바꿨다.


   몇 번을 참고 먹어본 게 지금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노래처럼 낯설다는 이유로 스킵했다면 나는 이 마성의 고수 맛을 평생 모르고 살았을 거다.


   라디오에서는 모르는 가수의 모르는 노래를 들을 기회가 생긴다. 때로는 오늘같이 잊혀진 노래를 찾아주기도 한다. 나는 주방장이 알아서 수산시장에서 오늘 물 좋은 놈을 떼어오듯, 라디오 DJ를 믿고 맡기면 된다.


   급식도 그렇고, 라디오 노래도 그렇고 우리는 좋아하는 것만 골라서 가질 순 없다. 좋은 것만 주지도 않지만 지나고 보면 또 싫은 것만 주지도 않는다. 어차피 먹어야 할 급식이라면 나오는 대로 감사하게 먹고 듣는 거 그것도 나쁘지 않다.


   맛없는 음식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음식도 나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거다. 인생의 영양사님이 또 DJ님이 어련히 알아서 해주셨을까?


   반찬 투정하지 말고 그냥 먹자.

   기왕이면 맛있게 먹자.

   그러면 지금부터는 급식이 아닌 오마카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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