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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연 Jun 06. 2020

베이킹? 퇴사 준비하는 거야?

왜 베이킹을 하는지, 그리고 그것에 대한 설명이 쓸데 없음에 대해서.

  


  베이킹하는 것을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말을 들었다.  먼저, '일도 바쁜데 취미생활을 열심히 하시는 모습이 참 멋져요'. 답하자면, 일은 바쁘지 않다. 일을 하는 동안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야근할 일을 만들지 않고, 퇴근할 때가 되면 퇴근을 하고... 정말로 내 마음을 바쁘게 하는 것이 있다면 하루하루 남의 꿈을 위해 수동적으로 일하고 있지 않나 신경 쓰는 것. 주말마다 술을 마시고 카페를 들락거리며, 또는 편안하게 집에 누워 스마트폰 속 필수적이지 않은 정보 소비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는 싫다.

 누가 묻기 전까진 베이킹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지 않는 편이다. 많은 사람들은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에서도, 그 주제를 결국 자기 인생에 대한 이야기로 바꾸려는 본능이 있는 것 같다. 타인의 이야기를 그대로 들어려고 한다기 보단, 어쩌다 자기가 경험한 부분이 있으면 상대의 이야기를 가로채 자기 이야기를 하곤 한다. 내가 꿈 얘기를 꺼내려하는데  마치 듣던 사람이 내 말을 끊고,

" 맞아, 나도 어제 꿈꿨는데 완전 어쩌고!"

하듯이. (사실 나도 종종 그렇지만)

 베이킹 재밌냐고 물어보길래 솔직히 얼른 그렇다고 하기에도 속으론 '아니 당연하지 그럼 재미없어서 하나?' 생각이 고, 나를 즐겁게 하는 일을 자주 하고 있는 것뿐이라   말은 없는데,

“어휴, 난 귀찮아서 그런 거 못해!”

‘누가 당신 보고 하라 그랬나요? 내가 하는데 왜 네가 힘들어해?'

"진짜 대단해요.. 안 피곤 해요?'

'네 안 피곤 하고요, 일찍 자고 술자리 줄이시고 여기저기 카페 덜 다니시면 당신도 안 피곤 하실 수 있습니다.'

 자기 입장을 고민하지?   걱정일까?



''와 정말 대단하다!''라는 코멘트도 때론 듣기 싫다. 그 안에는 종종 왜 이렇게 과하게 하냐는 비아냥이 묻어난다고 느낀다.  '되게 열심히 하더라', '왜 이렇게 열심히 해?', 칭찬으로 둔갑한 이런 코멘트의 배경에 종종 적당히 좀 하지? 또는 뭐하러 하는 거지? 하는 비꼬는 심리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걸 어찌 아냐고? 내가 꼬인 사람이기 때문에.

 좀 더 심하면 '퇴사 준비 해?'라고 대놓고 묻기도 한다. 이 경우엔 그 사람이 자신의 정체된 인생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인지한다. 뭔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면 불안해지는 것이 정체기의 사람이 가진 특징이기 때문에. 순수한 마음으로 이런 내가 부럽고 자기도 이런 열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주는 사람에겐 오히려 기회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좋아서 시간 내어 그 일을 한다는 것이 순수하게 '하고픈 마음'이 아닌 목적 있는 것을 비추어진다는 것. 나에 대해 그렇게 생각한다는 건 신경 쓰지 않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며 이 세상 대다수가 목적이나 소득 없는 일에 대한 시간 투자를 굉장히 아까워한다는 것이 문제다.

  개인의 취미가 굉장히 특별한 novelty(새롭고, 참신하거나 별난, 불필요하지만 재밌는 물건)처럼 보이는 현실도 조금은 슬프다. 취미를 가지는 것이 굉장히 프라이드가 되어야 하는 분위기도 상당히 불편하고. 소득도 없을 활동에 열정을 들이붓는 자세를 '별종'으로 대하는 시선들.

 이 심리는, 원데이 클래스에서 만난 수강생이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듣더니 ' 아 푸드 스타일리스트?' , 버터크림 수업이 잘 없는 것이 아쉽다고 하자 '있잖아요 버터크림 플라워!' 라며 설명하는 족족 한정된 카테고리로 단정 지어버리려던 그때 한번 더 발견했다. '둘 다 아니거든요?' 수업 내내 계속해서 이런저런 자격증을 추천하던 그 사람....(과거 포스팅에서 '글루텐 프리가 몸에 좋아요?'라고 물었던 사람과 동일인물)

꼭 그렇게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고, 과정 수료를 해야만 하나? 참 공식적 인증에 목을 맨다. 뭐든 먹고살 수 있을  기술로 만들어야만 하는 심리는 어디서 온 것인지.

 베이킹을 할 때 내내 미소를 지으며, 또는 으하하! 베이킹 참 너무 재밌네! 소리치면서 하는 건 절대 아니다. 걱정되고, 힘들고, 망쳐서 울고, 시간에 쫓기고 대체적으로는 고난의 연속이다. 베이킹은 준비, 만들기, 정리가 거의 같은 비율로 시간이 들어가는 활동이다. 레시피를 찾고, 재료를 공수하고, 스케줄을 잡고, 무엇을 만드는지에 따라서 일주일간의 일정이 결정된다.

 주말에 케이크를 구우려면 적어도 한 5일 전에는 뭐가 필요한지 미리 알아보아야 하고, 없는 재료가 있다면 어떻게 구해야 할지 생각하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주말에 만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파이가 있다면 전날 밤에 파이도우를 만들고 주말 아침에 일찍 일어나 완성해야 한다. 바쁘지만 내가 일부러 내는 시간이니 소중하게 쓴다.  

 세 레이어 이상의 케이크를 만들 땐, 오븐의 사이즈나 가진 팬 수에 따라 한 번에 하나, 또는 두 개의 시트를 구울 수밖에 없고 완전히 식히기 위해서는 몇 시간이 걸리므로 우선 하룻밤 안에 시트를 다 굽고 다음날 아침에 아이싱을 한다. 케이크를 누군가에게 시간 맞춰 전달해야 한다면, 그 일정도 고려해야 한다.

 발효가 필요한 시나몬 롤 같은 것을 만들 때엔 완성하고자 하는 시간을 정하고, 어느 시점에 오븐에 넣고, 그전 발효는 언제쯤 다 되어야 하는지를 계산해보고... 아마존에서 도구를 주문하던 때를 기준으로 한다면 어쩔 땐 한 가지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한 달을 준비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이 있기 때문에 베이킹은 내 삶의 파이에서 꽤 큰 조각임을 인정하다.

 나는 준비부터 선물하기 까지, 베이킹의 모든 단계를 즐겁게 한다. 리서치하고 준비할 땐 설레고, 과정에선 평소에 잘 안 하는 집중과 정돈, 정리나 포장을 하면서 성취와 안도감, 또 선물할 때의 기분. 물론 각 단계에서 다양한 어려움도 따른다. 요가나 스트레칭처럼, 한 동작 안에서 근육이 늘어나거나 강해지고 있다는 만족감과, 자세를 취하는데 생기는 어려움 정도라고 해야 할까. 나름 균형이 잘 잡힌 건강한 감정의 여행이라고 해야겠다. 가장 좋은 순간들을 고르자면, 솔직히는 준비 단계, 성공적 완성 그리고 소셜미디어에 포스팅까지 완료했을 때의 순간. 여행과 비슷하다. 가장 설레는 것은 역시 준비, 그리고 편안한 내 집에 돌아오는 일. 허나 분명, 아 거기서 시간을 좀 더 보낼걸, 그 장소에서 그 음식을 먹어 볼 걸 하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아쉽긴 해도 그것이 그다지 비참한 후회까지는 아니고 다음엔 이렇게 해봐야지, 이번에도 배운 건 있다, 싶은 느낌. 베이킹이 주는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화하기도, 또 전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최근에는 믹서를 돌리다 불현듯, '나를 위해 하는 일이고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케이크를 만들지언정, 나는 새로운 기술을 배워서 자유롭게 그것을 구사하게 되었다.'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러면서 베이킹을 하는 동안은 생산적인 사람이 된다는 기분이 들었다. 싫던 나 자신도 좋아지게 하는 시간이라고 할까? 용도 없는 공예품을 파는 사람을 보며 굳이 저런 건 왜 존재하게 해서 잡동사니를 더 만들어내는 거지? 라며 내가 하는 베이킹 마저 참 쓸데없다고 생각해 오던 나에게 게,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용도 없는 공예품은 이해가 안 된다.



 이렇게나 나를 즐겁게 하는 내 취미가 먹고사는 일이 된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닌데, 그럴 때마다 결론은, '일이 되는 순간부터 계속해서 행복하게 할 수 없을 것 같으니 안된다'이다. 내가 이렇게 이 취미를 계속해 나갈 수 있는 것도, 월급은 월급대로 꼬박꼬박 받아가며 원가 고민이나 어려움 없이 재료를 구입하여 케이크와 과자를 만들어 먹고 나누고... 비교적 현실에 후달리지 않는 우아한 삶을 영위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아함이, 스포일(spoil) 되고 인생 편안한 '굴곡 없는 삶을 사는 사람 콤플렉스'로 느껴질 때면 내 소박한 오븐을 떠올리며, 그래도 이 오븐 가지고 꽤 괜찮은 파이 크러스트도 성공적으로 만들지 않았나... 하며 내 자존심에 붙은 먼지를 털어본다. 한편, 종종 받게 되는 고마운 응원들이, 취미로 하고 있으니 뭔가 좀 더 재미난 별책부록 같아 보이기 때문에 해주는 응원이 아닐까? 내가 케이크 가게의 주인이 되면서 행복하게 케이크를  만들면 사람들이 그걸 보고  '아 저 사람은 저게 직업이라 항상 저런 걸 만드네 , 저 사람의 직업은 베이커리 사장, 당연히 잘 만들어야겠지' 라며 지금 받는 응원과 격려를 받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다른 일을 하면서 했던 고민들을 또 한 번 베이킹 때문에 또 하게 되고, 나의 정신에는 또 하나의 세계가 추가되었다. 거기서 생겨나는 새로운 감정의 묶음을 느끼며 살아가느라 뭐 하나 피곤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적어도 불쌍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에 의문을 던지고, 이게 굳이 세상에 필요한 일인가 하는 어두운 질문을 하게 된다면, 결국 그 끝에는 나 자신에 대한 끝없는 의심만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내가 믿을 사람은 나뿐이고, 그 누구의 기쁨도 그대로 나의 기쁨이 되지는 않으니. 왜 베이킹을 하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굳이 답할 필요는 없겠다.

 뭐든 순도 100% 의 기쁨만으로 이루어진 일은 없듯 나 좋으려고 하는 취미에도 짜증과 스트레스가 따르지만
우리는 자처해서 그 감정의 기복들을 내 인생에 더하며 살아간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 복이 터졌구나, 얼마나 사는 게 편하면 할 일을 만들어서 하나.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내 처지에 대한 감사함과 안도감 덕에 이게 바보 같은 취미 일지언정, 더 애써서 남들 보기에 무섭게 한번 해봐야지 약속한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며 본업 이외의 활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저러면 언제 쉬나? 그 사람은 그 활동을 하며 느끼는 기쁨에서 충분한 보상을 느끼고 가장 편안한 정신의 휴식을 얻는다. 호기심에라도 그것이 재밌냐는 우문은 하지 않길 바라며, 왜 이렇게 열심히 하냐는 무례한 말도 하지 않길 조언한다. 누구도 남 일에 참견할 권리가 없고, 그가 질문에 답할 의무도 없다. 취미를 가지고 싶다면 여러 가지 도전해 보고, 그 사람과 같은 것을 해보고 싶다면 예의를 갖춰 질문을 하기를 추천한다. 기쁜 마음으로 시작을 도와줄 사람들이 꽤 많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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