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 금주, 금커
"그걸 다 끊다니 대단하다."
"넌 그(좋은)걸 어떻게(왜) 끊었니?"
가끔 듣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내가 의지력이 매우 강한 줄 안다. 그래서 술과 담배뿐만 아니라 커피마저 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반대다. 나는 매우 의지가 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끊을 수 있었다.
'적당히'와 '꾸준히'
세상에서 제일 하기 힘들다고 느꼈던 것들이다. 적당히 술도 마시고, 하루에 담배 서너 개비 정도만 피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 생각만 해도 좋다.
그럴 수 만 있다면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들은 적당히가 참 어렵다. 한번 시작하면 중독성 때문에 결국 점점 빈도수도 늘고 양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끊으려는 시도와 노력을(생각만) 많이 했다.
줄여보려는 시도는 더 많이 했다. 수없이 내 의지를 걸고 이겨보려는 노력을 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그럴 때마다 드는 자괴감을 회피하기 위해 자기 합리화가 이어졌다.
"아, 그냥 즐기자.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말고. 남들도 다 하고 사는데."
하지만 이제는 그만두어야 함을 마음 한 구석에 숨기고 있었을 뿐이었다.
담배를 끊기 직전, 나의 하루 평균 흡연량은 2갑에서 3갑 사이였다. 거의 하루 종일 입에 물고 살았을 정도로 꽤 골초였다. 주사는 없지만, 술을 점차 더 자주 마셨고 주량도 점점 늘었다.
내가 늪에 빠져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것을 깨닫는데만 각각 10년과 20년이라는 긴 세월이 소모되었긴 하지만 말이다.
건강도 건강이지만, 몸과 마음이 가볍지 않고 너무 무거웠다. 내가 뭘 하려 해도 시작할 힘이 나지 않고, 점점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되어가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나는 이것들과 싸워 이길 자신도 없었고, 이겨낼 힘도 없었다. 적당히 조절하면서 지낼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못 이긴다.
그래서 ‘항복’하고,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굳은 의지로 마시지 '않고', 피우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못하는 것'이다. 10년의 흡연과 20년의 음주와 커피를 하는 동안 끊임없이 금연, 금주를 실패하며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적당히'를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오늘 딱 한잔만 마시거나 딱 한대만 피우는 것으로 끝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긴 시간이 지나고 알았다.
끊는 것이 괴로웠던 이유는 ‘마시거나 피우고 싶은 욕망’ 때문이 아니라 ‘끊어야 한다는 마음속 갈등’이었다. 이 갈등을 내려놓으니 금연, 금주 그리고 금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진작에 그냥 인정하고 탁 내려놓을 걸 그랬다.
사실 채식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나는 이미 이런 속세의 것들(?)을 멀리하기에 마지막으로 고기만 끊으면 (머리도 삭발했겠다) 절에 들어갈 엔드게임만 남긴 상황이다.
그렇잖아도 '이러다가 절에 들어가는 거 아니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절에 들어갈 생각은 현재로서는 없다. 나도 다양한 음식을 경험해봤지만 제육볶음과 상추쌈이 나에겐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제일 맛있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제육볶음과 상추쌈만은 놓칠 수 없다. 아, 마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