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반짝이던 세상

by 장재언


늦은 밤 어둠이 내리운 거리를 걷던 중 머리 위로 무언가 살포시 내려앉았다. 그러자 오늘 아침에 일기예보에서 보았던 눈 소식이 떠올랐다. 설마 눈인가? 했지만 지난번에도 눈이 온다며 우박이 왔던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느꼈던 아쉬움을 다시 느끼기 싫어 하늘에서 내리는 것이 눈이라고 단정 짓지 않았다. 혹여 ‘눈은 아닐까?’라는 일말의 설렘과 긴장감을 숨긴 채 건너편 가로등 불빛을 향해 걸어갔다. 가로등 불빛에 도달했을 때 머리 위에서 흩날리고 있었던 건 우박이 아닌 하얀 눈이었다. 올해는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눈이 드디어 하늘에서 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얀 눈을 보니 숨겨왔던 일말의 설렘과 긴장감이 내면에서 폭발하면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대로 눈이 쌓였으면 좋겠다.’

눈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눈이 오기만을 바랐는데 이제는 눈이 쌓였으면 좋겠단다.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다는 게 사실이었던 걸까, 나는 지금 그 사실을 몸소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욕심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눈이 쌓이면 뭘 하지?’

‘일단 나무를 흔들어 나뭇가지에 쌓인 눈을 다 맞고 매끄럽게 쌓인 눈의 표면에 가장 먼저 첫 발자국을 남겨야지.’

‘아냐, 드러누워서 떨어지는 눈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괜찮을 것 같으니까 그냥 드러눕는 게 좋겠다!’

‘엉덩이는 조금 시리겠지만 뭐 어때’

‘혼자 노는 게 질릴 때쯤에는 친구 녀석을 몇 불러서 그간 못했던 눈싸움도 해야겠어.’

‘눈싸움을 하다가 지칠 때쯤에는 어느 한구석에 쭈구려 앉아서 지난해에 사두었던 눈 오리 장난감으로 눈 오리 군단을 만들어 자랑해야지’

‘아, 그리고 눈사람도 크게 만들 거야!’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바깥에 눈은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글: 장재언

사진: 김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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