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에게 위협 받은 썰
까마귀 관련하여 내가 겪은 에피소드를 간략히 소개하고 까마귀에 대한 알쓸신잡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까마귀에게 위협 받은 썰 - 1
때는 2015년 초여름 무렵이었다.(5월말 ~ 6월 초로 예상) 당시 나는 대학생이자 수험생 신분이었다.
대학교 고시반에 들어가서 수험 준비를 했고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고시반으로 출퇴근하며 인생의 몇 안되는 공부에 매진했던 시절이었다.
나는 공부를 하면서 일요일 오전, 정확히 말하면 일요일 오전 8시부터 10시 반 정도 무렵의 시간을 좋아하게 되었다.(11시가 다가올 무렵부터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함)
'일요일 오전'만이 주는 특유의 바이브가 있다. 이 시간대만큼은 정신 없이 돌아가는 세상이 게으름에 빠진 듯 하다. 사람으로 가득 찬 지하철 안, 유동인구로 가득찬 중심지들도 일요일 오전만큼은 여백으로 가득찬다.
일요일 오전의 여유롭고 평화로운 바이브는 일요일 오전 일상을 일찍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인 셈이다.
수험생의 현실은 녹록치 않았지만, 일요일 오전 나에게 주어지는 특권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일요일 오전 만큼은 최단거리가 아닌, 평화로운 경로로 우회하며 여유를 느꼈다.
아래 사진과 같이 초입에 들어선 후 교내 푸른 숲을 가로지르는 경로였다.(여유로운 걸음으로 5분~7분 정도 소요)
그날도 여느 일요일 오전과 같이 여유로운 바이브와 늦봄~초여름의 쾌적한 날씨가 겹쳐졌고, 난 우회로를 선택하여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었다.
그리고 숲의 초입에 들어섰다. 일요일 오전 답게 차, 사람의 소음이나 인기척은 찾아볼 수 없었다.
초여름 시기 숲은 울창해질 준비를 하고 있었고, 해는 떴지만 중천이 아니었기에 적당히 울창한 나무 사이로 그늘이 지며 숲의 채도를 낮추었다.
초입에 들어서며 전혀 다른 새로운 공간이 열린 느낌이었다. 순간 까마귀 몇마리의 울음소리가 숲속으로 울려펴졌다. 울창한 숲 사이로 퍼지는 까마귀 소리로 인해 분위기는 급격하게 싸늘해졌고 난 무언가 기분이 살짝 나쁘지만 쉽게 정의하기 힘든 묘한 기분을 느꼈다.(과거 도쿄 여행때 비오는날 까마귀로 가득찬 우에노공원을 가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의 분위기와 유사했다.)
그 소리는 분명 굉장히 가까운 곳에서 나는 소리였다. 위를 둘러보며 어렵지 않게 까마귀 3마리가 초입 주변이자 나와 가까운 나무 위에 위치해 있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까마귀를 마주했던 경험도 많지 않았고 서울 도심에서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까마귀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도 처음이었다.
까마귀 소리는 대단했다. 공포영화에서 평범한 화면(교내 숲)이 기괴한 사운드효과(까마귀 소리)로 인해 오싹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과 비슷한 효과였다. 까마귀가 왜 불길한 존재처럼 여겨졌는지 알 것도 같았다.
분위기는 오묘했지만, 초입에 들어선 후 별 생각 없이 목적지를 향해 숲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30미터쯤 걸었을까? 살짝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분명 이 기분 나쁜 소리가 멀어져야하는데 같은 강도 혹은 더 큰 소리로 들리기 시작했다.
살짝 무시하고 몇 걸음을 더 옮겼다. 그러자 내 귀에서 울음 소리 외에 조류의 날갯짓 소리가 들렸고 동시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개인적으로 가까이서 들리는 조류의 날갯짓 소리에 대한 공포심이 조금 있는 것 같긴 하다)
본능적으로 위를 쳐다보니 까마귀 두마리가 저공비행으로 나무를 넘나들며 나를 Target 삼은 듯 계속 쫓아오고 있었다. 순간 굳었지만 '에이 설마 나를?' 하는 생각으로 몇걸음을 더 해 이동해보았는데 Target은 정말 나였다. 내가 멈춰서면 그들도 멈추어 위협하며 울음소리를 내었고 내가 이동하면 또 나무를 바꾸어 높지 않은 곳에서 나를 위협하며 따라왔다.
순간 굉장한 공포심이 들었다. 상대는 복수의 날라다니는 내가 징그러워하는 조류. 그리고 숲 내부에는 까마귀와 나 말고는 인기척이 없어보였고 고립되었다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내 걸음은 굉장히 빨라졌다. 뛰게 되면 더 빨리 날아오며 공격성이 더 강해질 것 같은 본능적인 예감이 들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걸었다.
그렇게 조금 더 걸었을까, 내 시야에 중년의 남성 한분이 보였다. 대략 100미터 내외의 거리였고 빗자루를 든 모습으로 보아 환경미화원 혹은 공원을 관리하시는 분(?)인 것 처럼 보였다. 그분은 멀찍이 떨어져 나와 까마귀의 싸움을 조망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천천히 나에게로 걸어오고 계셨다.
본능적으로 그분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까지도 까마귀는 계속 쫓아오고 있었다) 멀리서 광경을 지켜보던 아저씨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대화 내용은 굉장히 짧은 시간 이루어졌다.
아저씨 : 까마귀를 공격하거나 새끼 까마귀를 괴롭혔냐? 내가 어릴적 시골에서 살아서 아는데 까마귀가 이맘때쯤이면 사람 눈을 공격하는 경우가 있다.
나 : 아니, 없어요 저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진심으로 억울해하며 결백을 주장)
아저씨 : 까마귀들이 이맘때가 되면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예민해지고 공격성을 띄는데 눈을 공격하기도 한다. 얼른 눈을 가리고 뛰어서 이 숲을 벗어나라.
나 :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눈을 가리고 뛰기 시작)
난 그 순간이 굉장히 급했고 정말로 아저씨가 시킨대로 마침 손에 들고있던 프린트물로 내 눈 위를 가린 채 전력질주했다.
뛰는 순간에도 까마귀는 나를 향해 다가오는 느낌이었으나, 숲을 벗어나 차도로 벗어나는 순간 까마귀도 추격을 포기했다. 쫓아오는 대신 높은 위치에서 배회하며 다시 들어오지 말라는 메세지를 전하는듯 했다.
그렇게 고시반 내 자리에 도착하고 진정한 뒤 지난 5분 동안 나에게 일어난 일을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먼저 까마귀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까마귀에 대한 공부를 한시간쯤 했던 것 같다.
나무위키를 통해 까마귀에 대한 사실을 습득하고 까마귀가 도구를 쓰는 영상, 까마귀가 인간을 공격하는 영상 등 다양한 자료들을 보았다.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1) 기본적으로 까마귀의 지능은 동물 중 손에 꼽을 정도이며 단체행동을 하며 유희와 놀이를 즐길 줄 아는 몇 안되는 동물이기도 하다.(범고래, 침팬지와 버금가는 지능 수준이며 새대가리라고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2) 실제로 의문의 아저씨의 말처럼 까마귀는 번식기(봄에서 초여름) 사이 굉장히 예민해지며 공격성이 올라가며 사람을 공격하는 사례 또한 많다.
공부하고 나서, 조금 특이한 경험을 하긴 했지만 까마귀의 특성으로 인해 운이 나빴던 것이구나 생각했다. 고작 새 두마리 때문에 공포에 떨며 눈을 가리고 전력질주했던 내 모습을 회상하며 혼자 허탈해하며 웃었다.
번외로, 개인적으로는 아저씨의 존재가 미스테리로 남아있긴 하다.(물론 흔히 지나던 아저씨였겠지만 느낌상 그 사건 전체가 미스테리한 느낌이긴 했다)
1) 일요일 오전 10시 반 한적한 교내 숲을 정리하는 과업이 있는지?
2) 아저씨의 외모, 사이즈 등이 전반적으로 하루키와 닮아있었다.(비오는 일본의 우에노 공원이 떠오르기도 했고 하루키의 싸이코틱한 소설을 많이 읽던 시절의 심리적 영향이 컸을 것이다)
3) 놀랍도록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4) 정작 아저씨는 자리를 피하지 않았다.(까마귀와 소통하는 능력이 있나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도 잠시 해봄)
이렇게 내 까마귀 에피소드1은 마무리 되었다.
많이 말하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몇 안되는 흔치 않은 에피소드였기 때문에 두번 정도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내 괴상한 에피소드를 통해 까마귀의 지능과 까마귀가 얼마나 똑똑한 동물인가 전하는 것이 내 의도였다.
꽤나 진지하게 말하기도 했는데 친구놈들에게 돌아오는 반응들은 실소였다. (실소 : 어처구니가 없어 나오는 웃음)
사실 비웃을만 하다. 나 조차도 까마귀를 피해 눈을 가리고 도망치던 그 모습을 비웃었으니까. 그렇게 결론은 서로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매듭지고는 했었다.
까마귀로부터 최초로 위협 받은 이후 10년이 지났다. 까마귀의 지능을 깨우친 채 아주 종종 까마귀를 보면 '똑똑하고 교활한 놈들' 하며 별 생각 없이 지나치며 살아왔다.
까마귀에게 위협 받은 썰 - 2
지난 4월 초 축구하다가 아킬레스건이 완전히 끊어졌다. 수술 후 깁스를 한 뒤 시간이 흘러 두발로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겨우 절뚝이며 걷는 수준이지만, 목발 없이 걸을 수 있는 현재의 상황에 감사하며 매일 아침 5:50분에 기상하여 아파트 내 헬스장에서 재활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헬스장까지 거리는 멀쩡한 걸음으로 3분 남짓이며 아파트 내 몇개의 나무를 지나치기만 하면 된다.다만 나의 경우 걸음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탓에 5분에서 6분 정도 걸린다.
여느 때와 같이 5:50분에 기상한 후 조심스러운 걸음걸이로 헬스장을 향해 걷고 있었는데 까치 여러마리와 까마귀 몇마리가 울음소리를 내며 푸드덕거리고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자리 싸움을 하고 있는 양상이었다. 느낌상 까마귀가 더 강한 느낌이었고 까치는 더 많은 수로 응수하며 서로 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조류의 날갯짓 소리를 좋아하진 않지만 어쨌거나 헬스장을 가야 하기에 절뚝이며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간 또 한번 까마귀 울음소리와 그것보다 더 기분 나쁜 날갯짓 소리가 가까운 거리에서 울렸다.
아차 싶었다. 본능적으로 과거를 떠올리며 위를 올려보니 역시나 까마귀 한놈이 나를 Target으로 닿을 듯하게 저공비행하며 쫓아오고 있었다. 이른 시간 탓에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까치, 까마귀 몇마리 그리고 나 뿐이었다.
방법이 있겠는가, 급한 걸음으로 벗어나는 수밖에. 급했지만 회복되지 않은 다리 때문에 절뚝이며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절뚝이는 다리였지만 헬스장까지 거리가 짧은 탓에 그 구간을 빨리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대로로 나온 뒤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두번이나 까마귀한테 당하며 도망쳤다는 사실, 절뚝이며 급하게 도망치는 모습이 얼마나 우스웠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과거 10년 전을 돌이켜보며 이맘때쯤이구나 생각했다. 5월 말에서 6월 초 까마귀가 예민한 이 시기.
간단하게 재활운동을 마친 뒤 집에 돌아오는 길은 우회로를 선택했다.(쫄보 인증)
집문을 열자 마자 와이프에게 까마귀 에피소드를 처음으로 들려주니 역시나 돌아오는 반응은 비웃음이었다.
두번이나 몸소 겪은 흔치 않은 실데이터를 바탕으로 흥분섞인 말투와 함께 5~6월 까마귀의 위험성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은 그누구가 봐도 비웃기 충분했으리라.
집 창문으로 까마귀에게 피해를 입은 장소가 보였다. 까마귀는 역시 낮은 나무에 포지셔닝하고 있었고 지나가는 누군가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였으나, 그 주변으로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고 애석하게도 와이프에게 실제 현장을 보여주는 것은 실패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간 후 다음날 5:50분에 기상한 뒤 우회로를 선택할지 살짝 고민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피할수는 없기에 동태를 살피며 다시 그 길로 진입했다. 이따금 까마귀 소리가 들렸고 까마귀가 시야에서 보였으나 다행이 별탈 없었고 다시 일상적으로 길을 걷게 되었다. (공격 당시 내가 검은 옷을 입고있었는데 그것때문인가? 라는 말도 안되는 상상도 해봤다.)
까마귀로부터 습격을 두번째로 받고 나서 이 일을 글로 남겨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에피소드로부터 몇가지 확장할만한 주제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다만 쓰다보니 글이 너무 길어졌다. 까마귀 에피소드로부터 드는 몇가지 생각 혹은 통찰은 다음 글로 정리해볼 생각이다.
아래는 까마귀의 지능 그리고 까마귀의 공격과 관련된 객관적 자료이다. 알쓸신잡 정도로 머리에 넣어두어도 좋으니 참고하시기를.
https://www.youtube.com/watch?v=UMPOBCTNxMc
https://www.youtube.com/watch?v=dPPMoPCHx-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